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이와 함께 삶의 새로운 레퍼런스가 되어보는 것
나는 늘 궁금했다. 아이를 키우는 동안 나는 빠르게 일터로 복귀하고 싶어하는 유형일까, 아니면 아이와 더 붙어있고 싶어서 퇴사를 희망하는 유형일까.
육아가 너무 힘들어 3개월만에 복직한 선배도, 아이와 있는게 너무 좋다고 2년을 꽉 채워 육아휴직의 시간을 보낸 동료도 그 시간을 겪어보고서야 자신이 어떤 유형의 사람인지 알게 되었다고 했다. 그래서 주변에서 육아휴직 계획을 물어볼 때마다 나는 늘 ‘모르겠다’는 대답으로 일관했다. 그 시기를 겪어봐야만 내가 어떤 유형의 사람일지, 앞으로의 시간을 어떻게 살아가고 싶을지 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70일 전 아이를 낳은 친구를 만나고 왔다. 7년 전 일에 대한 고민을 같이 나누며 만난 사이라 ‘빨리 복귀해서 일을 다시 하고 싶진 않은지’를 물었다. 스타트업 창업 멤버로 시작한 그녀는 지금은 어떠한 작은 존재가 자신을 필요로 하고, 스스로가 그 필요를 충족시켜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만족감을 느끼기 때문에 오히려 일터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이 사라졌다고 했다. 하지만 엄마라는 필요 외에 나라는 존재로써의 필요를 증명해야할 것 같은 불안함은 여전히 있기 때문에 적절한 자기효능감은 필요하다고 말했다.
아직 겪어보지 않았지만 아마 나도 비슷할 것 같다. 내가 하는 일은 좋아했지만, 매일 한 자리에 앉아 아침부터 저녁까지 앉아있는, 더군다나 15분 이상의 휴식시간에는 근무시간을 철저하게 차감하면서까지 통제하는 성향의 회사 문화에서는 언제나 벗어나고 싶어했다. 자유로움과 나에 대한 신뢰에서 뛰어놀아야 성과가 나는 타입의 사람으로써 엄격한 통제는 나를 조금 시들게 했던 것 같다. 그래서 사실 육아휴직 기간을 손꼽아 기다렸다. 9년의 결혼기간 동안 오랜 시간 아이를 기다렸던 것도 맞지만, 어쩌면 이 출근하지 않는 공백의 시간을 더 기다렸던 것 같다.
매주 만나던 심리상담사 선생님께서는 공백이 아니라 ‘육아’휴직이라고, 육아의 기간이라고 하셨지만, 나는 회사에 출근하지 않고, 내 하루를 유용하는 것만으로도 공백이라고 느끼기에 충분했다. 스스로 갭이어를 가지기에는 명분과 용기가 부족한 나에게, 육아휴직은 수동적으로, 아니 내가 스스로 만들어낸 능동적으로 주어진 완벽한 갭이어의 해이다.
아직 육아를 겪어보지 않은 지금의 나로써는 2027년을 새로운 일의 형태를 찾아가는 시간으로 꾸리고 싶은 마음이 가장 크다. 나도 분명 일터로 출근하는 삶이 그립다기보다, ‘자기효능감’을 느낄 수 있는 무언가를 그리워할 것이다. 그래서 끊임없이 글을 쓰고, 기록을 하고, 공유하면서 누군가에게 삶의 레퍼런스가 되어주고, 도움이 되는 일상을 살고 싶다. 그 앞단에는 그저 내 삶을 건강하고, 정갈하게 꾸리는 것이 선행되어야겠지. 사소한 것을 쉬이 지나치지 않고, 소중한 시선으로 기록하면서 그 기록이 누군가에게 용기가 되고, 공감이 되고, 갈피가 되는 그런 시간을 보내고 싶다. 찰나로 스쳐지나가버릴 이 순간들과 아이에 대한 관찰일지를 한 편의 바카라으로 묶어내고 싶다.
