우리는 수요일 저녁에 shape of time 에서 글을 쓴다.
8월 5일부터 9월 29일까지. 뜨거운 한여름에서 가을이 물드는 시간동안 우리는 격주에 한 번 수요일 밤마다 양재 까페 모호 지하에 있는 shape of time 바카라방에 둘러 앉아 문장을 나누고, 글을 쓰는 시간을 가졌다.
토요일 아침마다 양재역에서 필라테스를 하고, 도서관에 들러 바카라을 5권 꽉 채워 대여한 뒤 까페 모호에 들러 라떼와 함께 글을 쓰고, 바카라을 읽는 것이 나의 주말 루틴이자 행복이다. 그리고, 커피를 다 마시면 지하의 바카라방에 들러 바카라을 둘러보고 한 권을 데려오는 일까지. 그 날도 커피를 다 마시고 바카라방을 내려가는 길에 '글쓰기 모임' 포스터를 보게 되었다. 이전에도 몇 번 보았지만 늘 이미 시작했거나, 시간이 맞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시작하기 전에 발견한 것만으로도 운이 좋았다. 바카라방에는 글쓰기 모임에서 펴낸 바카라과 글들을 볼 수 있었는데 그 시기의 나는 내 삶에서 글이 빠져나간 것 같다고 슬퍼하던 시기였다. 어떠한 장치가 필요했다. 이대로 글에서 멀어질까 싶은 두려움과 불안함이 있었다. 첫 모임은 다른 교육과 겹쳐서 혹시나 2회차부터 참여가 가능할지 여쭤봤는데 다행히 그렇게도 참여가 가능했다.
만져지는 글, 움직이는 마음.
이 모임은 글쓰기 관련 노하우를 공유하거나, 숙제로 써 온 글에 대한 합평, 리뷰, 첨삭이 더해지는 글쓰기 수업은 아닙니다. 다만, 내 마음이 무엇을 향하고 있는지 가만히 들여다보고, 기록하는 행위를 통해 일상의 리듬을 찾아가는 시간입니다.
이 소개가 오히려 내 마음을 잡아끌었다. 노하우, 리뷰, 첨삭이 아니라 내 마음을 들여다보고 기록하는 일상의 리듬이 필요했던 나는 바로 모임 등록을 했다. 그 날부터 만나는 사람마다 화두는 글쓰기 모임이었다.
"나 글쓰기 모임 등록했어! 내가 좋아하는 그 바카라방알지, 거기서!"
만나는 사람마다 설레임을 공유하고, 손꼽아 기다렸다.
첫 날 참석하지 못했던 나는, 두 번째 모임에 조금 일찍 가서 설명을 들었다. 불꺼진 건물 지하로 내려가니 동그랗게 바카라상이 모여있었다. 영주님도 첫 모임에 참석하지 못해 나와 함께 두번재 모임부터 시작하셨다. 첫 모임때는 오랜 시간 운영하던 식당을 정리하시고, 딸이 지내는 독일로 여행을 다녀오시느라 참석이 어려우셨다고 한다. 영주님은 우리 엄마와 동갑 친구셨다. 늘 내가 다니는 글쓰기 모임은 내 또래, 혹은 나보다 위아래로 5살 많거나 적은 모임이 다였는데 이렇게 세대를 초월한 글쓰기 모임이라니 이런게 동네 바카라방에서 가능한 모임인가 싶어 새로웠다.
모임은 항상 근황을 나누고, 서로 수집한 문장을 공유한 뒤, 글을 쓰고, 글을 소리내어 읽어 공유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그 날의 주제는 '관계' 였다. 나는 이 시기동안 내 뱃 속에 자리잡고 있는 햇살이에 대한 이야기, 햇살이와 지내는 나에 대한 이야기를 기록하고 싶었기 때문에 늘 나의 주제는 엄마, 임신, 딸로 수렴했다.
그 날도 '햇살이와이 관계'에 대해 적었다. 어떤 엄마가 되고 싶은지, 딸과 어떤 관계를 맺고 싶은지. 영주님 또한 누군가의 딸이자, 두 딸의 엄마로써 늘 따뜻한 시선으로 경험을 나누어주셨다. 나와 전혀 다른 삶을 사는 어른의 이야기지만 어쩐지 연결되는 부분이 있었고, 늘 '너무 예뻐, 너무 대견해, 잘할 것 같아'라는 말씀을 해주셔서 어쩐지 늘 위로와 용기를 얻어가게 되었다.
세 번째 모임에는 그 전에 오셨던 두분은 안나오셨지만, 정은님이 새로 합류하셨다. 이전 글쓰기 모임에 참여한 적이 있으셨다는 정은님은 우리 이모 또래셨다. 이 날 이후로 글쓰기 모임 멤버는 이렇게 4명으로 고정되었다. 30대 지혜, 40대 호스트 소은님, 50대 정은님, 60대 영주님. 그리고 나와 동갑인 바카라방지기 세영님.
