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 남기다

기억을 남기다

by겨울꽃 김선혜
photo by Seonhye
기억을 남기다. photo by Seonhye



그곳에 남기다

/ 겨울꽃 김선혜



오늘은 내일이 되면 어제가 되고

그다음 날이 되면 그제가 된다.

시간은 잡을 수도 없고 형체도 없어

눈에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눈으로 보고

발을 디딜 수 있는 곳은 다르다


일 년 뒤에 가도 이 년 뒤에 가도 그 자리


눈에 보이는 것은 달라져 있어도

같은 곳에 설 수 있다


이왕 기억을 남겨 둘 거면

시간엔 남겨두지 말아야지


흘러가는 시간에 남기면 희미해지겠지만

내가 다시 올 수 있는 곳에 남기면

조금이라도 덜 희미해지지 않을까


그래서 발을 디딜 수 있는 곳에 남겼다.

언젠가 다시 오면 기억하려

꾸욱 꾸욱

발목에 느낌이 올 때까지

딛고 또 딛고




기억을 잊지 않고 오래도록 남길 수 있게 다시 그곳에 가야겠다.


푸르름이 주는 싱그러움.

공기를 감싸는 꽃향기가 좋은 계절, 봄에 가고 싶다.

바람결과 손 악수를 나누고, 포근한 봄 공기에

느긋해진 마음을 편안함으로 채우는 봄에 가고 싶다.


그곳에 서면, 가장 먼저 나를 반겨주는 것은 스쳐 지나가는 결이 고운 바람일 테지.

팔을 길게 뻗어 그 바람을 느끼고, 오롯이 나 혼자 서서, 자연이 들려주는 귓속말에 귀를 기울이고는, 다시 한번 그 자리에 단단히 서리.


그땐, 지나온 시간을 딛고 그곳에 서서 또다시 기억을 남길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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