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테는 나의 태로 드러나니까.
2주에 한 번 shape of time 서점에서 글쓰기 모임을 한다. 우리 모임의 연령대는 30,40,50,60대가 모두 모여있다. 아니 뱃 속의 0세반 햇살이까지. 하나의 주제로 이야기하다가도 각 세대의 이야기로 뻗어나가서 생각의 폭과 이해의 폭이 넓어지는 경험이 가능하다. 이번 모임은 자연스럽게 ‘나이’라는 주제로 글을 썼다.
나이는 불가항력이다. 나이를 먹는 건 선택의 영역이 아니라 자연의 영역이라 원하는 만큼 먹거나, 원하는 때에 먹을 수가 없다. 나이를 먹으면서 자연스럽게 내 안에 나이테가 켜켜이 쌓인다. 나이테는 사람마다 속에 쌓이지만, 겉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얼굴의 표정, 앉아있는 태, 말투, 대화에서 묻어나는 단어들, 일상을 보내는 방식들. 나이테는 어쩌면 나의 태로 드러나는게 아닐까. 나이가 들수록 표정에 삶이 드러난다고 하는 것처럼 살아가는 삶의 모습 자체가 나이 태가 되어준다. 나무의 나이테로 과거의 흔적을 유추해볼 수 있는 것처럼 나이 태로 삶을 유추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나이테가 쌓이는 건 불가항력이지만, 어떤 방식으로 태를 쌓아갈 지는 선택의 영역이다. 나는 나의 나이테가 헐겁거나 모나기보다는 쉽게 무너지지 않는 촘촘하고, 부드럽고, 일정한 간격이었으면 좋겠다. 모든 걸 통제하려는 건 욕심이지만 간결하고, 단정한 삶의 방식으로 쌓아가는 시간의 결을 관리할 수는 있지 않을까.
나이가 드는게 무서운 이유는 내가 예상한 속도감을 초월하는 시간성때문인 것 같다. 나는 이런 나이테를 쌓아가려고 했는데, 눈 떠보면 이미 내 안에 나이테가 이만큼 그려져있다. 주기적으로 내 안에 쌓인 테를 매만져가며, 앞으로 쌓일 공간을 가늠하고, 정돈해야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저 나이만 쌓아가다보면 내가 생각한 나이에 알맞는 모양이 아닐 수 있으니까 말이다.
예전에는 나이마다, 시기마다 다 같이 발맞추어 걷던 길이 있었는데, 지금은 ‘이 나이라면 이래야지’ 하는 틀이 깨어진 것 같다. 친구 a는 아이 둘을 키우고, b는 세계여행을 하는 노마드를 준비하고 있고, c는 사업을 하고 있다. 더군다나 이 한 단어로 표현할 수 없는 삶의 모양새가 모두 다르게 흘러가고 있어 그 나무의 단면은 어떨지 궁금해진다.
나무의 두께로 나무가 쌓아온 세월을 가늠할 수는 있지만 나이테는 나무를 베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다. 요즘은 사람들을 만날 때 나이를 묻지 않고, 사실 내 나이도 잘 말하지 않는다. 나이라는 단순한 숫자가 말해주는 것보다, 나이테가 쌓여 만든 그 사람의 농도와 태가 말해주는 것들이 더 많기 때문이다. 예전이라면 나이가 간접적으로 주는 정보들이 꽤 많았겠지만 지금은 나이는 사람 관계에 중요한 정보가 되어주지 못한다. 대략적으로 이런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겠군이라는 가늠이 보기좋게 빗나가기 쉽기 때문이다.
수관기피라는 말을 좋아한다. 숲에서 나무들이 서로 닿지 않도록 경계를 두며 자라 수관 사이에 틈이 생긴다. 숲에 앉아 하늘을 바라보면 나무들 사이에 일정한 간격을 두고 바람에 따라 쉬이 쉬이 움직인다. 길처럼 보이는 그 틈을 통해 서로 햇빛을 나누어 쐰다. 나이와 상관없이, 나이테와 상관없이 그저 비슷한 결을 가진 나무들과 서로의 영역을 존중하고, 간격을 유지하면서 같이 바람따라 흔들리고 싶다. 숫자로 서로를 재단하거나, 판단하지 않고, 내가 경험한 사람의 눈빛과 말투, 태와 결로 가까워지고 싶다. 나도 누군가에게 그렇게 다가가기 위해 나의 나뭇결을, 나의 나이 태를 잘 다듬고 싶다.
어제는 숲에서 하룻밤을 자고 왔다. 숲속의 집이라는 공간에서 눈을 뜨고 아침을 맞이하니 파란하늘 아래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 소리가 파도처럼 들린다. 엄마는 가을에 흔들리는 나무소리는 다른 계절과 다르다고 알려주었다. 파도같이 흔들리는 바람 소리를 들으니 올 여름 바다에 못간 게 하나도 아쉽지 않았다. 가을의 바다 속에서 나의 나이태가, 나의 나무 바람 소리가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는 나무가 되어야지 다짐했다. 그러려면 나이테를 잘 손보아야지.
또래들과의 글쓰기 모임만 하다가 이렇게 다양한 세대와 함께 하는 모임은 처음인데, 하나의 주제만 던져져도 각자의 나이테로 이야기를 받아들이고, 짚어낸다. 그리고 각자가 받아들인 이야기를 나누어주시는데, 나의 생각의 폭과 이해의 반경이 확장됨을 느낀다. 먼저 길을 나아간 분들임에도 이 길로 와야한다고 손을 이끌고 가르치기보다는 수풀을 헤치며 길을 만들어가겠다는 내 모습을 그저 바라보시며 생각한 바를 풀어내주신다. 우리 이모의 나이대, 엄마의 나이대여서 가족들이 절로 생각난다. 나도 50대가 되어도, 60대가 되어도 동네의 작은 바카라방에서 글쓰기 모임을 하며 나의 나이태를 끊임없이 만져주고 싶다.
마지막에 모임장 소은님께서 이런 말씀을 해주셨다. 점은 앞으로 찍는게 아니라 뒤로 잇는거라고. 찍을 땐 모르고 뒤를 돌어봐야 아는 거니까 어떻게든 이어진다는 확신을 가지고 많이 찍으실거라고.
나이테도 그려질 땐 모르고 뒤돌아봐야 아는 것이라는 점에서 유사하다. 그러니 언젠가 뒤돌아봤을 때 더듬어볼 수 있도록 열심히 기록해여지. 그래서 우리가 수요일 밤마다 이 작은 서점에 모여 글을 쓰는거겠지. 언젠가 오늘의 나이테를 더듬어보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