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All-Day-Project (120/365)
시스템이 나를 데려다준다 — 0편: "왜" 없이도 걸을 수 있다
시스템이 나를 데려다준다 — 4편: 의지에 기대지 않는 법
시스템이 나를 데려다준다 — 에필로그: 목적지 없는 산바카라
2년 전 글의 마지막 줄은 이랬다. "글도 좀 더 쓰고." 그리고 실제로 글을 좀 더 썼다. 이 시리즈를 포함해서. 그때는 이런 글들을 쓰게 될 줄 몰랐다. 협업에 대해 쓰고, 팀 운영에 대해 쓰고, 삶의 시스템에 대해 쓰게 될 줄. 목표가 아니었다. 그냥 쓰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
이 경험 자체가 이 시리즈의 결론이기도 하다.
돌아보면 세 개의 시리즈가 하나의 여정이었다. "함께 간다는 것"에서는 왜 함께해야 하는지를 물었다. 두 사람의 신뢰에서 시작해 국가 규모의 협업까지, 규모가 달라질 때마다 문제의 성격이 어떻게 변하는지를 따라갔다. "만드는 사람들의 협업법"에서는 그 "함께"를 제품팀에서 어떻게 실천할 것인지를 다뤘다. 조합, 육성, 리듬, 판단, 평가, 포기, 문화. 팀이라는 시스템을 만드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이 시리즈에서는 결국 나 자신에게로 돌아왔다. 팀의 시스템을 설계하던 사람이 자기 삶의 시스템을 마주한 이야기.
밖에서 안으로, "왜"에서 "어떻게"로, 그리고 마지막에 "어떻게"가 "왜"를 대신할 수 있다는 발견으로. 이 흐름을 처음부터 계획한 건 아니다. 쓰다 보니 이렇게 됐다. 그리고 그게 바로 시스템의 작동 방식이다. 목적지를 정하지 않아도, 시스템이 돌아가면 어딘가에 도착한다.
이 시리즈에서 나눈 이야기를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되짚어본다.
목표보다 시스템이 먼저다. 목표는 달성 전에는 결핍이고 달성 후에는 공허하지만, 시스템은 매일의 행동이고 매일의 작은 승리다. "왜"를 찾지 못해도 시스템은 돌아간다. 돌아가다 보면 "왜"가 보이는 날이 온다.
시스템의 연료는 의지가 아니라 에너지다. 시간을 관리하는 게 아니라 에너지를 관리하는 거다. 에너지를 올리는 기본 행동을 시스템으로 만들고, 에너지를 깎는 것들을 줄이고, 자기 리듬에 맞춰 중요한 일을 배치하는 것. 이게 다른 모든 시스템의 기초 공사다.
시스템은 작을수록 살아남는다. 완벽한 아침 루틴보다 규칙 하나, 트리거 하나, 확인 하나로 이루어진 최소 시스템이 오래간다. 부끄러운 수준의 첫 번째 버전이라도 일단 돌리는 게 중요하다. 돌리면서 고치면 된다.
의지에 기대지 않으려면 환경을 설계해야 한다. 트리거로 시작점을 자동화하고, 디폴트로 선택을 미리 정해두고, 하고 싶은 행동의 마찰은 줄이고 하고 싶지 않은 행동의 마찰은 늘리는 것. 의지력의 방향을 뒤집어서, "안 하려면" 의지가 필요한 구조를 만드는 것.
시스템은 반드시 망가진다. 그리고 그건 정상이다. 망가지지 않는 시스템이 아니라 빨리 다시 켜지는 시스템을 만드는 게 목표다. 다시 켜는 데 필요한 건 다음 한 번이면 충분하다. 자바카라 대신 진단. 실패에서 시스템을 개선할 단서를 찾기. 앞으로 넘어지기.
그리고 이 시스템들이 쌓이면 서로를 강화하기 시작한다. 한 분야에서 최고가 아니어도, 여러 분야의 평범한 스킬이 조합되면 독보적 가치가 된다. 개별 시스템이 선순환으로 연결되는 순간, 복리 효과가 시작된다.
이렇게 정리하니 깔끔해 보이지만, 솔직히 나의 현실은 깔끔하지 않다. 에너지 관리가 엉망인 주가 있고, 트리거를 무시하는 날이 있고, 시스템이 멈춰서 일주일째 방치하는 때도 있다. 이 글을 쓰면서도 "나는 이걸 잘 실천하고 있는가?"를 물으면 솔직한 답은 "반반"이다.
하지만 2년 전과 달라진 게 있다면, 그 "반반"에 대해 자바카라하지 않게 됐다는 거다. 시스템은 반드시 망가진다고 썼다. 내 시스템도 망가진다. 그때 "나는 왜 이럴까"가 아니라 "어디를 고치면 될까"를 묻게 된 것. 그게 이 시리즈를 쓰기 전과 후의 가장 큰 차이인 것 같다. 글을 쓰는 것 자체가 시스템을 정비하는 과정이었다.
애덤스는 이렇게 말했다. 성공한 사람들은 운을 직접 통제하지 않는다. 대신 운이 자기를 찾아올 확률을 높이는 방식으로 기회를 관리한다고. 나는 여기에 한마디를 덧붙이고 싶다. 운이 찾아올 확률을 높이는 가장 좋은 방법은 매일 뭔가를 하는 것이다. 거창할 필요 없다. 작아도 된다. 다만 멈추지 않으면 된다. 멈춰도 다시 시작하면 된다.
2년 전 글에서 이영도 작가의 문장을 인용했었다. "나는 단수가 아니다." 지금은 이 문장을 조금 다른 의미로 읽는다. 나는 단수가 아니다—나를 구성하는 시스템들의 복수다. 글쓰기라는 시스템, 운동이라는 시스템, 일이라는 시스템, 관계라는 시스템. 이것들이 돌아가고, 멈추고, 다시 돌아가면서 나라는 사람이 조금씩 어딘가로 이동하고 있다. 어디로 가는지는 아직 모른다. 그래도 괜찮다.
제법무아. 고정된 나는 없다. 고정된 목적지도 없다. 다만 시스템이 있고, 시스템이 돌아가고, 돌아가는 시스템이 나를 어딘가로 데려다준다. 목적지 없는 산바카라. 하지만 걸음은 쌓이고, 쌓인 걸음은 어딘가에 도착한다. 도착하고 나서야 "아, 여기였구나"를 알게 된다. 그걸 사람들은 운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재능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노력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나는 시스템이라고 부르겠다.
이번엔 진짜라고요. 근데 매번 진짜인 거 맞다.
글도 좀 더 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