얼마전 만난 동생이 행복한 엄마가 될 수 있을 것 같다는 용기를 얻고 간다고 했다. 이런 순간을 많이 만들고 싶다.
사실 무섭다. 새벽에 1시간마다 깨서 젖을 물리는 일상이 어떨지 상상이 되지 않는다. 원하는 것을 울음으로밖에 표현하지 못하는 갓난아기를 옆에 두고, 좋은 날씨에 자유롭게 떠날 수 없는 삶이 나에게 어떻게 다가올지도 걱정이 된다. 그렇지만 모든 것은 태도에 달려있다. 아무리 힘든 상황에서도 감사한 것을 찾아내고, 아이의 배냇짓을 놓치지 않을 수 있는 여유를 가지는 일상을 보내고 싶다. ‘교토의 마음들’이라는 바카라의 설명에는 ‘생활의 보풀을 정돈하고, 삶의 온화함을 찾기 위해 떠나는 여행’이라고 적었다. 지금 햇살이가 건강해준 덕분에 나도 바쁜 생활에서 생겼던 지저분한 생활의 보풀을 정돈하고, 온화함을 찾아나가고 있다. 지금 찾은 정갈한 마음으로 아이를 잘 맞이해줘야지.
육아휴직을 들어가기 전 동료가 했던 말이 기억이 난다. 이제 삶에서 터닝포인트가 될 만한 순간들이 얼마 없는 것 같다고. 이직, 이민, 퇴사, 출산 같이 큰 변화가 있지 않으면 삶의 변화를 찾기 어려운데 출산과 육아휴직은 터닝포인트가 되기 좋은 시기인 것 같다고. 전적으로 동의한다. 2027년은 나에게 스스로 만든 갭이어이자, 터닝포인트가 될 것이다. 10년 동안 한 번도 쉬어본 적 없는 온라인 게임생활을 잠시 쉬면서 내가 정말 살아보고 싶은 삶의 형태로 살아보는 시간이 되겠지.
일상의 모습은 아마 지금이랑 비슷하지 않을까. 아침을 챙겨먹고, 글을 쓰고, 바카라을 읽고, 산바카라을 하고, 요가를 하고. 아니 어쩌면 이 일상을 유지하는게 그 무엇보다 힘들려나. 그렇다면 나는 지금의 일상을 지켜내면서 아이를 육아하는 것, 그리고 그 기록으로 누군가에게 삶의 레퍼런스가 되는 것. 그리고 연대하는 것. 새로운 삶의 형태를 그려보는 것. 이게 나의 2027 년 목표가 될 것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이에게 계절마다 아름다움을 보여주면서 손잡고 모든 ‘처음’을 함께 겪어나가야지.
2028년에 회사로 돌아가지 않아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 수 있는 통장과 마음의 체력을 길러놓고 싶다. 실제 복귀여부와 무관하게 나의 가능성을 다시 확인해보고 싶다. 그게 나의 89일 빠른 2027년 목표다.
나의 새해 목표는 늘 ‘건강하고, 사랑하기’ 같은 뭉툭한 단어들 뿐이었는데, 어쩐지 이번 새해 목표는 조금 거창하다. 그렇지만 어떻게 보면 하나의 생명을 키워내는 해인데 이정도는 거창해도 되지 않나 싶은 생각도 든다. 이 거창한 목표 안에서도 ‘건강과 사랑’은 놓치지 말아야지. 새해 계획은 늘 그렇듯 계속 쉼표가 찍히며 문장이 길어진다. 그래도 이 길이감이 주는 의욕이 나쁘지 않다.
피로감이 나를 덮치지 않도록 의욕있게 한 해를 살아보자. 아! 뭐든지 웃으면서!!!! 웃으면 복이 온다. 피곤하다고 짜증내지 말고, 웃으면서 하자. 웃으면서. 다 내가 선택한 것들이다. 아이도, 새로운 일상도, 새로운 삶도. 그리고 설사 원래의 일상으로 돌아간다해도 실망하지 않기. 그것도 내가 이유있게 선택한 길일테니. 어쩐지 벌써 기대되는 2027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