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향의 사치에 대하여

기웃거릴 능력도 필요도 없다

이제 이 글로서 <대하여에 대하여>가 10화를 맞이한다. 매주 한편씩 썼으니 이제 두 달 반 정도가 된 셈이다. 아주 오랫동안 미뤄왔던 일이었고 즉흥적으로 시작했는데, 그런 것 치고는 꾸준히 해나가고 있는 것 같아 공개적으로 연재하길 잘했다고 생각한다. 어느새 이 글을 쓰는 게 내 주된 루틴 중 하나가 되었으니까 말이다.


9편의 글을 올려놓고 보니 글마다 반응이 다르다. 처음 은퇴나 사치라는 주제로 썼던 글이 가장 반응이 좋았고, 그다음으로는 고통스러웠던 과거를 통과해 낸 과정이 꽤 공감을 얻었다. 나머지 글들은, 반응을 말한다면 솔직히 말해 그냥 그렇다.


이건 어느 정도 예상했던 일인데, 주제 자체가 흥미를 돋울 만큼의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저 내 개인의 소소한 일상과 다짐을 감상에 취해 늘어놓은 것에 불과하다. 어쩌면 자랑에 가깝다.


아니나 다를까, 그런 글들은 조회수도 낮고 댓글도 없다. 연재 시작의 버프도 이제는 수그러진 듯하다. 그렇게 되고 보니 이제는 글을 또 쓰기가 귀찮아지기도 한다. 나 역시도 시작의 버프가 꺼진 듯, 좀 시들해진 것이다. 별로 보는 사람도 없는데 뭐, 하며 이래저래 이번 주를 지내다 보니 평소보다 삼일은 늦게 글을 시작하고 말았다.




그래서 고민이 된다. 그래도 반응 좋은 글을 쓰고 싶다. 내 글을 사람들이 읽고 많이 호응해 주었으면 좋겠다. 그러면 어떻게 하나,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걸 골라서 써야 하는 걸까?


그런 생각들을 하자니 얼마 전 온라인카지노에서 봤던 글이 하나 떠올랐다. 비슷한 고민이었다. 자신의 취향과 사람들이 좋아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충돌하고, 그럴 때 자신의 취향보다는 대중의 취향에 맞추게 되며, 그것에 대한 안타까움을 토로한 글이었다.


응시 작가님의 글, <좋아요 중독>


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대중의 취향을 선택하는 것도 영리한 용기이고 이왕이면 자신의 취향이 드러난 것을 대중이 좋아해 주는 것이 가장 좋겠다는 답글도 달았다.


그분의 글보다 객관적으로 훨씬 초라한 반응의 글이지만, 그래도 조금이나마 글을 쓰고 공개를 하다 보니, 나 역시도 같은 고민에 이르렀다.




그런데 나는 대중이 좋아하는 것이 당최 무엇인지조차 판단하지 못한다. 그에 앞서 대중이란 것을 하나의 단일한 것으로 정의할 수 있는가를 모르고, 정의를 한다 하더라도 무엇을 좋아하는지는 더욱 막연하다.


내가 느끼는 재미는 내 세대의 문화 안에 갇혀 있다고 앞서 말했다. 내 취향은 견고한 성벽 안에 움직이지 않고 자발적으로 갇혀있다.


그렇다면 내 세대의 타인의 취향은 어떤가. 세대의 문화에 갇혀있다면 비슷한 것을 좋아해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물론, 바로 옆 고개만 돌려 동반자만 바라봐도, 나와 다른 취향을 가지고 있다.


그는 공포물을 탐닉한다. 범죄도 아니고 외계인도 아닌, 알 수 없는 존재에 의한 오싹하고 기묘한 기담들을 하나의 세계관으로서 애정한다.


나는 비정하고 서늘한 하드보일드를 선호한다. 너무 신파만 아니면 웬만한 드라마도 따뜻하게 본다. 대체로 좀 관대한 편이고, 애니메이션을 하나의 장르로서 인정하지만, 동반자는 그렇지 않다.