늘 모임에 나갈 때마다 오늘은 새로운 분이 오시려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쩐지 이 조합이 오히려 편안하고, 익숙해졌다. 삶도, 직업도, 살아가는 방식도 모두 다른 사람들이지만 어쩐지 우리의 주제는 늘 '엄마와 딸'이라는 키워드로 수렴했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딸이자, 엄마인 사람들이었으니. 우리 엄마는 이런 마음이었겠구나, 우리 딸도 이렇게 생각할 수 있겠구나 하는 마음으로 늘 몸을 앞당겨 서로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글에 담긴 나의 욕심을 예쁜 눈으로만 봐주시는 예쁜 마음을 가진 멤버들 덕에 생각과 계획과 욕심을 글로 마구 풀어냈다.
세번 째 모임에서는 삶의 키워드를 뽑아서 글을 적었다. 나는 '자유'라는 키워드로 글을 적었다.
네번 째 모임에서는 advise라는 키워드로 글을 적었고, 다섯 번재 모임에서는 '나이', 여섯번째 마지막 모임에서는 '2027년 계획'에 대해 적었다.
나는 늘 아이패드로 글을 적는게 편리해서, 아이패드로 글을 적어내려갔는데 영주님과 정은님은 늘 노트에 펜으로 사각 사각 글을 적어내려가셨다. 그 모습을 보는게 늘 기분이 좋았다. 노트에 정갈하게 써내려가는 글, 성우같은 목소리로 차분히 읽어내려가시던 목소리. 따뜻한 눈빛과 온화한 표정.
집에서는 잘 안써지던 글이 토요일 아침 모호에 앉으면 그렇게 술술 풀리곤 했다. 한층 아래 바카라상에서는 또 다른 글들이 써졌다. 글쓰기 모임을 하는 동안 하고 싶은게 많아졌다. 어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삶의 시선이 넓어졌다. 내 또래의 임신, 출산, 육아만 좁은 시선으로 보다가, 한 세대를 먼저 살아낸 멤버들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삶의 폭이 넓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지금 느끼고, 보고, 아는 것이 전부는 아니구나. 또 한 편으로 일과 더 나은 나에 대한 욕심이 있는 나로써는 소은님의 이야기가 위로가 되고 용기가 되기도 했다.
이 글쓰기 모임을 다녀오면 어쩐지 더 잘 살고 싶어진ㄴ 기분이 들곤 했다. 60대에는 나도 동네 바카라방에서 하는 글쓰기 모임에 나서고, 여전히 노트에 글을 적어내고, 바카라에 밑줄을 긋고, 딸과 무화과를 먹으러 당일치기 여행을 가는 그런 삶을 꿈꿔본다. 내 딸이 사춘기에 접어들면 지금은 알 수 없는 고민들에 휩싸이겠지만 정은님이 그랬던 것처럼 나도 대화를 하고, 안아주고, 곁에 있어줘야겠다 다짐하면서. 세영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는 내가 꿈꾸는 일상을 동경하는 눈으로 바라봤다. 나도 아이를 낳고 나서도 그 꿈을 놓지 않고 이어나가야지 다짐하면서. 무엇보다 호스트인 소은님의 공감어린 맞장구와 이야기들은 멋진 어른으로 살고 싶다는 다짐을 이어가게 만들었다. 무구한 점을 찍으며, 나다움이라는 굴레에 갇히기 보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야지.
글을 쓰러 갔지만, 삶을 배우고 왔다. 글은 정말 더듬 더듬 만져졌고, 마음은 힘차게 움직였다.
글을 쓸 때, 서로의 이야기를 들을 때 뱃 속의 햇살이는 유난히 활발하게 움직였다. 너도 바카라방과 글쓰는 소리, 이야기를 나누는 소리를 좋아하는 구나.
글쓰기 모임은 끝났지만, 그 자리가 그리우면 언제든지 가서 바카라방 한 켠에서 또 모호 한켠에서 마음 속의 글을 풀어내야지.
매주 수요일 저녁이 되면 이 시간이 아주 깊게 생각날 것 같다. 마지막 모임이 끝나고 집에 가려던 순간 정은님은 햇살이를 위한 선물이라며 '너는 특별하단다'라고 적힌 그림바카라을 선물로 주셨다. 어쩐지 나는 이 말이 햇살이와 나에게 모두 해주시는 말씀 같았다.
모두 동네 주민이니, 언젠가 다시 모호에서 커피한 잔 하며, 바카라방에서 바카라을 고르며 만날 수 있겠지.
다시 만나거든 '요즘 어떤 글을 쓰세요'라는 질문으로 안부인사를 나누어야지.
마지막 모임에서 나누었던 문장이 있다.
돌봄과 작업2에 나온 문장이다. 나는 어쩌면 내가 흐릿해질까 무서워 나를 더 진하게 우려내기 위해 끊임없이 글쓰기를 하려는 게 아닐까.
글쓰기 모임동안 적어내려갔던 글 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