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여기 있겠습니다
<제미나이와의 대담>을 몇 회 써 내려가다 보니,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했다. 클래식이라고 불릴 만한 작품을 제외하면 전부 다회차 감상이라는 것.
어찌 보면 당연하다. 본 걸 또 보고, 읽은 걸 또 읽고, 들은 걸 또 들은 지는 벌써 오래되었다. 감상을 쓰고자 했던 것도 여러 번 보면서 똑같이 드는 궁금증을 제대로 확인하고 정리해 두고 싶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렇게 내 취향은 지극히 내 경험 의존적으로, 과거에 머물러 있다.
왜 그렇냐, 하면은 일단 소위 유행한다고 하는 최근의 문화에는 당최 흥미나 재미를 느끼기 어렵다.
유튜브 알고리즘에만 노출되어도 아 이런 게 요새 유행이군, 하고 눈치 정도는 챌 수 있다. 하지만 그게 왜 유행인지, 어째서 재미있는 것인지는 공감할 수가 없다.
공감을 하기 전에, 공감하고 싶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는다. 최신 노래는 가사를 알아듣기 어렵고 쿵쿵 시끄럽기만 하다. 밈이라는 건 또 어느새 생겨나기 시작하더니 하루가 멀다 하고 바뀌고, 죄다 뇌 속에 물음표만 가득 차게 만드는 것들 뿐이다. 좀 거부감이 들기까지 한다.
내가 아는 거라고 해봤자 크크루삥뽕이니 야르니 그 정도인데 이것도 지금은 유물일 거고…, 이렇게 쓰고 보니 정말로 뒷방 늙은이가 된 것 같다.
그런 걸 보면 이제는 나도 새로운 문화를 생산한다고 보기는 어려운 40대인 것이다. 과연 이게 세대차이인가라고 생각한다. 옛날 어른들이 이런 마음이었을까, 하고 현재의 유행을 보며 과거의 어른들에게 공감한다.
또 하나는 물론 내 소중한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고 싶기 때문이다. 공감하고 싶지도 공감할 수도 없는 새로운 문화를 꾸역꾸역 배울 필요는 없다. 그건 고통에 가깝다.
실제로 문화 관련된 업계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은 이런 경험을 하고 있을 것이다. 일상에서 업무와 관련된 것을 계속 접하고 생각하며 익혀야 하는 것이다.
나는 게임업계에서 일했는데, 이걸 두고 때때로 사람들은 부럽다고 말하곤 했다. 당연히 게임을 좋아하니까 게임업계에 발을 들였을 것이고, 좋아하는 일을 하니까 부럽다는 것이다.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다. 나는 내 일을 좋아하는 편이었다. 생판 모르는 은행 업무나 리조트 마케팅 업무를 하는 것보다야 내가 좋아하는 게임을 만드는 게 낫지.
하지만 모든 업계가 그렇듯, 게임업에 종사하는 사람들도 고충이 있다. 게임은 놀기 위해 해야 하는 것인데, 이게 일이 되어버린다. 좋아하지 않는 장르의 게임, 지금 굉장히 핫 하다는데 웬걸 나에게는 너무나 재미없는 게임을 해야만 하는 경우도 있다.
그렇다고 업무시간에 마냥 게임을 할 수도 없다. 업무시간에는 해야 할 일이 또 가득 쌓여있다. 게임회사임에도 업무시간에 게임하면 좀 눈치 보이고 그런 것도 있다. 직바카라자라서 더 그랬다. 그러면 결국 퇴근하고, 주말에, 게임을 숙제처럼 한다.
여가시간도 반은 일하며 보낸다는 것은 상당히 피곤한 일이다. 좋아해서 하지만, 때론 피곤하다.
그러나 이제는 나는 새로운 문화 트렌드니 유행이니 나는 신경 안 써도 된다. 그런 걸 억지로 보며 어떻게 업무에 적용할지 골머리 썩히지 않아도 된다. 나는 은퇴했다. 그저 나에게 편안하고 즐거운 것들을 소비하면 그만이다.
그렇게 좋아해서 업으로까지 삼았던 게임도 노예생활 청산과 함께 다 접어버렸다. 하물며 흥미는커녕 더러 거부감을 주기도 하는 새로운 문화를 무엇하러 억지로 접하겠는가.
물론 무조건적으로 새로운 문화를 폄하하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에게는 그것이 새롭고 재미있고 흥미로울 것이다. 새로운 것들 중에도 나와 맞는 것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걸 찾는 시간이 아깝다. 새로운 것들을 존중하지만, 그걸 굳이 찾아보고 싶지 않은 나 역시도 존중한다.
반면 존중할 가치도 없는 저질 콘텐츠들도 많아졌다. OTT에는 재미있을 것 같은 소재를 가지고 쓰레기를 만들어 돈낭비를 하는 콘텐츠가 너무 많다. 재미있을 것 같아 재생했다가 30분 간신히 보고 꺼버리길 수 차례 하고나면, 새로운 걸 재생하기가 꺼려진다. 괜히 사람들이 뭐 볼까 고르기만 하다 잠드는 게 아닌 것이다.
