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집 마련에 대하여

움직이는 삶을 살기 위한 선택

나는 스물여섯이라는 어린 나이에 결혼을 하며 처음으로 부모님으로부터 독립을 했다. 내 나이와 같은 연식인 18평 정도의 오래된 서울 중심지의 아파트를 시작으로, 나는 아직까지 정착하지 못하고 떠돌이로 살고 있다. 이제 마흔인데 집은 일곱 번째이니, 정말로 2년마다 이사를 한 셈이다.


이사를 하는 것은 굉장히 피곤한 일이다. 몇 달 전부터 집을 알아보고, 이삿날을 조율해야 하며, 이사 가는 곳에 맞춰 가구며 가전을 다시 배치하거나 새로 구매해야 한다. 이사비용도 만만치 않다. 사다리차라도 쓰게 되면 수십만 원이 훌쩍 오른다.


내가 오늘 이사를 하면 최소 세 가구가 동시에 움직인다. 내가 나간 자리에 누군가 들어오고, 내가 들어갈 집의 누군가는 또 다른 집으로 빠져나가야 한다. 오고 가는 가구들의 오고 가는 집까지 생각하면 더 많은 가구들이 이사로 이어져있다.


물론 이 연결고리는 모종의 이유로 어딘가에서는 끊어지겠지만, 그런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사행렬을 생각하노라면 아득하리만치 골치가 아파 온다.


나에게 이사는 그런 이미지다. 골치가 아프다. 그렇게 이사를 자주 했어도 이사 체크리스트는 매번 찾아보게 된다. 준비할 것도, 고민할 것도, 알 수 없는 관행도, 다퉈야 할 일도 많다. 이사 후 주린 배를 움켜쥐고 허겁지겁 들이키는 짜장면으로는 그 피곤함을 모두 씻어낼 수 없다.




결혼을 하고 매 2년마다 집의 크기를 조금씩 늘려나가는 재미도 분명 있었다. 하지만 부동산 정바카라이 바뀌면 집주인은 으레 퇴거를 요구했고 그렇게 네 번째쯤 이사했을 때는 이제는 그만 이사하고 싶다, 나도 집주인이 될 수는 없나 생각했다.


집 살 자금은 없고 빚을 내면서까지 그래야 하나 싶어 매매는 생각도 않고 전세로 살았던 집이, 이년 뒤 두 배 넘게 시세가 오르기도 했다. 까짓 대출이자 몇 푼이 무서웠던 어린 생각이 한탄스러웠다.


이 나라에서 내 집 마련이라는 것은 누구나 품고 있을 꿈이자 염원 아닌가. 그 꿈을 가지고 있지 않은 이는 이미 집을 가지고 있는 사람뿐일 것이다.


부모님께선 여전히 내가 집 하나 사서 안정적으로 노후를 대비하길 바라신다. 똘똘한 집 한 채가 웬만한 자식보다 낫다며.




나 또한 내 집 마련의 꿈을 버리지는 않았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지금은 아니라는 것이다. 지금은 내 집 마련을 할 생각이 전혀 없다.


언제나 출근할 것을 고려해 집의 위치를 선정했다. 회사가 서울에 있을 땐 서울에 있었고, 회사가 경기도권으로 이사를 해서 나도 따라서 이사를 했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그러지 않았다. 은퇴 후 첫 이사였는데, 나는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예산 안에서 가장 신축인 곳, 그러니까 내가 첫 입주를 하는 곳을 골랐다. 오히려 그전보다 월세는 저렴하고, 집 크기는 커졌다.


왜냐하면, 출퇴근을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별히 서울과 붙어있어야 할 필요가 없었다. 나는 친정과 가까운 경기도권의 적당한 지역을 골랐다. 근처에 지하철역도 없다. 차량은 꼭 있어야 하고 아침저녁 빠져나가는 데에만 삼십 분이 넘게 걸리지만, 나는 상관없다. 그 시간에 움직이지 않아도 되니까.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집이 ‘어딘가’에 가까워야 할 이유가 없다. 자산에 찬 바람이 분다면 주거비용을 더 낮추기 위해 지방으로 가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고, 이를 고려하고 있기도 하다.


