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약한 순간을 침묵으로 견뎌내고 세상으로 나갈 때를 기다리는 지혜
비가 조금씩 내렸고 물에 젖어 번들거리던 데크 위로 가끔씩 물방울이 하나둘씩 떨어졌다. 숲으로 나있는 길을 걸으며 하늘과 땅, 모두에게 시선을 보냈다. 하늘을 향해 길게 뻗어 있던 키 큰 삼나무는 그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까마득하게 먼 곳에 있었고, 나무를 타고 오르고 있던 넝쿨 식물들은 비에 젖어 싱그러워 보였다. 비에 젖어 축축해 있던 땅에도 식물들이 분포해 있었다. 그중에서 가장 눈에 잘 띄는 것은 고사리류 양치식물이다. 특별할 것 없는 식물이지만 원시림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고 무엇보다 개체수가 많았다.
넓게 자리를 잡고 숲의 낮은 곳에서 살아가는 그 식물은 평소에 알고 보았던 양치식물과는 또 달랐다. 그리 예쁘지도 않고, 조금은 평범한 듯 한 모양새는 내가 알던 식물과 같은 식물이지만, 그날만큼은 특별해 보였다. 아마, '신성한 숲'이라는 이름 하나가 만들어 준 편견이었을지도 모른다.
고사리류는 꽤 오랜 시간 숲에서 살아온 식물이다. 그들은 긴 시간을 묵묵히 견디며 자신의 종족을 이어왔으며, 지금의 모습이 되기까지 진화했다.
그들은 어떻게 오랜 시간 번식하고 번성해 왔을까.
많은 생명들은 자연의 시간에 몸을 맡기고 자신의 길을 간다. 모두, 오고 갈 때를 알 수 없다. 그때는 신만이 알고 있을 뿐이다. 자연에서 태어나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기까지, 숱한 풍파를 지나든, 평온한 삶을 살았든, 모든 생명은 결국 자연으로 돌아간다. 그 과정에서 그들의 존재를 세상에 남기고 기억하게 하는 것은 그들의 '자손'이다. '자손'은 누군가가 이 땅에 살아 있었다는 가장 강한 증거이자 흔적이다. 그들은 그 흔적을 대대로 남기기 위해 연약한 순간에는 침묵해 있다가, 때가 되었을 때 세상 밖으로 나와 번식하고 번성하면서 숲에 남아, 온몸으로 그들의 존재를 증명하고 있다.
그들은 여러 개의 여린 포자를 포자낭에 싸고 그 포자낭을 얇은 포막으로 덮는다. 그 안에서 안전하게 자란 포자가 세상으로 나갈 준비가 되면 포막은 자연스럽게 포자들을 세상 밖으로 내보낸다. 숲의 여기저기에 떨어진 포자들은 조그만 하트 모양의 전엽체로 자라나고, 비가 내리거나 이슬이 맺혀 전엽체 표면에 물방울이 생기면 수정란을 형성한다. 수정란은 전엽체 안에서 작은 고사리를 만들어 내고, 작은 고사리는 스스로 광합성을 하고 뿌리를 내린다. 작은 고사리가 독립할 수 있게 되면 역할을 다한 전엽체는 시들어 사라지고, 독립한 고사리는 땅속에 줄기를 넓게 뻗으면서 성숙한 고사리로 자라난다.
그들은 세상에 나갈 준비가 될 때까지, 천천히 시간을 보내면서 조급함을 경계했으며, 눈에 띄지 않도록 침묵했다. 그리고 침묵해 있는 시간 동안 멈춰 있지 않고 성장하면서 자신을 조용히, 단단하게 감싸안는 법을 깨우쳤다.
그렇게 긴 어둠을 견뎌내고 세상 밖으로 나왔을 때, 깊은 침묵과 기다림으로 인내해 낸 시간을 보상이라도 받듯, 세상을 향해 날개를 펼쳤다.
그들에게 있어서 기다림의 시간은 멈춰있던 시간이 아니었다. 그들답게 살아가기 위한 성장의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