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건돌리기가 폭탄이 되지 않게
관계의 사전적 정의를 찾아보면 이렇다.
1. 둘 이상의 사람, 사물, 현상 따위가 서로 관련을 맺거나 관련이 있음. 또는 그런 관련.
2. 어떤 방면이나 영역에 관련을 맺고 있음. 또는 그 방면이나 영역.
기본적으로 둘 이상이 있어야 하는 상호작용이며, 모든 면면이 완전히 일치하는 과정이 아닌 특정 방면이나 영역에 관련을 맺고 있다는 것이다.
정의를 읽어보면 당연하다고 납득이 되는 이 단어가 나의 관계로 치환되었을 때는 문장에 오류가 생긴다. 특히 그게 가족이라는 울타리로 들어온다면 더더욱.
관련을 맺는 범위가 점점 넓어져 어떤 방면이 아닌 모든 것을 공유하고 싶어지고, ‘나로서 온전히 딛고 있는 공간’이 협소해지는 순간이 왕왕 발생한다.
문제는 이걸 알아차렸을 때는 이미 한 발로 겨우 내딛고 있는 상태일 때가 많다는 것이다.
결혼을 한 뒤 관계의 확장과 수축을 반복적으로 겪으며 겨우 나의 적당한 공간이 몇 평인지 가늠해냈다고 생각했는데, 그 생각을 단번에 무너뜨린 것이 바로 임신이다.
동그란 나의 뱃 속에 웅크린 아이는 나의 몸 안에서 내가 먹고 자고 살아가는 것에 그대로 영향 받을 수 밖에 없어 나의 영향력이 더 크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30cm도 안되는 이 작은 존재가 주는 변화와 영향력은 어마어마하다. 기존의 나의 삶을 단번에 무너뜨리고, 또 새로 건설한다.
계절마다 제철을 누리는 삶을 살며, 큰 배낭을 메고 산으로 강으로 바다로 뛰어다니던 나는 이제 동네를 산바카라하는 것으로 운동량을 채우는 체력이 되었다. 친구들과 새로운 일을 벌이고, 페스티벌에서 춤을 추던 나는 이제 집에서 벌렁 드러누워 뱃속에서 춤추는 아가를 느낀다. 작년에는 임신한 뒤에도 내 삶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나의 자아가 너무 세서 그 무엇도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탯줄만 부여잡고 있는 작은 아가와의 줄다리기에서 비겁하게 관계의 주도권을 내가 쥐고선 내가 하고싶은 건 여전히 모두 할 수 있다며 고집을 부렸다. 물론 그 고집 때문은 아니겠지만(아니어야겠지만) 나비가 된 아이 뒤에 다시 만난 햇살이와의 관계에서는 적어도 평등하고 싶었다. 너에게 이끌려가지만도, 내가 혼자 끈을 쥐고 휘두르지도 않고 싶었다. 그러려면 균형이 필요했다.
겨울이 찾아오는 입동 무렵 건강하게 너를 만나기. 단 하나의 목표를 두고, 그것을 잊거나 잃지 않는 선에서 나의 생활과 기쁨을 누리고, 또 너의 건강과 안위를 잊지 않는 날들을 보내는 것. 그게 지금 내가 선택한 30cm 햇살이와의 관계 규칙이다.
문제는 이렇게 마음을 먹었지만 내 안의 불안이가 자꾸 훼방을 놓는다. 인생의 변곡점을 맞기 전 주어진 3개월의 공백을 앞두고, 이 시간을 허투로 보낼 수 없다는 생각. 그동안 하고 싶었던 일들을 마구마구 하고 싶다는 욕심. ‘25주차 임산부’를 검색해보며 이 시기의 다른 동지들은 어떻게 이시간을 잘 보내고 있는지 구경하며, 하루하루를 아까워 하는 어리숙함. 평화롭게 잘 쉬고 있다가도 이 불안이는 ‘너 이렇게 재미없게 살거야? 너 이것도 하고 싶다며?’ 라고 마음을 쿡쿡 쑤신다. 물론 이 마음들은 당연히 떠오를 수 있는 생각들이기에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렇지만 하고 싶은게 너무 많은 마음이 조급함과 불안으로 이어지고, 아이를 위해 무리하지 않아야 한다는 마음의 죄바카라감과 결합되면 폭탄이 되어 버린다. 이 마음을 다잡기 위해 오늘 오랜만에 회사의 상담실을 찾아갔다. 작년 가장 힘든 시기에 복직하며 나를 보듬어준 공간이었기에 회사에서 나의 숨겨둔 마음 속을 가장 잘 아는 곳.