또는 훈풍이 불어 자산이 부풀어 오른다면, 강남권에도 한 번 살아볼 수 있다. 월세가 오백만 원은 하겠지만, 그것이 나에게 경험해 볼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한다면 얼마간은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즉 나는 주거지역을 정하는 데 있어서 매우 자유롭다. 그럴 생각은 없지만 해외도 가능하다. 온라인 게임이 없고, 아이가 없다. 나를 구속하는 건 아무것도 없다.


고작 40년 살았지만 꽤 많은 삶의 변화를 겪어왔다. 앞으로 또 어떻게 될지 모른다. 그런 변화에 대응하려면, 혹은 내가 그 변화를 이끌어 나가려면 그럴 수 있는 힘, 즉 자산을 유연하게 융통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나에게는 자산을 부동산에 묶어두는 것은 부담스러운 일이다. 이름부터가 움직이지 않는 재산이지 않는가. 나는 움직여야 하는데.




집을 사지 않는 것이 유리하다는 것은 동반자가 알려준 사실이다. 그런 깨달음 전의 나 역시 부동산에 있어서는 보통의 한국사람이었다.


내 집 마련을 염원하지만 그럴 여력이 없으면 월세보다는 전세를 선호했다. 월 고정비용을 낮추는 게 무조건 좋다는 막연한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궁극적으로는 내 집을 사서 시세 차익도 노리고 월 비용도 없애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보증금을 3억에서 4억으로 늘리고 월세를 낮춘 적도 있었다. 지금 와서는 참 후회되는 일이지만.


그저 막연한 생각만 가지고 부동산 같은 거대한 자산을 상대한 것이 잘못이었다. 계산기를 두들겨 보는 게 마땅한 것을.


먼저 주택의 가격 자체만 놓고 보면, 주택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등락이 있고 경험상 우상향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그 주택 가격과 동일한 자산을 주식에 투자했을 때의 평균적인 기대수익률과 비교하면, 주식 쪽이 훨씬 유리하다.


간단하게 최근 5년의 서울 강남 3구 아파트 매매 기대수익률과 나스닥 100의 원화 기준 기대수익률을 확인해 보면, 최대치 기준으로 각각 25%와 75%였다. 물론 최대 낙폭은 부동산이 -15%, 나스닥 100이 -28%로 변동성은 더 심했지만, 진입장벽이 낮다는 것을 생각하면 실제 변동하는 금액은 부동산이 훨씬 컸을 것이다.




또 이런 관점도 있다. 15억짜리 아파트를 6억 대출을 끼고 매매했고, 보증금 1억 월세 300만 원에 세를 준다. 이 경우 대출이자를 제외하고 매월 실제로 손에 쥐게 되는 수익금은 100여만 원 정도이다. 이 수익금으로 해당 주택 구매 본전인 15억을 뽑으려면 125년이 걸린다. 기대수익률로 치면 1.5%, 대출을 안 했다고 해도 2.5%에 불과하다.


물론 실제로 이런 식으로 접근하는 사람은 없다. 당연하다. 주택을 매매할 때는 응당 그 주택의 가격이 오를 것을 기대하고 매매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월세는 싸게 바카라정되고, 그 기대수익률은 은행 이자와 도토리 키재기를 한다.


그럼 반대로 세입자 입장에서 생각해 보자. 집을 가진 사람과 동일하게 대출을 제외한 금액인 9억이 있다. 300만 원 월세를 살면 연 주거비용은 3,600만 원으로 9억의 4.5%이다. 따라서 월세를 제외한 금액을 가지고 다른 투자로 4.5% 이상의 수익을 내면 이득이다. 그런데 나스닥 100의 역사적 연평균 수익률은 그 두 배가 넘는 10%다.




그게 그렇게 쉽게 되냐?라고 반발할 수 있다. 물론 그렇다. 쉽게 됐으면 다들 부자가 되었을 것이다. 사고파는 타이밍, 심리적인 것, 각자의 사정 등이 우리가 부자가 되지 못하게 한다. 또한 이런 수치는 어느 시기를 갖다 붙이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결국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재테크에 있어 기회비용을 생각하면 부동산만을 고집할 이유는 전혀 없다는 것이다. 이게 동반자가 나에게 설파한 논리이고, 나는 그저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내 삶에 그 논리를 새겨 넣을 수밖에 없었다.