그래서 오늘도 예전에 봤던 걸 또 찾는다. 이미 검증된 재미를 다시 맛보는 편이 더 효율적이다.
어릴 적에는 봤던 걸 또 보는 게 오히려 효율적이지 못하다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게, 이미 알고 있는 걸 왜 또 보는가.
그런데 막상 봤던 걸 또 보면,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자세한 내용은 뇌 깊숙한 주름 어디에 처박혀있고, 드문드문 스쳐가는 이미지나 어렴풋한 인상 정도만 떠오를 뿐이다.
따라서 ‘이 작품은 재미있다’는 것은 경험으로서 알고 있되 대부분의 내용은 잊었기 때문에, 또 재미가 있다.
다회차가 재미있는 이유는 또 있다. 볼 때마다 그 작품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는 한편, 차근히 죽 따라가다 보면 지난번에는 발견하지 못했던 것을 새로이 발견하기도 한다.
이미 결말을 알기 때문에 앞서 깔아 뒀던 복선을 이해하기도 쉽고 등장인물의 감정에 공감하는 것 역시 수월해진다. 그렇게 만든 창작자의 의도도 엿볼 수 있게 된다.
<제미나이와의 대담>처럼 궁금했던 것들을 해소하고 작품을 다시 보는 것도 좋다. 작품이 만들어질 당시의 슬롯적인 배경, 창작자의 개인적인 배경, 하물며 작품을 둘러싼 자본이나 제작사의 사정까지 알고 볼 수 있다.
예전에는 작품 자체만으로 재미있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제는 그것이 만들어지기까지 슬롯적, 개인적, 자본적 배경들이 지대한 영향을 주고, 따라서 그 비하인드 스토리를 아는 것이 작품 이해는 물론 재미를 더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게 됐다.
그래서 오늘도 바카라장에서 손때가 탄 하루키 소설을 꺼내 또 읽는다. 크리스토퍼 놀란의 배트맨 시리즈를 또 본다. 차에 시동을 걸면 20년 전에도 플레이 리스트에 있던 음악이 자동 재생된다.
비단 나만 그런 것 같지는 않다. 가깝게는 동반자도 그렇다. 그는 나보다 더해서 박찬욱 감독의 <아가씨>를 50번이나 보았다고 한다. 집에서는 <파묘>니 <레옹> 같은 애정하는 영화를 틀어둔다. 여차하면 또 집중해서 보기도 한다.
내 또래라면 누구나 유튜브 알고리즘에 무한도전 에피소드 한두 개쯤은 자연스럽게 떠 있을 것이다. 그걸 보며 나는, 그리고 어쩌면 우리는 20대 어느 토요일 초저녁 치킨 한 마리 뜯으며 자지러지게 웃던 그날의 싱그럽고 건강한 한때를 간접 체험한다.
그런가 보다. 누구나 젊은 시절의 즐거운 한 때는 그리운 것이다. 그 한 때를 담았던 이제는 지나간 그 시절 자체가 그리운 것이다.
다회차를 하는 이유에는 그런 것도 있으리라. 단순히 검증된 재미를 찾는 것 외에, 한창때 느꼈던 그 감성과 재미를 다시 맛보기 위해.
그래서 자연스럽게 나의 취향은 과거에 기반하고 있다. 내가 한창때 경험한 것들 중 좋았던 것들이 나의 취향이 되고, 나는 20년이 지난 지금도 그것들을 소비한다. 즉 내 취향은 내 세대의 문화 안에 갇혀 있다고도 볼 수 있는 것이다.
어쩌면 지금의 슬롯 전반에 내 세대의 문화가 유행하고 있는 건 아닌가 착각할 때도 있다.
내가 가는 곳에는 3040이 좋아할 법한, 1990-2010년대 노래들이 흘러나온다. 이건 비단 취향의 문제를 떠나 세대를 대변하는 어떤 것이다. 20년 전에 들었던 노래가 지금도 길거리와 가게에서 흘러나오는 것이다.
주변을 둘러보면 대부분의 콘텐츠는 3040을 겨냥하고 있다. 우리에게 익숙한 진행자와 패널, 노래, 음식, 영화 같은 것들이 어디에나 있다. 문화를 소비하는 방식이 바뀌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결국은 문화를 소비하는 다수가 우리 3040이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 세대는 머릿수도 많고, 그리고 이제 돈도 좀 있다. 우리가 바로 핵심 소비층인 것이다. 몇 년 전 유행했던 트로트가 우리 부모님 세대의 소비 저력에서 나왔던 것과 같은 맥락으로.
1020도 나름대로 그들의 문화를 만들고 소비하는 것은 분명하다. 유행을 선도한다,라고 할 때는 단연 1020이 그 선두에 서 있다. 우리는 그걸 따라나 하는 영포티에 불과하다.
