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를 측정하라

2026 All-Day-Project (115/365)

byJamin

시스템이 나를 데려다준다 — 0편: "왜" 없이도 걸을 수 있다

시스템이 나를 데려다준다 — 1편: 목표와 시스템

시스템이 나를 데려다준다 — 2편: 에너지를 측정하라


하루에 주어진 시간은 누구에게나 24시간이다. 이건 바꿀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시간을 관리하려고 한다. 투두리스트를 만들고, 캘린더를 짜고, 뽀모도로 타이머를 돌리고. 그런데 이상한 일이 있다. 똑같이 한 시간을 앉아 있어도 어떤 날은 두 시간 분량의 일을 해치우고, 어떤 날은 한 줄도 못 쓴다. 시간은 같았는데 결과가 다르다. 뭐가 달랐을까?


에너지가 달랐다.


이걸 처음 의식한 건 별것 아닌 경험에서였다. 어느 날 아침, 일찍 일어나 운동을 하고 샤워를 하고 바카라상 앞에 앉았더니, 머릿속이 맑았다. 평소에 한 시간 걸리던 글이 40분 만에 나왔다. 다음 날은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서, 커피부터 찾고, 핸드폰을 보다 보니 한 시간이 지났다. 같은 글을 쓰려고 앉았는데 두 시간이 지나도 마무리가 안 됐다. 두 날의 차이는 의지력이 아니었다. 몸과 머리의 상태가 달랐다. 에너지가 달랐다.


스콧 애덤스는 이걸 명확하게 말한다. 추적해야 할 가장 중요한 지표는 개인 에너지라고. 시간이 아니라 에너지를 관리하라고. 에너지가 높으면 같은 시간에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고, 판단도 좋아지고, 사람을 대하는 태도도 달라진다. 에너지가 바닥이면 아무리 시간이 남아도 쓸모가 없다. 소파에 누워 핸드폰만 스크롤하다가 하루가 간다. 그리고 자기 전에 "오늘도 아무것도 못했네"라고 자바카라한다. 하지만 문제는 의지가 아니라 연료가 바닥났던 거다.


이걸 인정하면 질문이 바뀐다. "어떻게 하면 더 열심히 할 수 있을까"에서 "어떻게 하면 에너지를 높은 상태로 유지할 수 있을까"로. 이 질문의 전환이 생각보다 많은 것을 바꿔준다.


에너지를 올려주는 것들은 의외로 뻔하다. 운동, 수면, 음식. 너무 당연해서 무시당하는 것들. 하지만 뻔한 것들이 뻔하게 작동한다. 7시간 자는 것과 5시간 자는 것의 차이를 모르는 사람은 없는데, 막상 7시간을 지키는 사람은 드물다. 운동이 좋다는 걸 모르는 사람도 없는데, 꾸준히 하는 사람은 적다. 뻔한 걸 실천하는 게 어려운 거지, 뻔한 걸 모르는 게 아니다.


그래서 여기서도 시스템이 필요하다. "운동을 열심히 하겠다"는 목표이고, "아침에 일어나면 운동복부터 입는다"는 시스템이다. "잘 먹겠다"는 목표이고, "일요일에 일주일치 식사를 준비한다"는 시스템이다. "일찍 자겠다"는 목표이고, "밤 10시에 핸드폰을 거실에 놓는다"는 시스템이다. 에너지를 올리는 것 자체를 시스템으로 만들어야 한다. 에너지 관리가 시스템의 인프라인 셈이다. 건물을 짓기 전에 기초 공사를 하듯이.


여기서 한 가지 더 중요한 것이 있다.

에너지를 올려주는 것뿐 아니라, 에너지를 깎아먹는 것을 아는 것. 이쪽이 오히려 더 유용하다.


나의 경우를 말하면, 결정하지 못한 일이 에너지를 가장 많이 잡아먹는다. 해야 하는 건 알겠는데, 언제 할지 정하지 않은 일. 머릿속에 떠다니면서 "이거 아직 안 했는데…"라고 계속 속삭이는 것들.