더군다나 그는 서울 아파트로 재테크를 해본 경험이 있다. 적지 않은 수익을 보았지만 그는 후회했다. 주식을 샀다면 지금 자신은 훨씬 더 큰 자산가가 되어있었을 것이라고.




부동산은 무겁고, 느리고, 복잡하다. 금액이 크기 때문에 아무래도 방어적이고 보수적으로 접근하게 되기도 한다. 시장의 변수에 더해 매매자나 부동산의 개인적인 변수까지 반영된다.


반면 주식은 무엇보다도 자유롭다. 분산투자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모바일로도 사고팔 수 있을 정도로 유동화가 쉽다. 그래서 통 크게 투자도 가능하다. 3배 레버리지 ETF도 그래 한 1% 정도는 투자해 보자, 기부한다 치고, 하는 식으로 생각할 수 있다.


이래저래 알게 된 젊은 친구들에게는 보증금 대출받을 생각 하지 말고 월세 살면서 매월 나스닥 100을 적립식으로 사모으라 말한다. 그러면 20년쯤 뒤에는 나 이상의 자산가가 되어 은퇴를 하고도 남을 것이라고.


또 그들에게 전세만큼은 하지 말라 조언한다. 전세는 집주인에게 무이자로 돈을 빌려주고 나는 그만큼의 기회비용을 몇 년 몽땅 버리는 비효율적인 주거 형태다. 물가상승률까지 생각하면 심각한 손해다. 사정에 따라 어쩔 수 없을 수도 있겠지만, 가장 마지막 보루로 남겨두고 다른 방법을 먼저 강구해 보기를 권한다.


조카들에게는 주식 통장을 만들도록 하고 매년 백만 원씩 증여하여 나스닥 100과 금을 7:3 비율로 사고 있다. 이런 식으로 10년을 하면 원금은 증여 한도인 천만 원이지만 실제로 조카들에게 돌아가는 금액은 이천만 원 정도가 될 것이다. 대학 등록금에 보태고, 더불어 주식 투자에 눈을 뜨게 된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동반자의 마지막 논리는 이것이었다. 장기적으로는 인구가 감소하고, 주택의 수요는 하락할 것이라는 것.


국가의 인구 증가 정바카라이나 실제 인구 감소 추세에 대해서는 예상하거나 확언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지금 추세로만 보면 이 국가의 인구는 지속적으로 크게 감소할 것이다. 아무리 1인가구가 늘어도, 그 감소세를 감당하기는 쉽지 않다.


물론 서울권의 주택 수요는 당분간 견고할 수 있겠지만, 결국은 같은 길을 걷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는 과정에서의 등락 수익을 이야기할 수 있으나, 그것을 대체할 수 있는 더 매력적인 다른 투자수단에 대해서는 이미 이야기를 했다.


내가 죽기 전까지는 아닐지도 모르지만, 그 추세는 곧 반영되기 시작할 것이라는 게 동반자의 생각이었다. 나 또한 그 장기적인 방향에 대해서 공감을 했고,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투자 수단으로써의 부동산은 매력적이기는커녕 오히려 무섭기도 하다.




내가 지금 이렇게 한낮에 한가로이 커피 한 잔에 풍경 한 모금을 마시며 글을 쓸 수 있었던 것은 집을 사지 않았기 때문이 크다. 그러니까 절반은 동반자의 덕이며, 이 글을 빌려 다시금 감사의 말을 전한다.


그렇다. 무리해서 대출을 받고 집을 마련했다면 나는 이혼도 은퇴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자산은 부동산에 묶여 이혼의 재산분할도 더 곤란했을 것이고, 이건 어떻게든 한다 치더라도 대출금 갚을 생각에 은퇴는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이혼 후 이사를 하며 보증금을 최소로 잡고 월세를 늘렸다. 그렇게 마련한 보증금의 나머지를 모두 주식에 투자했고 이것이 상당히 불어나 내 은퇴에 큰 보탬이 되어주었다.


결과적으로 내 지금 주거지는 비록 월세일지라도 신축에 내가 살아본 집 중에 가장 크고 가장 높다. 서울 중심지까지의 거리는 가장 멀지만 친정과는 가까워 오히려 가족 간 왕래는 늘었다.


어디라도 바깥에 놀러 갈 일이 생기면 최소 한 시간은 이동에 써야 하지만 그럴 일은 매일 일어나지 않고, 오히려 가끔 드라이브하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할 기회가 반갑기도 하다.


