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명적인 나의 라면 이야기
내게 라면의 첫 기억은 1983년 무렵이다. 인천 주안동 외할머니 댁에 살던 시절, 이름 모를 동네 형들의 손에 들린 라면 포장지 속에서 뽀얗게 익어가던 면발을 마주한 것이 그 시작이다. 부드러우면서 말캉해 보이는 하얀 실타래의 맛이 어찌나 궁금했는지 오래도록 지워지지 않는 장면이다.
이후 엄마가 뭔가를 배우려 집을 자주 비우던 국민학교 2학년때까지는 아주 가끔 라면을 끓여주셨다. 마이콜이 라면은 구공탄에 끓여야 제맛이라며 부르짖던 노래로 인해 한때 더욱 라면을 찾았지만 식욕이 너무 없던 시절이라 막상 식탁에 올려진 라면을 보면 그저 밥처럼 그릇을 깨끗이 비워내야만 하는 숙제처럼 느껴졌다. 2학년 여름방학 중 포천 베어스타운 콘도에 모인 친척들과 휴가를 보낼 때 뜯지 않은 새 라면박스를 발견했다. "푸라면? 킥킥... 라면 이름이 뭐 저래?" 하며 숙모들이 정성스레 끓여주신 신(辛)라면을 반절이나 남겼는데, 오늘날까지 사나이 울리는 그 맛으로 인기가 지속될 줄은 몰랐다. 삼양라면, 쇠고기라면부터 지금은 사라진 삼양 이백냥 라면, 빙그레 이라면과 우리집 라면(짜장면은 짬뽕하고도 완전히 다르므로 나는 가급적 라면을 좁게 정의 내리려 한다. 짜파게티, 짜짜로니, 짜장범벅, 카레범벅과 같은 류는 논외로 하겠다.)까지 내 앞에 놓인 라면 그릇의 내용물은 변주를 주었으나 내 라면에 대한 욕구는 변함이 없었다.
내가 스스로 냄비에 물을 담아 가스불에 올릴 수 있을 무렵부터 오히려 라면에 대한 흥미를 더 잃었다. 수위를 조절할 줄 몰라 직접 조리한 라면은 늘 막힌 변기를 가득 채운 탁수가 연상되는 외형을 갖추게 했고 맛은 싱겁기 그지없었기 때문이다. 눈썰미가 있어 일찌감치 계란후라이부터 라면 끓이기까지 잘했던 동생에게 라면 심부름을 시키기 시작했다. 동생에게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이면 머지않아 김이 모락모락 나는 라면 한 그릇이 내 방 바둑판 위에 놓여졌다. (단언컨대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것은 타인 조리, 타인 점유하에 놓인 라면이다.) 그때의 라면은 꽤 맛있었지만 마치 스펀지 같은 이물감이 거슬렸던 인조 콩고기류 건더기는 거의 다 뱉어냈다. 모처럼 아빠까지 집에 계셨던 어느 일요일, 짜파게티 요리사는 아니었지만 동생 몫까지 3인분의 라면을 내가 손수 끓여본 일이 있다. 그 모습이 우스웠던지 주방 뒷정리를 하던 엄마는 싱크대 위로 뜯기지 않은채 덩그러니 놓인 건더기 스프 3 봉지를 발견하자 내 소행임을 알아차렸고, 어쩐지 맛이 굉장히 심심했다는 아빠의 후기를 들을 수 있었다.
본격적으로 라면 맛을 알게 된 때는 내 식욕이 최고조에 이른 중학 시절이다. 육개장 사발면 한 그릇을 뚝딱 비우고 남은 국물에 차게 식은 도시락통 속 밥을 말아먹으면 입부터 융털까지 춤을 추는 듯했다. 1994년 무더운 중2의 여름날엔 엄마가 이름조차 생소한 라면 한 박스를 가져와 발코니 구석에 두었다. 뉴스를 보니 북한 김일성의 사망 소식을 알림과 동시에 슈퍼마켓마다 텅 비워진 라면 매대를 카메라가 비췄다. 우리 엄마처럼 라면 박스를 들고 이리저리 뛰어다녔던 점잖은 어른들이 많았나 보다. 비상식량이었던 박스는 동생의 손에 의해 다음날 바로 개봉됐고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쐬며 매일같이 그 라면을 섭취했다. 어떤 이유로든 엄마가 자리를 비운 집에서 끼니로 많은 라면을 접했지만 '왜 나의 식사는 이래야만 하는가'와 같은 불만은 전혀 없었다. 적당히 꼬들한 면발과 짭조름한 글루탐산나트륨의 단순한 조합은 전혀 질리지 않았다.
1995년부터는 그랬던 라면을 끊었다. 무엇 때문인지 라면을 먹으면 높은 확률로 배탈이 났다. 라면을 먹은 날 유제품까지 입대면 100% 배를 움켜쥐고 아스팔트 위에서 길을 잃은 지렁이처럼 괴로워했다. 그래서 라면을 멀리했다. 99학번으로 입학한 대학 학생회관 식당에서는 라면 한 그릇을 100원에 판매했다. IMF의 여파가 여기저기 말초조직까지 퍼져 괜스레 내 지갑까지 더 굳게 닫혔던 때여서 그랬는지, 학교 앞 식당가에서 메뉴당 단가를 1800원에서 2300원으로 상향하자마자 친구와 학생회관 식당 라면을 찾았다. 먹으면 배탈이 날 줄 알면서도 불그스름한 국물로 입을 축이기 시작해서 빠르고 깨끗하게 그릇을 비웠다.
