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상으로 엔진에 기름칠하기
“젊을 때는 체력과 시간이 있지만 돈이 없고, 중년에는 돈과 체력이 있지만 시간이 없으며, 노년에는 돈과 시간이 있지만 체력이 없다.”
과연 공감이 되는 말이다. 기원전 2400년 이집트의 프타호테프 씨도 비슷한 탄식을 남겼다는 걸 보면, 시대를 관통해 인간에게 공평하게 적용되는 몇 안 되는 절대 법칙 중 하나임이 분명하다.
약 4천 년이 흘러 오늘의 나도 같은 생각을 한다. 나는 다행히 운이 좋게도 중년이라고 부를 수 있는 나이에 시간까지 확보했다. 돈도 좀 있고, 시간도 많은데, 그런데 이제는 몸이 예전 같지 않다.
20대 때는 아무리 먹어도 살도 찌지 않았고, 똥배라는 게 뭔지도, 몸이 무거운 게 뭔지도 몰랐다. 하지만 30대가 되자마자 갑자기 체중 앞자리가 바뀌고 아랫배가 나오기 시작했다. 화들짝 놀라 식단 조절과 운동을 좀 하자 금세 몸이 반응해 주었다.
‘그래, 삶에서 그나마 내 마음대로 되는 건 다이어트 정도밖에 없구나’ 싶었다. 앞자리를 복구하고 또 몇 년을 지냈다. 크게 아픈 일도 없었다. 오히려 안 하던 운동을 해서 더 건강했던 시기이지 않았나 싶다.
40대가 가까웠던 작년, 슬롯 속 관계의 어려움과 이혼 등으로 인해 우울증 약을 복용하며 나는 현실을 도피하고 즉각적인 도파민을 얻기 위해 정제 탄수화물을 탐닉했다. 매일 과자 한 봉을 뜯고 주말이면 배 꺼지는 시간이 없을 정도로 입에 뭘 달고 살았다.
과자를 아작대는 그 순간은 행복했지만 아니나 다를까 순식간에 체중이 불어나 인생 최고치를 찍었다. 그때만 해도 30대 초반을 생각하며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곧 복구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웬걸, 불어난 체중의 절반 정도는 몇 개월 만에 내려왔지만 나머지 절반은 일 년이 넘게 그대로다. 예전이랑 똑같이 운동하고 먹는 것도 조절하고 그러는데 체중은 그다지 반응이 없다.
이제는 다이어트도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군살도 붙었고 피부는 탄력을 잃어가고 있다.
여기저기 발생하는 고장의 정도 역시 심해졌다. 근력운동을 할 때 조금이라도 무게를 올리면 무릎이 아프고, 많이 걸으면 고관절이 시려온다. 무릎 통증은 운동하는 동안에만 있었는데, 이제는 아픔이 오래간다. 불편함이 지속되어 잠들기 어려운 날들도 있었다.
데굴데굴 구를 정도는 분명 아니었으나 아, 이렇게 아프면 나 십 년 뒤에는 걷지도 못하는 거 아니야라고 겁먹을 수준의, 불쾌하고 불편하며 집요한 아픔.
바야흐로 글로만 배웠던 노화를 체감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도 하루 두 시간 탁구를 치는 우리 엄마는 흥 콧방귀를 뀌시지만, 나로서는 처음 맞닥뜨리는 현실에 놀라고 말았다.
그래서 이제는 살아남기 위해 운동을 한다. 가만 놔두면 애써 얻은 넉넉한 시간을 통원 치료든 입원이든 원치 않는 방식으로 쓰게 될 것 같아서. 안 그래도 이미 병원 가는 빈도가 늘었는데 말이다.
어디든 가고 싶은 곳에도 가고, 하고 싶은 것도 하고, 가끔 사치도 해야 한다. 이 시간을 내 의지대로 움직이고 굴릴 수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기본적인 체력은 필요하며, 그건 비단 육체적인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아니, 정신적인 부분이 더 클지도 모른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은퇴자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모든 것을 스스로 원하고, 시작하고, 완수해내야 한다. 그럴 수 있는 힘은 적어도 우울하지 않은 뇌에서 나올 수 있고, 그렇기 때문에 나 자신이 우울해지지 않도록 경계하며 돌봐야 한다.
나의 경우 우울해지지 않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나 스스로를 미워하지 않는 것이다. 다행히 나를 미워하게 만드는 외부 환경은 은퇴를 통해 대체로 정리할 수 있었다. 그러면 이제는 내가 나를 좋아할 만한 이유를 나 스스로 만들어내야 한다.
그러자면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내가 원하는 대로, 만족스럽게 써내야 한다. 오늘도 잘 보냈다 거울 보며 한 번쯤 미소 짓는 날을 보내야 한다.
그런 날을 만드는 데는 과연 운동이 제격이다. 게으름뱅이인 나에게는 몸을 움직이는 것이 기본적으로 귀찮은 일이지만, 그런 나태를 이겨내고 운동을 한다는 것 자체가 뿌듯함을 준다.
몸을 움직이며 땀과 함께 솟아나는 세로토닌이 나를 우울에서 멀어지게 한다. 그 뒤의 샤워가 주는 상쾌함, 칼로리 소모, 몸매 관리는 오히려 덤이다.
