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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운 것은 문장 하나가 아니었다

by응시

밤 열한 시. 나는 화면을 아래로 당긴다. 새로고침.

세 시간 전에 올린 글이다. 조회수 백스물셋, 라이킷 아홉. 삼십 분 전과 같다. 한 번 더 당긴다. 그대로다.


나는 쓰고 싶어서 썼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나는 그 말이 누구에게 박혔는지가 아니라, 몇 명이 눌러 주었는지를 세고 있다. 숫자가 오르면 마음이 펴지고, 멈추면 가라앉는다. 어제 올린 글은 반응이 좋아서 하루가 가벼웠고, 오늘 글은 조용해서 하루가 무겁다.

같은 나인데, 어제와 오늘이 다르다.


부끄러운 이야기를 하나 하자. 얼마 전 글을 쓰다가 한 문장을 지웠다. 진짜 하고 싶은 말이었는데, 이건 사람들이 안 좋아하겠다 싶었다. 대신 반응이 좋겠다 싶은 문장을 넣었다.


그때는 몰랐고, 나중에야 알았다. 나는 쓰고 싶은 걸 쓴 게 아니라, 읽힐 만한 걸 썼다는 것을. 그리고 그 글은 반응이 좋았다.


나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사진을 올리고 몇 번씩 확인하는 사람, 아무도 안 눌러 주면 슬그머니 지우는 사람, 남들이 좋아할 만한 각도로 찍는 사람. 우리는 매일 무언가를 올리고, 매일 그것이 얼마나 받아들여졌는지를 센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아무도 봐주지 않으면, 그 사람은 거기 없었던 것이 되는가.


그 마음을 들여다본다.


인정받고 싶은 것은 허영이 아니다. 사람은 누구나 인정받고 싶어 한다. 문제는 그 인정이 내가 있다는 유일한 증거가 될 때 시작된다.


정신분석가 위니콧은, 사람이 자기 안에서 올라오는 것을 그대로 살 때 비로소 살아 있다고 느낀다고 보았다. 그는 그것을 참자기라 불렀다. 그런데 바깥이 원하는 것에 맞추는 일이 오래되면, 다른 자기가 앞에 선다. 순응하는 자기. 진짜 자기를 뒤에 숨기고 대신 세상을 상대하는 자기. 위니콧은 그것을 거짓자기라 불렀다.


내가 지운 문장이 그랬다. 그 문장은 내 안에서 올라온 것이었는데, 나는 그것을 꺾었다. 세상이 좋아할 만한 문장을 대신 내밀었다. 그 순간 앞에 선 것은 내가 아니라, 세상을 상대하러 나간 다른 자기였다.


이상한 일은 그다음이다. 반응이 좋으면, 이제 그 얼굴을 다시 보여줘야 한다. 지난번보다 덜 좋아하면 불안해진다. 그래서 더 잘 먹힐 말을 찾고, 더 안전한 얼굴을 고른다.


그럴수록 진짜 나는 뒤로 물러난다. 세상에 나가는 것은 늘 순응하는 자기이고, 안에서 올라오던 것은 자리를 잃는다. 거짓 자기가 인정을 받을수록, 참자기는 굶는다. 그리고 굶을수록 더 많은 인정이 필요해진다. 그래서 다시 그 얼굴을 내민다.


숨긴다. 내민다. 인정받는다. 더 굶는다. 그래서 더 숨긴다.


그러니 인정이 모자라서 외로운 게 아니다. 인정받는 동안에도 외롭다. 사람들이 보고 있는 사람이 내가 아니기 때문이다.


사랑받을수록 더 외로워진다. 사랑받는 것이 내가 아니기 때문이다.


한 걸음 물러서서, 그 숫자를 본다.


예전에도 사람은 인정받고 싶었다. 달라진 것은 인정에 숫자가 붙었다는 것이다. 좋다는 마음이 숫자가 되고, 몇 사람이 나를 보았는지가 또 숫자가 됐다. 숫자로 바뀐 순간부터 인정에는 끝이 없다. 아홉이면 열을 기다리고, 백이면 천을 본다. 충분하다는 숫자는 없다.


그 숫자는 저절로 생기지 않았다. 화면 너머의 셈법은 단순하다. 우리가 오래 머물수록 그들이 번다. 그러니 그들이 바라는 것은 우리가 잘 쓰는 것이 아니라, 손을 놓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화면은 반응이 좋았던 것을 더 퍼뜨리고, 알림을 울려 다시 불러낸다.


그리고 그 부추김은 나 한 사람에게만 오지 않는다. 모두가 반응 좋을 것만 내놓기 시작하면, 우리가 나누는 말이 야윈다. 내가 지운 문장 하나가 모두가 지우는 문장이 되고, 그렇게 지워진 말들은 세상에서 사라진다.


화면을 보며 생각한다. 지금 내가 내미는 얼굴은, 내가 맞는가.


아무도 눌러 주지 않아도, 내가 쓴 말은 이미 세상에 나왔다. 숫자가 그 말의 크기를 정하는 것은 아니다.

지웠던 그 문장을 다시 떠올린다. 아무도 좋아하지 않을지 모른다.


그래도 나는, 그 문장을 다시 쓴다.

오늘은 화면을 당기지 않고 잠들어 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