이 집이 내 인생에서 최고의 집이냐 하면 물론 그렇지 않지만, 움직이기 위한 과정으로서의 집이라고 생각하면 충분하다.




번듯하게 집을 보유한 친구들이 있다. 그들은 아이들이 있고, 환경과 교육을 위해 서울 강남의 상급지 아파트를 대출받아 매매했다. 자산 규모만 따지면 나 따위는 그들과 비교하면 아주 초라하다. 강남 상급지 아파트 가격은 못해도 30억이다.


그러나 그들은 생활비를 위해 맞벌이를 하며 매일 출근을 하고 매달 대출 이자를 갚는다. 나는 반면 이만한 자산으로도 은퇴를 했다.


어느 편이 옳으냐를 따지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과거에도 부동산으로 자산을 일궈냈고 아이들을 위해 상급지 주택을 끝내 가졌다. 아이들을 생각하면 충분히 이해가 되고, 가치가 있는 투자라고 생각한다.


반면 나는 지금 내 처지에서 은퇴생활을 누리기 위해 집을 포기했다. 이 또한 가치 있는 선택이라고 생각하고, 나는 내 선택에 매우 만족하고 있다.




최소 10년의 추가적인 슬롯생활과 10년 이른 은퇴를 두고 선택해 보라고 하면 내 집 정도는 기꺼이 포기할 수 있다.


물론 세입자로 사는 불편함, 서러움, 이사의 괴로움도 모두 겪어보았고 알고 있다. 나도 내 집을 가져서 그럴듯하게 인테리어도 하고 싶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10년 이른 은퇴는 그 모든 것을 감수할 수 있게 한다.


요즘 노인분들의 고독사를 우려해 월세 계약을 거부하기도 한다던데 그렇게 되기 전까지는 아마 계속 월세를 살지 않을까? 나이가 더 들면 조용한 곳에 깨끗한 집 하나 사는 것도 고려해 볼만하다.




물론 지금도 집을 살 수는 있다. 지방에 저렴하지만 깔끔한 한 채를 마련할 수도 있고, 서울 어딘가의 똘똘한 한 채도 가능하다. 그러나 두 방향 모두를 따져보아도 지금의 월세 생활보다 메리트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


지방의 한 채는 지방이라는 곳에 묶여 버리거니와 장기적으로 투자 메리트가 굉장히 부족하다. 서울의 한 채는 투자 메리트는 있을지 모르지만 앞서 말했듯 그것이 주식보다는 낮고, 게다가 큰돈이 주택에 묶여버려 기회비용을 모두 잃게 된다.


그래서 나는 언제든 집을 살 수 있다는 위안만 챙긴다. 그렇다. 지금은 때가 아니다. 집을 살 수야 있지만, 그걸 사버리면 지금 생활을 유지할 수가 없다. 그러면 생활비를 충당하기 위해 아르바이트라도 해야 할지 모른다.


은퇴 후 주택을 보유하고 있어 자산 규모는 꽤 크지만 현금 유동성이 부족해 생활비가 부족한 경우는 왕왕 있다. 그렇다고 당장 집을 팔기도 어려울 것이다. 주택연금을 받기에는 또 조건이 맞지 않을지 모른다. 나는 이런 상황만큼은 맞닥뜨리고 싶지 않다.




그러고 보면, 결국은 돈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여력만 된다면 친정 근처에 하나, 강남권에 하나, 강원도에도 하나, 제주도에도 하나 거처를 두고 싶다. 여차하면 동남아에도 하나 두고 겨울에 거기서 지내고 오고 싶다.


그러나 물론 그만큼의 돈은 없기에 나는 지금도 월세를 살며 가끔은 며칠 지내러 여행을 간다.


내 집 하나 없는 떠돌이 은퇴자의 그럴듯한 자기 합리화로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게는 매일 원하는 시간에 일어나 커피 한 잔 내려 마시고, 가끔은 사치도 하며, 낮 동안 한가로이 글 쓸 수 있는 온전하고 포근한 자유의 가치가 더 소중하다.


그렇게 내가 원할 때, 원하는 곳으로 움직이는 삶을 살기 위해 지불한 것은 단지 세입자가 되는 것뿐이니까.

월요일 연재
이전 10화취향의 사치에 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