더불어 돈 있는 행세를 하며 사 모은 사치품을 만족스럽게 입고, 차고, 들기 위해서라도 관리가 필요하다. 잠기지 않는 허리춤을 아연실색 바라보며 우울해지는 그런 순간만은 맞이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그렇게 되면 나는 나를 미워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위고비나 마운자로는 보류한다. 쉽고 확실한 길이고, 솔깃하기도 했다. 하지만 우울증 이력이 있는 나에게 식욕과 함께 삶의 다른 의욕까지 앗아갈 수 있다는 부작용은 치명적이다. 나는 나 스스로 해보기로 다시금 마음먹는다. 그게 나를 좋아하기에는 더 효율적이다.
그렇게 언제나 다이어트에서 시작해서 내 삶 전체를 보살피는 건강 관리를 한다. 비용도 아끼지 않는다. 오히려 비용을 투입했으니 더 열심히 한다.
은퇴 후 깨작깨작 러닝이나 헬스장에서 개인운동만 하다가, 이제는 제대로 다이어트해야지 하면서 PT를 등록했더랬다. 의욕이 넘쳐 매일 수업 또는 근력운동을 한 시간, 유산소로 러닝을 한 시간 했다. 그걸 한 달 넘게 하니까 종일 온몸이 쑤셨다. 고관절이 시큰거리는 느낌은 이때가 처음이었고, 아침에 일어나 얼마간은 왼쪽 손가락이 덜컥댄다.
병원에 가니 왜 자해를 하냐며, 최소 한 달은 운동을 일절 하지 말라고 했다. 나도 더 이상은 안 되겠다 싶어 PT는 그만두고 당분간 쉬었다. 그러나 아무 운동도 하지 않으니 몸도 무겁고 죄바카라감이 들기 시작했다. 체중도 전혀 줄지 않았다.
동반자와 함께 테니스 레슨을 등록했다. 아침 일찍 가서 한 시간 정도를 분주히 뛰면 상쾌하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한 것 같아 필라테스도 등록했다. 이번에야말로 근육 쓰는 법, 자세 잡는 법을 제대로 배워서 내 로망인 쇠질을 안전하게 해야지 하는 생각이었다.
막상 수업을 들어보니 근육이나 자세가 문제가 아니라 제대로 서고 걷는 것도 못하고 있었다. 선생님의 호통 아래 땀을 뻘뻘 흘리며 제대로 서고 몸을 일으키는 법부터 배운다.
그런 것들을 계속해나간다. 기회가 있으면 한다. 가끔은 자전거도 타고, 레슨이 없는 날이면 헬스장에 가서 땀을 흘린다.
레슨 비용도 만만치 않다. 하지만 다른 걸 아낀다. 당장 비싼 한우 구이도 좋겠지만 어제보다 나은 걸음걸이, 곧바로 선 척추가 더 귀하다.
운동 외에도 눈바디를 체크하며 식단도 조절한다. 매일 최소 16시간, 가능하면 18시간 이상의 간헐적 단식 시간을 가지려고 한다. 아침은 올리브유 한 스푼과 레몬즙, 점심은 닭가슴살 한 덩이와 샐러드, 단백질 음료로 때운다.
저녁은 일반식이지만 밥은 반 공기, 단백질 중심의 용납할 수 있는 범위의 한식을 먹는다. 생선이나 두부, 구운 야채나 버섯 같은 것들이다.
하지만 여전히 체중은 제자리다. 고지가 눈앞인데, 거기까지 닿아주지를 않는다. 마치 약 올리는 것 같다. 아슬아슬하게 스쳤다 다시 올라간다.
원인은 사실 분명하다. 가끔의 약속에서, 여행을 가서, 며칠 잘 참았으니 오늘 하루만 하며 즐기는 일탈 때문이다. 때로는 기름기 가득한 삼겹살, 혹은 바삭한 튀김, 아니면 강렬한 정제 탄수화물.
안 된다는 것은 알지만 맛있는 것을 먹을 때의 행복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매일 수행하듯 먹으며 살 수는 없지 않은가. 이건 이것대로 정신건강에 좋지 않다…,라고 변명하며 가끔은 일탈을 한다.
단지 그 일탈의 빈도를 줄여나가면 내 체중도 줄어들긴 하겠지만, 이것도 나이가 들어서일까 아니면 참을성이 부족해서일까, 체중이 목표치에 근접한다 싶으면 하루는 괜찮겠지 하며 으레 일탈을 해버리고 마는 것이다.
그래서 내 체중은 여전하다. 레슨 비용과 운동에 쏟은 시간 그리고 흘려낸 내 땀들은 처절한 수비이자 무안한 현상 유지에 불과하다.
먼 조상들의 수명은 40년도 안 되었다. 이제 40년 된 이 몸은 더 이상 무상 수리를 보증해 주지 않는다. 앞으로는 유상 수리를 해 가며 써야 하는 것이다.
이 유상 수리에 소모되는 각종 비용과 시간과 노력은 탄탄한 몸매나 마라톤을 달리는 체력을 가져다주지는 않는다. 또한 그러기 위한 비용도 아니다.
이 땅 위에서 움직이며 살기 위해 월세를 내듯, 이 몸도 가까스로 유지하기 위한 월세를 낸다. 이 유지보수 비용 덕분에 또 하루를 채우고 굴려낼 수 있다.
오늘, 내일, 다음 달, 내년에도 나는 움직이며 살고자 한다. 그러기 위해 이 망가지기 시작한 엔진에 비용과 수고를 들여 기름칠을 한다.
엔진이 수명을 다해 멈추거나, 아니면 나 스스로 시동을 꺼버릴 때까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