하지만 굉장히 안타깝게도 1020은 머릿수가 부족하다. 그래서 그들의 문화는 주류가 되기는 어렵다는 게 내 생각이다. 국소적인 유행이 빠르게 생겨났다가 다시 사라질 뿐이다. 그건 좀 슬픈 사실이다. 물론 그들은 그런 것 신경도 안 쓰겠지만.
그러나 슬픈 건 슬픈 거고, 그렇다고 그들의 문화를 소비할 생각은 없다. 따라 하기도 어렵거니와, 그러고 싶지도 않다. 영포티가 되고 싶지는 않은 것이다.
아마 누군가는 좀 고개를 갸웃했는지도 모른다. 그 누군가의 알고리즘에는 최신 유행과 밈들이 가득 차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내 개인의 경험을 토대로 이런 글들을 쓴다. 이건 딱히 문화에 대한 대단한 통찰이 담긴 문화평론가의 글이 아니다. 그저 한낱 개인의 경험에 기반한 생각일 뿐이다.
결국, 저마다 주변을 채운 문화는 다르다. 나는 내가 원하는 것과 편안해하는 것으로 주변을 채워두었다. 유튜브 알고리즘도, 내가 가는 식당도, 쇼핑도, 하물며 산바카라하는 장소도 내 취향이 묻는다.
쇼핑을 위해 중저가 디자이너 브랜드가 밀집된 더 현대보다는 무드도 가격도 묵직한 브랜드를 보기 위해 명동의 백화점을 간다. 성수동은 가본 적도 없고 다녀봐야 조용한 산바카라로나 사찰에 놀러 간다.
나는 자연스럽게 내 나이에 맞는 곳을 찾게 되었다. 굉장히 불가피한 게 아니면 강남역 길거리를 쏘다니거나 하지 않는다. 내가 찾는 공간에는 내 또래들이 있다. 따라서 당연히 그곳은 내가 편안해하는 내 세대의 문화로 장식된 경우가 많다.
익숙한 것을 찾고, 그래서 과거의 추억이 서린 문화를 접하고, 또 내 또래의 문화가 서린 공간을 가고, … 이런 흐름은 닫힌 채로 순환한다. 나는 내 세대의 문화 속에서 맴맴 돈다. 하물며 요즘 같은 세상에서는 더 그렇다.
더 이상 공중파 뉴스를 보지도 않는다. 아니 아예 실시간으로 방송되는 콘텐츠 자체를 보지 않는다. 지금은 내가 원하는 정보만 알고리즘이 쏙쏙 골라다가 12첩 반상을 차려주는 시대니까.
그래서 누군가는 이 글을 보고 갸웃할 수도 있는 것이다. 누구나 자신의 취향으로 쌓은 공고한 성 안에 들어가 있기 때문에.
좋고 나쁨을 판단할 수는 없다. 그냥 어쩔 수 없다. 이미 그런 세상이 되었다.
유행을 따르고 만드는 40대도 있겠으나, 그리고 그건 그것대로 굉장히 대단하고 존경하지만, 나는 이제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고 익히기에는 뇌가 너무 오래됐다. 그건 무리다.
그래서 세대차이가 생기는지도 모른다. 늙다리 뇌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물리적이고 화학적인 변화들이 세대차이라는 문화적인 현상으로 이어지는가 보다.
인간군상이라는 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양상만 다를 뿐 항상 맥락은 비슷하지 않은가 싶다. 이집트 점토판에도 요즘 것들은 버릇이 없어서 큰일이라느니 하는 글귀가 적혀있다고 하지 않는가.
나 역시도 조카들과 친해지고는 싶지만 공통 주제를 찾기 어려워 항상 용돈만 얼마 쥐여주며 공부 열심히 해라, 엄마 말 잘 들어라 꼰대 같은 소리만 한다. 이런 나와 몇 마디라도 대화해 주는 그 애들에게 고마울 따름이다.
억지로 그들을 이해하려 애쓰거나 영포티 흉내를 내며 섞여들 생각은 없다. 내 뇌는 이미 굳었고, 나의 공고한 성벽 안에서 편안하다.
저 이집트 점토판이 지금도 공감되는 것처럼, 각자의 세대는 각자의 궤도를 돌며 늙어가고 과거를 답습한다. 그게 지극히 자연스러운 자연 법칙이다.
그래서 나도 그 법칙에 몸을 맡긴다. 그냥 하던 대로 하기로 한다. 자연에 순응한다.
그저 내가 지금의 세대에 속해있듯이, 다른 이들도 어딘가에 속해 있고 그것이 다름을 알기로 한다. 미워하고 자시고 할 필요도 없다. 다른 게 있다는 것만 알고, 나는 내 것에 집중하면 된다.
감다살이고 늙크크고 그게 뭔지 안 궁금하다. 나는 그냥 이 안쪽에 있을 테다. 이제는 빛바래 노르스름해진 하루키 소설의 바카라장을 다시금 팔랑 넘기면서.
그래도, 저 옛날 이집트 아무개 씨처럼 어딘가에 요즘 것들은 영 글러먹었다 적지만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