실제로 그 일을 하는 데 드는 에너지보다, 하지 않은 채 떠안고 있는 데 드는 에너지가 더 클 때가 많다. 2년 전 "귀찮으면 하거나 무시하기"가 작동한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빨리 결정해버리면—하든 안 하든—머릿속의 소음이 줄어든다. 결정되지 않은 상태가 에너지를 갉아먹는 거지, 일 자체가 에너지를 갉아먹는 게 아니었다.


사람도 에너지에 영향을 준다. 이건 좀 조심스러운 이야기인데, 사실이니까 쓴다. 만나고 나면 에너지가 올라가는 사람이 있고, 만나고 나면 축 처지는 사람이 있다. 대화의 내용이 아니라 대화의 방식이 다른 거다. 가능성을 이야기하는 사람 옆에 있으면 나도 뭔가 하고 싶어지고, 불평과 비관을 반복하는 사람 옆에 있으면 나도 모르게 무기력해진다. 누구와 시간을 보내느냐가 에너지의 기본 수위를 바꿔놓는다.


환경도 마찬가지다. 정리된 바카라상 앞에 앉는 것과 어질러진 바카라상 앞에 앉는 것은 같은 시간이어도 다른 에너지를 만든다. 조용한 공간과 시끄러운 공간, 자연광이 드는 곳과 형광등만 있는 곳. 사소해 보이지만 이런 것들이 하루의 에너지 총량을 조용히 올리거나 내린다. 시스템을 설계할 때 "무엇을 할 것인가"만 생각하기 쉬운데, "어떤 환경에서 할 것인가"도 같은 무게로 고민해야 한다.


애덤스는 자기 에너지 리듬을 아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는 아침에 에너지가 가장 높아서 아침에 창작을 하고, 오후와 저녁에는 에너지가 떨어지니까 새로운 것을 배우거나 단순한 일을 했다고 한다. 창작은 에너지가 필요하지만, 흡수는 에너지가 낮아도 가능하니까.


이건 사람마다 다르다. 나도 아침형인 줄 알았는데, 돌아보니 글은 밤에 더 잘 쓴다. 대신 아침에는 운동과 정리가 잘 된다. 중요한 건 자기만의 리듬을 파악하고, 에너지가 높은 시간대에 가장 중요한 일을 배치하는 것이다.


여기서 "만드는 사람들의 협업법"에서 했던 이야기가 떠오른다. 3편에서 팀의 리듬을 설계하라고 했었다. 매 스프린트마다 전력 질주하면 팀이 무너진다고. 숨을 고르는 시간이 있어야 다음 달리기의 속도가 나온다고.


팀에게 한 이야기를 정작 나 자신에게는 안 하고 있었다는 걸 이 글을 쓰면서 깨닫는다. 남에게는 "쉬어가면서 하세요" 하면서 나는 에너지 바닥까지 밀어붙이고, 무너지고, 자바카라하고, 다시 밀어붙이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에너지 관리를 시스템의 관점에서 정리하면 이렇다.


첫째, 에너지를 올리는 기본 행동(운동, 수면, 식사)을 시스템으로 만든다. 의지에 맡기지 않고 환경과 루틴으로 자동화한다. 둘째, 에너지를 깎는 것들을 인식하고 줄인다. 결정하지 못한 일들을 빨리 처리하고, 환경을 정리하고, 관계를 의식적으로 관리한다. 셋째, 자기 에너지의 리듬을 파악하고, 높은 시간대에 중요한 일을 배치한다.


이렇게 놓고 보면 에너지 관리는 시스템 이전의 시스템이다. 다른 모든 시스템이 돌아가기 위한 기초 공사. 글쓰기 시스템도, 운동 시스템도, 일의 시스템도 에너지가 바닥나면 다 멈춘다. 그러니 가장 먼저 돌려야 할 시스템은 에너지 시스템이다.


시간이 부족한 게 아니다. 에너지가 부족한 거다. 그리고 에너지는 관리할 수 있다. 의지로 쥐어짜는 게 아니라, 시스템으로 채우는 것이다.


에너지의 기초가 잡혔다면, 다음 질문은 이거다. 시스템을 어떻게 시작할 것인가. 많은 사람들이 여기서 너무 크게 시작하려다 포기한다. 다음 편에서는 "가장 작은 시스템"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작을수록 살아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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