이후 경찰서에서 의경 보급물자로 지급된 신라면을 가끔 끓여 먹어봤는데 신기하게 전보다 복통의 횟수나 정도가 조금은 줄어든 듯했다. 그렇게 다시 접한 라면은 온라인 게임생활을 시작해서도 조심스럽게 다가섰던 음식이었다. 구내식당에서는 매일 아침 간단한 한식과 라면을 공급했고 한식 대기열에 서 있다가도 라면의 강렬한 MSG내음의 유혹에 못 이겨 줄을 바꾸는 이들이 부지기수였다. 나도 몇 차례 라인을 갈아탄 부류로 찌그러진 양은 냄비에 강한 화력으로 끓여 나온 국물과 면발 속에 수줍게 숨어 있던 반숙 노른자의 황홀한 하모니에 이성을 잃고 게걸스레 먹어치웠다. 김치 따윈 필요 없었다. 이미 충분히, 아니 적당히 짜니까 라면 본연의 맛을 다른 반찬으로 희석시키기 싫었다. 맛있게 먹었으면 그만인 것인데 너무 깨끗해진 그릇을 퇴식구에 넣곤 항상 후회를 했다. 영양, 성분 같은 것들은 둘째치고 혹시 모를 배탈에 대한 걱정이 앞섰기 때문이다.
라면에 대한 경계는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기자 완전히 허물어졌다. 복통의 횟수도 확연히 줄어 그 사악한 맛에 마음놓고 중독되기로 작정했다. 카트라이더 러시 플러쉬 게임을 하며 이벤트 아이템을 마련하기 위해 진라면 컵라면을 순한맛과 매운맛까지 묶음으로 구입했고 시답잖은 라면 굿즈를 타내기 위해 또 다른 라면을 팬트리에 진열해 놓기도 했다. 그렇게 라면의 세계를 확장해 가던 나는 뜻밖의 장애물과 맞닥뜨렸다. 위험할 정도로 높아진 혈압, 늘어난 내장 지방에 의해 두둑해진 뱃살, 중성지방과 혈당 수치까지 모든 지표가 팜유에 튀겨진 탄수화물과 같은 먹거리를 피하라고 목놓아 외치고 있었다. 게다가 배우자에게 청천벽력처럼 닥친 희귀 신장질환까지 더 이상 우리 집 주방 팬트리에 라면이 놓일 일이 없게끔 만들었다.
그럼에도 나는 라면 맛을 그리워하고 있다. 내가 종종 시청하는 극한직업 류의 영상에서 꼭 어선 선원들이 중간에 라면을 끓여 드시는데 그 장면에 유독 라면의 유혹이 짙어지곤 한다. 자꾸 떠오르지만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 라면은 내게 헤로인과 같은 존재이다.
제안이 왔다는 매우 희귀한 온라인카지노 알림을 받고 반사적으로 좌심방에서 우심실까지 요동쳤습니다. 감격스럽게도 열렬히 팔로잉하는 찬란 작가님으로부터 라면단상에 대한 글 작성을 요청받았고 출간준비로 정신없었지만 고민 없이 그러겠다고 했습니다. 릴레이 글쓰기라는 참신한 방법에 마냥 신기했는데 듣보잡 작가인 저를 마지막으로 명맥이 끊기도록 둘 수는 없는 노릇이어서 어느 작가님께 바통을 넘겨야 할지가 더 막막해졌습니다.
그나마 몇 차례 저와 댓글 소통을 했던 작가님들을 떠올려 봤습니다. 사전 허락없이 작가명을 언급하고 친한척해서 죄송합니다. 모두 제가 존경의 시선으루다가 바라보는 작가님들 입니다. 혹시 언급된 것이 불편하신 작가님이 계신다면 언제든 말씀해 주세요. 즉시 수정하겠습니다.
화양연화, 김인숙, 포도송이 x 인자, 소리글, 모은수 그리고 안성탕면이 된장베이스라는 사실을 알게 해 주신 무화 작가님까지 의심할 여지없이 훌륭한 라면을 끓여주실 분들이지만 모두 일상이 바쁘시거나 출간 혹은 다른 작품들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고 있기 때문에 제안드릴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김미현, 이수 E Soo, 소라비 작가님들 역시 너무 제안드리고 싶었고 외국 생활로 인해 한층 더 아련하거나 독특한 시선의 라면단상이 탄생할 수 있을 테지만 외국 생활이 힘겨울 수 있는데 괜히 숙제를 드리는 것 같아서 국내에서 활동 중이신 온라인카지노 작가님 위주로 다시 알아봤습니다.
친애하는 사랑의 생존자 작가님은 고된 육아로 매일매일 생존해내는데 여념이 없으신 것 같고, Ubermensch 님은 다른 작가님들과 새롭게 협업 프로젝트 중이신 것으로 알아 어려울 것 같았습니다.
종교라는 거룩하고 다소 무거운 소재를 연재 중이신 꽃피랑 작가님, 워킹맘임에도 한 글자 한 문장 정성가득한 소설을 연재 중이신 조이 작가님 그리고 괜찮지 않은 날을 담담히 글로 쏟아내는 여름 작가님으로 압축되었습니다. 많은 고심 끝에 분식집을 운영하며 당시의 삶과 생각을 녹여낸 '고마워 핫도그'를 연재하셨던 여름 작가님께 큰 기대와 동시에 무거운 마음을 담아 라면을 맛있게 끓여주실 것을 제안드렸습니다.
라면업계 내수시장에 미량이나마 찬물을 끼얹은 것 같아 송구스럽습니다. 부디 환율과 수출 호조로 위로받길 바랍니다.
라면단상 릴레이 글 소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