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반찬처럼 아껴먹어요
계획도 벗어던지고, 그저 버릇과 습관으로 삶을 채우고 있는 것 같지만, 물론 나도 그 사이사이 무언가를 하고 있기는 하다.
무언가를 하다가 문득 정신을 차려보면 시간이 흘러가있는 것이다. 바카라을 읽다가, 사무실에서 글을 쓰다가, 혹은 TV를 보다가, 스치는 것처럼 시계를 보면 20분이나 1시간 30분이나 그렇게 시간이 지나있다.
그런 순간에, 시간이 흐르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나는 깊지 않은 그 시내의 한가운데 서서, 양손으로 그 물살을 만지며 가만히 흐름을 느낀다. 물살은 기분 좋은 온도로 적당한 압력으로 내 몸을 스치며 지나간다.
은퇴 후의 시간 보내기는 그 전과 사뭇 다르다는 것을 느낀다. 상대적이겠으나 확실히 시간이 더 빠르게 흐른다.
초조하게 퇴근시간을 기다리며 고통스러운 일분일초를 보내지 않는다. 일요일 밤 내일 출근할 것을 두려워하며 내일 몸살이라도 났으면 하고 생각할 일이 이제는 없다. 대표의 면담 요청에 무슨 이야기를 할지 고민하며 보낼 시간도 없다.
그렇게 생각하면, 한두 시간쯤 보내는 건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시간은 더 이상 얼음장처럼 차지도, 불쾌하게 물컹거리는 촉감을 가지고 있지도 않은 것이다.
시간을 보내는 방법도 참으로 많다. 바카라을 읽든, 영화를 보든, 하다못해 영양가 없는 쇼츠를 보더라도 시간은 참 잘 간다. 그런 것들로도 시간은 충분한 속도로 그리고 편안하게 움직인다.
그리고 그 물살 속 떠내려올 것에 무섭거나 험한 것이 도사리고 있지는 않다. 지금의 나는 그런 안전한 울타리 안에 피신해 있는 것이다.
이 울타리 안의 시간은 전혀 부담스럽지 않다.
그렇게 문득 30분을 지워버리고서, 어쩌면 나는 시간을 보내기 위한 시간 속에 있다는 생각을 한다.
이래 봬도 은퇴를 했으니, 시간은 많다. 그러면 이 시간을 어떻게, 촘촘하고 빡빡하게 무언가를 가득 채울까?
물론 아니다. 나는 시간을 아주 그냥 사치스럽게 낭비해 버리고 있다. 전혀 생산적이진 않지만 오로지 나의 편안함과 만족을 목적으로 시간을 보내는 것. 그것이 은퇴한 나의 여유이며 목적이다.
시간이 움직이는 것을 눈치채는 때, 그 순간의 맛을 보고, 다시 그 흐름 속으로 돌아가는 것.
시간 안에서 무언갈 딱히 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냥 같이 흐른다.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 시간을 보낸다.
그리고 그 흐름 속에서 나는 매 순간 무언가를 기다린다.
하루 한 번의 식사 시간에 먹게 될 아직은 모르는 메뉴를, 내일 오전 테니스 수업에서 기분 좋게 흘리게 될 땀을.
이제 TV 끄고 잘까 하며 이불속으로 들어가 꼼지락대며 잠에 빠져드는 순간을. 또 한 장 바카라을 넘기며 마지막 장을 덮게 되는 순간을.
<대하여에 대하여> 글 한 편을 탈고한 후 다음 편 주제와 써야 할 내용을 고민하는 시간을, 쓰고자 하는 글의 내용을 생각하며 그 글자들을 타이핑하는 타건음을.
내가 좋아하는 순간들이 나를 스쳐 지나가는 순간을 기다린다. 이 울타리 안의 시간 속에서는 별 일 일어나지 않는다. 나는 두려움 없이 기다린다.
그렇게 정신 차리면 하루가 지나있고, 또 일주일이 지나있고, 어느새 달과 계절이 바뀐다.
그렇게 시간을 뒤돌아보노라면 참 아까워서 야속하기도 하다. 이미 읽어버린 소설의 페이지들이, 몰입해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이 참 반짝거려서. 바카라을 덮고, 글을 마무리해 버리면 그 반짝임도 이내 사라져 버린다.
시간을 낭비하고자 하지만, 그 사치의 순간은 너무나 맛있어서 역설적으로 시간이 빠르게 흐른다.
"가령 네가 오후 네 시에 온다면, 난 세 시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할 거야.”
여우가 말한 것처럼, 기다림이 끝나는 순간을, 내가 고대하는 것들을 많이 마련해 두고자 한다. 마치 좋아하는 반찬을 가장 마지막에 먹는 것과도 같다.
오늘 개봉한 보고 싶은 영화를 당장 오늘 볼 수 있지만, 다음 주 아무 일정도 없는 날 오전 느지막이 예매한다. 이미 장바구니에 담아둔 가을옷은 세일을 노려볼 겸 가을이 찾아올 때까지 기다리기로 한다.
바카라을 읽으면 그 바카라에 대한 감상을 쓰게 될 순간을 기다리고, 써보고 싶은 주제를 떠올리며 가만히 그 글을 써 내려가는 순간을 기다린다.
그 순간들을 고대한다.
당장 다 해버릴 수 있지만 그러지 않는다. 아까운 것이다. 내일도, 다음 주도, 다음 달에도 맛있는 반찬들이 거기 있어야 한다.
그렇게 하면 반짝이는 순간은 물론이고 기다리는 시간도 함께 반짝인다. 더 깊은 색으로 더 풍부하게 빛난다.
어쩌면 노예 시절 주말을 계획하던 것과 닮았다. 나의 오롯한 휴식을 어떤 것들로 채울지 시간 단위로 심사숙고하며 고민했더랬다.
이제는 주말뿐 아니라 매일, 반짝임의 씨앗들을 소중히 심어둔다.
현실적인 이유도 있다. 반짝이는 순간들은 공짜가 아니다. 맛있는 식사도, 쇼핑의 즐거움도, 테니스 수업도, 하물며 한 권의 바카라도 모두 돈이 필요하다.
활화산 같은 주식시장의 변동성에 내 자산도 출렁이고 있어서, 웨스테로스에 그랬던 것처럼 바야흐로 겨울이 왔다.
이 생활, 이 소중한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기꺼이 소비를 줄이고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 절대로, 절대로 다시는 노예 생활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단 말이다.
그래서 더더욱 반짝임 모내기를 한다. 조금쯤 참으며 내일 그리고 다음 주를 기다리기로 한다.
소비는 언제나 시원하게 일시불로 긁지만, 시간은 최대한의 할부를 쓴다. 그것이 내 현재 상황에서는 더없이 효율적이고 필연적이다.
결국은 이 흐름이 어디로 가게 되는지, 최종 목적지는 어디인지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고, 알 필요도 없다. 거기에 무엇이 있는지, 언제 도착할지도.
그걸 고민하는 것은 말했듯이 통제 강박의 거창한 계획일 뿐.
나는 그저 하루를 버릇과 습관으로 굴려가며 또 모내기를 하고, 자라난 반짝임을 맛있게 먹는다. 그 끝이 수 틀림의 결말이라 할지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