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 남기다.
하루, 한 달, 일 년, 그리고 수많은 나날 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다녀갔는지 셀 수 없지만, 세상의 소란함을 내려놓고 잠시 숲에 기대어 머물던 사람들과 동행해 온 지도 꽤 오랜 세월이 지났다.
숲에 머무는 시간만큼은 같은 숨을 쉬었을 사람들의 등을 쓰다듬고 곁을 내어주면서 함께했던 무수한 시간 동안, 청량한 공기와 초록의 기운을 나누며 그들과 동행했고 교감했다. 세상 속에서 비틀어지고 넘어지기도 했을, 약해진 마음으로부터 내밀어진 손을 나는 어김없이 잡았고, 그 마음을 읽었다.
모든 이들이 비틀어진 마음으로만 찾아온 것은 아니다. 그저 숲을 거닐고 싶은 사람들도 있었다. 행복한 웃음을 지으며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걷던 이들이.
그들에게는 초록의 손대신 숲의 계절을 선물했다.
어느 계절에 피어난 꽃은 보는 이들의 눈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었다.
어느 계절이 떨군 나뭇잎은 한동안 잊고 있었던 마음속 감성을 느끼게 해 주었다.
어느 계절에 내렸던 눈이 나뭇가지에 소복이 쌓여 지켜보던 이의 마음에도 눈이 내려앉았을 때, 그 마음을 포근하게 만들었다.
나의 넓은 가슴 하나는 숲을 방문하는 모든 이들의 마음을 깊고 넓게 어루만졌다. 그리고 그곳엔 항상 길게 내쉬는 숨이 함께 했다.
계절의 흔적도, 사람이 머물다 간 자리도 모두 이곳의 일부가 되어있다.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염원을 담아 쌓아 둔 돌탑에도, 소망의 길에서 마음속으로 드렸던 조용한 기도들도, 이곳에 고스란히 남아서 낮은 소리가 되어 숲에 머문다. 보이지 않아도 기억과 마음에 남아 있으면 그 또한 흔적이고, 그 흔적은 긴 여운으로 남아 길게 호흡한다.
흔적을 남긴 자도 그 흔적을 듣는 자도 말이 없다. 누군가의 마음속 독백이 바람에 실려 나지막이 전해져 들려올 뿐이다
/ 겨울꽃 김선혜
오늘은 내일이 되면 어제가 되고
그다음 날이 되면 그제가 된다
시간은 잡을 수도 없고 형체도 없어
눈에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눈으로 보고
발을 디딜 수 있는 곳은 다르다
일 년 뒤에 가도 이 년 뒤에 가도 그 자리
눈에 보이는 것은 달라져 있어도
같은 곳에 설 수 있다
이왕 기억을 남겨 둘 거면
시간엔 남겨두지 말아야지
흘러가는 시간에 남기면 희미해지겠지만
내가 다시 올 수 있는 곳에 남기면
조금이라도 덜 희미해지지 않을까
그래서 발을 디딜 수 있는 곳에 남겼다
언젠가 다시 오면 기억하려
꾸욱 꾸욱
발목에 느낌이 올 때까지
딛고 또 딛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