‘그동안 잘 지내셨어요?’ 라는 물음에 나는 또 그동안의 걱정과 불안, 고민을 쉴새없이 와다다다다 털어냈다. 반가사유상의 표정으로 가만히 듣던 선생님은 ‘지금 꼭 수건돌리기를 하는 것 같네요’ 라고 운을 떼셨다. 불안과 걱정끼리 수건돌리기 하듯이 끊임없이 증식하고 옮겨지고 쫓아가고 따라가는 모습같다고. 수건돌리기를 하다가 폭탄처럼 터지지 않기 위해서는 ‘지금 불안이 왔고, 나에게 언제든지 불안이 올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야 한다’고 하셨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적절한 말을 해줄 수 있게 그 말을 준비해보자고. 지금 나에겐 그 아이를 다루는 말이 부족한 것 같다고. 유치원에 가기 전 걱정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아이에게 어떻게 말해줄건지 상상해보라고 했다. ‘괜찮아. 그런 일은 없어. 라던가, ‘우리 똥강아지 걱정이 되었구나.’ 라고 안아준다거나. pms가 오기전 감자칩과 만화바카라을 준비해두는 자세라던가. 앞으로 우리가 만날 수 없는 휴직 기간 동안 수 많은 불안과 걱정이 오고갈텐데 그럴 때마다 준비한 말과 행동을 건네주고 다시 내보내서 잔잔한 마음을 유지했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물론 내가 지금 걱정하는 것은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위로와 함께.
내가 불안이를 잘 다루지 못하면 나를 중심으로 한 모든 관계에 영향을 준다. 내가 하고 싶은 걸 못하는게 다 임신 ‘때문’인 것 같고. 나를 도와주지 않는 남편 ‘때문’인 것 같고. 그렇지만 사실 모든 ‘때문’은 ‘덕분’으로 치환될 수 있다는 사실을 되새기면 내 마음에 던져진 돌에도 파동을 내지 않고, 삼켜낼 수 있다. 혼자 조용히 바카라읽는 시간이 줄어들 수 있지만, 아가 덕분에 삶의 새로운 아름다움과 사랑을 발견할 수 있고, 든든히 곁에 있어주는 남편 덕분에 언제나 내가 돌아올 곳이 있다.
관계의 수축과 확장으로 모양이 변화할 때, 특히 내 공간이 협소해지는 순간이 올 때 억울함과 불안이 찾아올 것임을 안다. 그 순간 ‘얘 또 왔네’하고 알아야 한다. 그리고 내가 준비한 말로 그 아이를 잘 다독여 내보내고, 다시 움직이는 관계의 공간에서 나만의 숨 쉴 틈을 마련하면 된다. 다행인 지점은 나는 나의 숨 쉴 구멍을 아주 잘 알고, 그것이 손가락 열개로도 부족할 정도로 많다는 것이다. 내가 원하면 언제든지 나의 시간을 되찾을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잠시 동안은 의사표현이라곤 발차기 밖에 없는 이 작은 햇살이에게 공간을 조금 더 내어주자.
아직은 ‘모든걸 내어줘도 아깝지 않은 내 딸’ 이라는 문장을 쓸 수 없는, ‘내 삶의 공간도 필요해 미안해 내 딸’ 이라고 치사한 마음을 먹는 엄마지만 이게 우리의 관계를 지키는 나의 방식인 걸 어쩌겠나. 아직 물고기같은 움직임으로만 서로를 인지하는 관계지만 내 삶에서 아주 중요한 관계가 될 것임을 안다. 그 관계를 건강하고 현명하게 지켜내기 위해 아이 바로 위에 자리 잡고 있는 마음을 더 단단하게 만들어야지. 쉽게 물렁해지는 물복같은 마음을 햇살이가 눈치채고 서운해하지 않게, 딱복처럼 단단한 마음을 갖고 사각거리는 상큼한 기분만 느낄 수 있도록. 어쩐지 요즘 자꾸 딱복이 땡기더라니. 역시 여름에는 물복보다는 딱복의 마음으로 사는 것이 더 경쾌하다. 불안과 걱정 모두 내려놓고, 햇살이의 춤사위에 맞춰 같이 춤이나 춰야겠다. 그렇지만 내년엔 락페 좀 다녀올게!!
동네 방앗간 shape of time 바카라방에서 진행하는 <만져지는 글 움직이는 마음> 글쓰기 모임에서 작성한 첫 번째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