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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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면 단상의 다음 편은 ToB 작가님이 이어받으실 예정입니다.
1.
ㅇㅇ이는 푹 퍼진 면을 좋아하나 봐. ㅇㅇ이는 푹 퍼진 면을 안 좋아해. ㅇㅇ이는 사실 꼬들한 면을 좋아해. 다만 라면이 맵고 뜨거워서, 면이 꼬들함을 유지할 때까지 몇 입 못 먹었을 뿐이다. 여보세요. 엄마. 으아앙. 배고파. 으아아앙. 아빠도 없어. 그러면 라면 끓여 먹어. ㅇㅇ이는 라면을 끓였다. 퉁퉁 분 면을 퉁퉁 분 얼굴로 씹어 삼켰다. 다 먹진 못했다. ㅇㅇ이는 더 이상 배가 고프지 않고 푹 퍼진 면을 좋아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ㅇㅇ이는 더 이상 울지 않았다. 엄마에게 다시 전화를 걸지 않았다. 아빠를 기다리지도 않았다.
2.
라면이 먹고 싶은데 냄비에 끓이기 귀찮아. 컵라면은 먹기 싫고. 아빠가 엄청난 걸 알려줄게. 뭔데? 뽀글이. 군대에서 남자들이 라면을 먹는 방법이지. 엄청 맛있어. 해봐. 봐봐. 이렇게 라면 봉지에 스프를 넣고 뜨거운 물을 붓는 거야. 이렇게. 그리고 봉지를 잘 오므리고 4분을 기다렸다가 봉지째 먹는 거야. 컵라면보다 더 맛있어. 정말이네. 엄청 편하고 맛있다. 뽀글이가 환경호르몬 범벅의 맛이라는 점에 대하여, 그들은 인식하지 못했다.
3.
일과 시작 전, 선배의 모니터 화면 상태 표시줄에 그 이름이 반짝거렸다. 옆에 앉아 있으니 말로 해도 될 텐데. 선배는 반짝거리는 후배의 이름을 눌러 메신저 화면을 켰다. 선배님, 저랑 라면 먹으러 가실래요? 제가 사드릴게요. 라면? 좋아요. 후배는 성큼성큼 앞서 걸었다. 선배는 후배의 커다란 등 뒤를 따라갔다. 구내식당으로 향하는 길의, 아직 차가운 아침의 공기는 기묘하게 달큰했다. 라면 두 개 주세요. 선배는 후배가 라면값을 계산하는 모습을 옆에 서서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선배는 원래 후배에게 얻어먹지 않는다. 선배와 후배는 마주 앉아 별 말없이 라면을 후룩후룩 먹었다. 후배는 선배에게 김밥도 먹으라고 건넸다. 선배는 김밥에서 단무지를 골라내고 입에 쏙 넣었다. 후배는 선배가 단무지를 골라내는 모습을 보고 뭐라 말을 하려다 그냥 라면을 먹었다. 그날 아침 선배는 배가 고프지 않았다. 그녀는 원래 후배에게 얻어먹지 않는 선배다.
4.
라면 먹고 싶다. 라면 끓여주세요. 맵고 꼬들하게. 알겠어. 그는 파도 송송 썰어 넣고 맵고 꼬들한 라면을 뚝딱 끓여주었다. 여자는 의자 위에 쪼그려 앉아 라면을 호록호록 먹었다. 그는 라면을 먹는 여자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여자의 맨발로 시선을 떨어트렸다. 여자의 오른쪽 새끼발톱은 두 개로 갈라져 있었다. 몽골인의 후예는 그렇다던가 하는 말을 어디서 들은 것도 같다. 그가 여자에게 물었다. 라면 다 먹으면 발톱 깎아줄까? 응? 발톱을? 왜요? 새끼 발톱이 갈라져있으면 이불에 걸리고, 그럼 아프잖아. 발톱을 깎아주겠다는 남자는 처음이네. 여자는 맵고 꼬들한 라면을 호호 불어 국물까지 싹싹 긁어먹은 후 그에게 두 발을 내밀었다. 그는 손톱깎이를 가져와 여자의 발톱을 또각또각 깎아주었다. 발톱을 깎아준 남자는 처음이네. 라면을 먹고 발톱을 깎는 동안 그들은 같은 음악을 수도 없이 반복해서 들었다.
4+
Track suits and red wine Movies for two We'll take off our phones And we'll turn off our shoes We'll play Nintendo Though I always lose 'Cause you'll watch the TV While I'm watching you There's not many people I'd honestly say I don't mind losing to But there's nothing Like doing nothing With you Dumb conversations We lose track of time Have I told you lately I'm grateful you're mine? We'll watch The Notebook For the seventeenth time I'll say, it's stupid Then you'll catch me crying We're not making out On a boat in the rain Or in a house I've painted blue But there's nothing Like doing nothing With you So shut all the windows And lock all the doors We're not looking for no one Don't need nothing more You'll bite my lip and I'll want you more Until we end up In a heap on the floor Mm You could be dancing on tabletops Wearing high-heels Drinking until the world Spins like a wheel But tonight your apartment Had so much appeal Who needs stars? We've got a roof And there's nothing Like doing nothing With you Mm No, there's nothing Like doing nothing With you bruno major - nothing
5.
그녀는 냄새로 기억하는 사람이었다. 사람도 냄새로 기억하곤 했다. 섬유유연제 냄새, 샴푸 냄새, 화장품 냄새, 향수 냄새, 좋은 냄새, 나쁜 냄새, 체취든 뭐든. 무취의 남자가 있었다. 그녀가 그의 영역에 아무리 오랜 기간 빈번하고 가까이 들고 나도 그에게서 아무런 냄새를 맡을 수 없었다. 어느 날 그들은 서로를 스쳐지났다. 마침내 그에게서 냄새가 났다. 그녀는 킥킥 웃었다. 그에게 물었다. 라면 드셨어요? 예. 그녀는 그가 라면을 먹는 모습을 목격하지 못해도, 그가 라면을 먹었다는 사실에 대해 언제나 알 수 있게 되었다. 그는 라면의 냄새만 머금는 사람이었다.
6.
밥 뭐 먹었어. 컵라면이요. 악. 컵라면 먹지 말랬지. 컵라면 개수 하나가 비어. 제가 먹었어요. 악. 컵라면 먹지 말랬지. 밥은. 이따 컵라면 먹게요. 왜 컵라면을 먹어. 우리 운곡공파가 컵라면을 먹으면 안 되지. 부장님은 왜 나오셨는데요? 컵라면 먹으러. 우리 나가서 곰탕 먹을까? 좋아요. 거긴 반찬이 하나밖에 없으니까 회전초밥집에 가자. 좋아요. 회전초밥집 대기가 기네. 전복돌솥밥 먹으러 가자. 좋아요. 사실 저는 컵라면도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