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하루를 내가 유용할 수 있다면 그게 곧 자유.
지혜 캔 두 애닛띵! 지혜 캔 비 애니원!
내가 달고 살았던 문장이다.
요즘의 나는 anything, anyone의 상상력을 마음껏 풀어내기 보다 빈약한 상상력으로도 떠올릴 수 있는 누구보다 예측되는 평범한 삶을 살아내고 있다.
근데 모순적이게도 그 삶이 퍽 나쁘지 않다. 아침에 일어나 스무디와 계란으로 간단한 아침을 챙겨먹고, 이불정리와 환기를 하며 집을 정리하고, 아파트 뒤에 이어진 산길로 짧은 산바카라을 하고, 바카라을 읽거나 글을 쓰고, 동네의 좋아하는 카페나 도서관에 가는 삶. 루틴하고, 반복적이고, 재미없어 보이는 그 삶 안에도 나의 작은 자유와 평화가 있다.
요즘 내가 누리고 있는 자유는 일어나고 싶을 때 알람없이 경쾌하게 일어나는 것, 그 날의 컨디션에 따라 먹고 싶은 식사를 손수 준비하는 것, 걷고 싶은 길을 내 두 발로 원하는 만큼 걸으며 새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것, 어떤 원두나 차를 마실지 선택할 수 있는 것, 바카라장에 꽂힌 수 많은 읽지 않은 바카라 중 어떤 바카라을 읽을 지 고를 수 있는 것. 모두 손만 뻗으면 누릴 수 있는 자유다.
스탁옵션을 주는 치열한 스타트업에 입사해서 커리어를 바꾸거나, 유튜브나 여행작가로 성공해서 전세계를 돌며 디지털 노마드를 누리는 몇 년 전 지혜가 꿈꾸던 ‘애니띵, 애니원’의 범주와는 조금 다르지만, 지금의 내 손에는 지금 당장 잡을 수 있는 자유들이 있다.
한 순간의 선택으로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되는류의 대담하고, 멋진 결정은 아니더라도 지금 내 하루를 좀 더 만족스럽고, 평안하고, 즐겁게 만들어주는 선택들. 그 안에서 나만이 꾸릴 수 있는 이야기들을 엮고, 기록하고, 꿰어나가면서 어느 순간 되돌아보면 지금의 내가 상상하지 못한 어느 방향으로 애니띵, 애니원을 만들어가고 있지 않을까. 결국 애니띵 애니원은 한 순간에 만들어지는게 아니라 별 거 없는 시간 속에서 내가 선택한 작은 것들이 모여 만들어지는 거니까. 지금 선택하는 하나하나를 더 소중하게 생각하며 마음의 길을 따라가다보면 내가 그토록 원하던 ‘최대한의 내가 되고 싶었던 삶’에 가까워져 있지 않을까.
지금 나에게 주어진 자유를 하나씩 쪼개 보면 거창해 보이지 않지만, 한 편으로 대단히 거창하게 느끼기도 한다.
내가 자고 싶은 만큼 자고, 먹고 싶은 걸 먹고, 매일 하고 싶은 것들로만 채울 수 있다는, 내 하루의 소유권이 온전히 나에게 있다는 감각은 어마어마한 자유다.
적어도 아이가 태어나기 전까지는 ‘해야만 하는 일’이 하나도 없이 ‘하고 싶은 일’로만 100% 시간을 유용할 수 있다. 시간을 내 것 처럼 쓴다는 자유야말로 이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가장 갖고 싶어하는 자유가 아닐까. 나에겐 그 자유가 89일 남아있다. 비록 출산과 동시에 사라지겠지만 그래서 더 소중하게 쓸 수 있는 시간. 물론 신체적인 제약이 있기 때문에 정말 하고 싶은 남미여행이나 패밀리 백패킹은 할 수 없는 어느정도 제한 있는 자유지만, 그래도 내 손 안에서 누릴 수 있는 건 차고 넘친다.
이번주는 엄마와 뮤지엄에 가고, 궁금했던 요가원에 요가를 하러 가고, 쓰고 싶었던 블로그를 잔뜩 쓰고, 청량한 가을 하늘 아래 걷고 싶은 만큼 마음껏 걸어야지. 회사 점심시간에 매일 중얼거렸던 문장처럼 ‘아 안들어가고, 볕좋은 까페에서 바카라 읽고 싶다’를 마음껏 할 수 있는 시간.
이렇게 하루의 자유를, 순간의 자유를 누리면서 흘러가다보면 코너 뒤에 뭐가 있는지 모르는 매일이 기대되는 삶, 매일 선물상자를 풀어보는 마음으로 내일을 기다리는 삶을 살아가고 있지 않을까. 무엇이든지 하면서, 어떤 사람이든 되어보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