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은 나를 잃는 게 아니라 진정한 내가 되어가는 과정이니까
글감의 서랍에서 내가 꺼낸 단어는 ‘advise’.
엄마는 항상 내게 말했다. 지혜야 햇빛 많이 보고, 밝은 옷 입고, 그렇게 밝게 지내!
나에게 무엇이 되라고, 무엇을 하라고 한 적 없이 내가 가고 싶은 발걸음을 늘 응원해주는 엄마는 내가 찾는 첫 번째 심리상담사다.
어떠한 판단없이 내가 하는 모든 고민과 생각을 묵묵히 들어준다. 엄마는 이렇게 하면 좋을 것 같은데? 라고 하긴 하지만 보통 얘기를 꺼내놓는 순간 답정너처럼 내 마음 속의 답을 정해놓고 이야기를 풀어내기 때문에 누군가가 들어준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미 절반은 해결되는 상황이 많다. 엄마는 나에게 조언이나 충고를 많이 하지 않는다. 이래야 해, 저래야 해를 하기보다 행동으로 삶을 어떻게 꾸려나가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그런 엄마는 나에게 종종 장문의 카톡을 보낸다. 그 날도 같이 벚꽃 산바카라을 하러 나가기로 해놓고, 마음 속의 고민들에 짓눌려 칙칙한 검정 잠바에 모자를 푹 눌러쓰고, 끌려나온 사람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여기 서봐! 저기 서봐! 하면서 엄마가 찍어준 사진들을 보는데 죄다 울상에 죽을상을 하는 얼굴이었다. 이렇게 화사하고 아름답게 핀 벚꽃 앞에서 다 죽어가는 표정이라니. 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엄마가 연이어 카톡을 보냈다. 집에만 있으면 더 가라앉으니까 따스한 봄햇살 자주 맞아줘야한다고 언제든 콜하라고! 옷은 언제나 밝은 색으로~~ 푹 잘자렴. 사랑한다 울 딸. 뒤에는 하트가 총 천연색으로 붙어있었다.
찰나의 해사한 벚꽃 앞에서조차 활짝 웃지 못하는 날들이 있을 수 있다. 그럼에도 딸에게 그런 날들이 많지 않기를, 화사한 옷을 입고, 햇빛 아래에서 밝게 웃었으면 하는 엄마의 마음이 내게 해를 쬐어준다. 응달이 잔뜩 져 곰팡이가 퍼렇게 슬만 하면 스윽 볕이 들어 마음의 양지를 만들어준다. 마음에 그늘이 지려고 하면 이제는 바로 운동화를 신고 뒷산으로 올라간다. 새소리를 듣고, 흔들리는 나뭇잎을 보고 있으면 눅눅했던 마음이 조금 바삭해진다.
나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상대가 원하지 않는 조언이나 훈수를 건내기보다, 적재적소에 상대의 마음에 볕을 쬐어 양지를 만들어줄 수 있는 조언을 건네는 어른이 되고 싶다. 어디서든 마음의 정원을 만들어주는 사람들이 있다. 이 밭은 영 못쓰겠다며 방치하거나 갈아버리는 대신, 그 황무지에 씨앗을 뿌리고 어디서든 정원을 만들어 내는 사람.
엄마는 스스로에게 그런 사람이 되었던 것 같다. 세상의 풍파가 아무리 많아도 빨간 잠바를 입고 자연으로 나가고, 산으로 들로 바다로 다니며 햇빛 아래 볕을 쬐어줬다. 그 아래 품어져있던 나도 엄마 곁을 졸졸 따라다니며 볕을 쫓았다. 이제 내가 그런 엄마가 되어야겠지. 내가 어떤 아이로 자라길 바랬어? 라고 엄마에게 던진 질문에 건강하고 밝게만 자랐으면 했어. 라는 그 싱거운 대답이 어떤 의미였는지 지금에서야 알 것 같다.
얼마 전, 요가 끝에 자애명상을 하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엄마가 된다는 건 늘 나를 내려놓고, 나를 잃는 것이라고만 생각했는데, 나를 두배로 확장시키고 어쩌면 진정한 내가 되어가는 과정이기도 한 것이라고. 나의 가치관으로 사람을 키워내고, 방향을 잡아주고, 조언을 해줘야 하는 항해사가 되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어떤 방향이 맞는지 판단하려면 내가 내 안으로 더 깊이 파고들어가 질문하고 답을 찾아야겠지. 그리고 그것을 아이에게 알려주면서 삶을 확장시켜 나가는 과정일거야.
아마 아이는 나에게 끊임없이 물을 것이다. 엄마 이 친구가 나 싫어하는 것 같아 어떻게 해야해? 엄마 나 무서운데 어떻게 해야해. 엄마 나 이거 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할 지 모르겠어. 그럴 때마다 나는 어떤 대답들을 하게 될까. 나도 아직 모르는 게 많고, 세상에 정답은 없는데 말이다. 그 대답들은 아이에게 씨앗이 되어줄 수도, 벽이 될 수도 있을텐데 그 조언의 무게가 벌써 무겁다. 나도 엄마처럼 조언을 하기 보다 그냥 내 삶의 모습을 통해 스스로 답을 찾아가게 하고 싶다. 내가 해줄 수 있는건 ‘엄마를 보니 삶은 좋은 것이구나, 엄마처럼 삶을 재미있게 꾸려나가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게 내 삶을 그저 재밌게 잘 살아가는 것. 그 모습이 흘러 아이에게 닿게 하는 것.
햇살이가 스스로에게 언제든 볕을 쬐어줄 수 있는 사람으로 커갈 수 있게, 볕을 찾아 움직일 수 있는 양지형 인간으로 자라날 수 있게 도와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이름만큼 스스로에게 눈부시게 반짝이고 따스하기를.
나도 엄마의 마음으로 갓 태어난 아가를 위한 아주 밝은 색의 옷을 한 벌 샀다.
우리 같이 밝은 옷을 입고, 빛을 쫓아 다니자. 그 빛이 우리 안에서 새어나올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