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라면 단상

나의 라면 잔혹사, 혹은 다정함에 대하여

by여름

나는 사실 라면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이유는 단순하다. 먹는 속도가 남들보다 느렸던 나에게 라면 하나를 다 먹는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남들은 맛깔나게 먹어 치우는 그 시간을 따라잡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먹으면 먹을수록 처음의 탱글탱글했던 면발은 힘없이 툭툭 끊어지기 일쑤였고, 나는 그 고슬고슬하고 탱탱한 면발이 식어가기 전에 허겁지겁 입속으로 욱여넣기 바빴다. 그래서 제대로 맛을 음미했다가는 영영 탄력 있는 그 자태를 마주할 수 없는 것이었다.


늘 절반밖에 먹지 못한 채로 퉁퉁하게 불어버린 라면을, 처음보다 양이 더 많아진 듯한 우동같은 면발을 싱크대에 부어버리며 왠지 모를 죄바카라감도 들었던 것 같다. 다 먹지도 못할 음식에 욕심낸 탐욕적인 사람이 된 듯한 기분에 휩싸이곤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라면을 즐겨 먹지 않는다.


하지만 라면에는 거부할 수 없는 지독한 매력이 있다. 희뿌연 김 사이로 퍼지는 매콤 짭조름한 향기, 그 당당한 자태를 보고 있노라면 어찌나 먹음직스럽고 침이 절로 고이는지 나도 남들처럼 면치기를 해가며 맛깔나게 먹어보고 싶은 마음이 마구 솟구치곤 한다.

그래서 생긴 나의 스킬.


“한 입만.”


그 한마디가 어지간히 얄미움을 산다는 걸 알고는 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그 한입이 얼마나 맛있는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아는 사람은 다 알고 있지 않은가. 갓 끓여내 희뿌연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고 매콤 짭조름한 향이 코끝을 자극할 때 외치는 한 마디.


“한 입만!”


그릇 하나에 머리를 맞대고 함께 먹는 라면의 맛은 정말 일품이다. 푸짐하게 한 솥 끓여 불룩해진 배를 두드릴 정도로 먹기보다는, 조금은 아쉬운 듯 부족하게 먹는 것이 훨씬 감칠맛 난다. 그래서 아이들과 함께 라면을 먹을 때면 늘 조금 부족하게 끓인다. 빠른 젓가락 놀림이 기분 좋은 리듬을 만들어내고 후루룩 면치기 하는 소리가 서로의 입맛을 자극한다.


어쩌면 라면 자체의 맛보다 ‘함께’ 먹는다는 사실이 그 맛을 더욱 다채롭게 해주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아이들과 마주 앉아 젓가락을 부딪치며 먹는 그 순간만큼은 라면도 꽤 괜찮은 음식이 된다.




미스블루 작가님을 시작으로 탄생한 'OO의 라면 단상'이 여러 작가님들을 거쳐 저에게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평소 애정하는 김동의 작가님의 제안에 바통을 이어받게 되어 더욱 기쁜 마음입니다. 각자의 방식으로 풀어낸 라면 이야기가 인상 깊었던 만큼, 저 역시 저만의 색깔로 이 이야기를 보태봅니다.


다음으로 이 릴레이를 이어가 주실 작가님은, 유니크한 시선과 표현으로 많은 독자들의 공감을 자아내시는 빈자루 작가님입니다. 과연 라면의 여정이 어디까지 닿을지 궁금한 마음을 담아, 역대 라면단상 릴레이글을 소개하며 이 글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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