가까운 두 사이에서도 겹치는 부분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부분도 꽤 있다. 같은 시대에서 비슷한 경험을 하며 살아온 같은 세대인데, 취향은 왜 다른가.


물론 같은 세대일 뿐 우리는 서로 성별도, 자라온 지역도, 함께 지내온 친구도 서로 다르다. 동일한 경험을 했을 리 없다. 뿐만 아니라 개인이 가진 선천적인 기질도 취향의 차이에 분명히 영향을 미칠 것이다.




취향은 개인의 문화 DNA이기에 이성적이기보다는 본능적인 선택에 가깝고, 그런 개인의 선택은 결국 슬롯적 계급에 의한 것이라는 이론이 있다.


“아비투스(habitus)”로 일컬어지는, 예전 동반자가 알려준 개념인데 처음에는 고급 취향에 걸맞은 삶의 태도를 내재해야 한다는 정도로 이해했지만 핵심은 ‘개인의 취향은 슬롯 계급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는 것이 아닌가 한다.


현대에 이르러서는 그 슬롯적 계급이란 결국 자산을 말하는 것이겠고 그런 점에서 굉장히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나 또한 돈을 조금 쥐어보고 나니 피부 관리며 럭셔리 같은 것에 눈을 돌리게 되었으니까.


게다가 소위 고급문화라고 일컬어지는 미술관 관람이나 고전 독서 같은 것에도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백화점 방문 횟수가 늘고 비싼 음식도 종종 먹는다. 건강과 몸매 관리를 위해 트레이닝도 하고 운동 시간을 확보하려고 애쓴다.


그러나 아직은 클래식을 진정으로 좋아하게 되었거나, 오페라를 보러 가지는 않는다. 여전히 스타벅스에 가고 달고 짜고 자극적인 음식이 종종 먹고 싶다. 이게 나의 취향이 달라서인지, 아니면 단순히 슬롯적 계급이 상승하기에 돈이 부족하기 때문인지는 모른다. 알아보려면 돈이 더 많아져야 하는데, 아직은 아닌가 보다.


아비투스라는 개념에 대해서는 완벽히 이해하고 있는 것은 아니고, 이 글에서 그것을 설명하고자 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더 이상 깊게 다루지는 않으려 한다.


더 궁금하신 분들을 위해 이 개념의 이해해 큰 도움이 되었던 글의 링크를 남긴다.


영웅 작가님의 글, <취향은 어떻게 계급이 되는가>




그렇게 봐도, 슬롯적 계급이라는 것은 하나로 구성되지 않는다. 여러 가지가 있으므로 서로 구분을 하여 계급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그 계급의 취향이 고급인지 저급인지 보다는, 결국 계급마다 취향 차이가 있고 각각의 계급을 대중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면, 결국 대중은 하나가 아니다.


그렇다면 또, 대중이라고 불리는 여러 집단의 규모에 차이가 있다고 볼 수 있다. 현대의 계급인 자산의 규모에 따라 인구의 비율은 다르다. 그러면 어떤 기준에 따른 자산 규모 별 인구 비율이 각 대중의 규모를 보여준다고 볼 수 있다.


물론 비약에 가까운 단순한 생각인데, 그냥 그렇다고 친다면, 가장 많은 인구층이 분포한 계급이 좋아하는 것들을 공략하면, 많은 호응을 얻을 수 있게 되는 걸까?


통계청 발표를 기준으로 40대 이상에서 나 정도의 자산 규모면 상위 5% 정도 된다고 한다. 인구수가 많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러면 나는 상위 5%가 대표적으로 좋아하는 것들을 역시 좋아한다고 볼 수 있는가?




연애 프로그램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인기 있는 장르다. 당연히 인간관계, 그것도 연애를 다루고 있는데 도파민도 팍팍 나오고 재미가 없을 리 없다.


하지만 나는 연애 프로그램은 전혀라고 해도 좋을 만큼 보지 않는다. 이미 잘 짜인 시나리오에 따라 연기되는 타인의 관계 형성 과정을 보는 것에 재미는커녕 거부감을 느낀다.


최근 <스파이더맨: 브랜드 뉴 데이>를 봤는데 재미있었다. 이른바 대중적이기도 하거니와 여러모로 퀄리티도 좋다.


그러나 <왕과 사는 남자>는 딱히 재미있지도, 퀄리티가 좋다고 느끼지도 못했다. 한국 역대 흥행 순위 2위에 랭크된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내 취향이 저 상위 5%의 취향을 대변할 수 있을 리 없다. 분명히 상위 5%의 것도, 50%의 것도, 85%의 것도 섞여 있을 것이다.


나는 돈 많은 자들의 스포츠인 골프에는 전혀 관심 없지만, 테니스는 배우고 있다. 연애 프로그램은 외면하지만, 마블 유니버스에 아직까지는 관심을 두고 있으며,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은 감탄하며 읽는다.


슬롯학적 측면에서 대중을 커다란 여러 개로 분류하고 그 취향을 구분할 수 있을지언정, 개인의 취향은 온전히 규정할 수 없다. 나 역시 어떤 면에서는 지극히 대중적이지만, 어떤 면에서는 지독한 외골수기도 하다.


누구나 어느 정도는 그렇듯이. 즉, 나 역시도 평범한 대중일 따름이다.




그래서 너 따위가 아비투스라는 개념이 틀렸다고 하는 거냐,라고 하면 그것은 물론 아니다. 굉장히 맞는 이론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내가 궁금한 건 내가 글을 쓸 때 어떻게 쓰는 것이 좋을 것인가, 하는 것이다. 거기에서 출발한 궁금증이다. 많은 사람, 즉 대중이라는 것이 있고 그들이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면, 과연 내가 그것을 이용할 수 있을 것인가.


물론 대중이 좋아할 만한 것을 짐작하여 글을 쓸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짐작일 뿐이다.


또한 무턱대고 그럴 만한 것을 주제로 글을 쓴다면, 잘 써질 리 없다. 내가 연애를 주제로 도파민 터지는 달달한 글을 쓸 수 있을 리 없는 것이다.


결국 내가 생산하는 것은, 내가 소화할 수 있어야 한다. 내가 맛있다고 느끼는 것이 우선이다.


맛없는 것을 억지로 써내려 가는 것은 노예 시절의 고통스러운 노동과 다를 바 없다. 일은 일로서 바카라임을 가지고 했지만, 이 글들은 일이 아니다.




그래서 거창하게 써내려 왔지만, 결론은 글을 쓰기 전과 같다. 나의 만족을 위해 써야 한다.


조회수가 기대에 미치지 못해도, 조금 이나마의 벌이가 되지 못하더라도, 이것은 내가 나를 위해서 생산하기로 약속한 것이다.


내 생각과 태도를 정리하는 도구로 글을 쓰는 것이 먼저이고, 누군가와 이를 공유하며 공감을 얻는 것은 그다음의 일이다.


게다가 나는 은퇴를 했다. 애초에 남아도는 시간을 보내기 위한 글이다.


조회수나 응원에 전전긍긍할 필요도 없고, 그걸 올리기 위해 부단히 발품 팔며 라이킷을 누르거나 답글을 달 필요도 없다. 하고 싶을 때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니 남의 방을 기웃거리며 대중의 취향을 흉내 낼 필요는 없다. 그럴 능력도 없거니와 그럴 필요도.


누군가 보는 글이라 해도, 나의 취향을 오롯이 반영하고 나의 만족을 위해서 쓸 수 있는 사치를 부린다.


그리고 공감에 대해서는, 그저 이 글을 보는 누군가가 자신의 성벽 안쪽에 있는 것과 비슷한 것을 발견하고 조용히 고개 끄덕여 주기를 바라본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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