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림은 생존본능일까
얼마전에 전국에서 제일 유명한 빵집의 케이크를 먹었다. 맛있었다. 그런데 난 이내 질렸다. 그렇다고 케이크를 버릴 수는 없었다. 꾸역꾸역 다 먹었다. 왜 질리는 마음에 난 죄바카라감이 드는걸까. 그건 음식이 없던 시절 섭취가 귀했던 그 순간이 뼈에 새겨져서 인지도 모른다. 과거의 순간은 잊고 난 순간 질려서 케이크를 세상 쓸모없는 물체인냥 바라보았다. 이 질림이 혹시 생존 본능은 아닐까 뇌의 구조가 궁금해졌다. 그래서 새벽숲이 궁금해서 만드는 시리즈가 또 한편 탄생하게 되었다.
인간은 왜 질리는 감정을 갖는가?
클로드와 몇번의 대화로 래퍼런스를 찾고 목차를 정돈하고 논지를 모으고 글을 완성한다. 제미나이에게 내용을 알려주고 이미지를 제작하게 한다. 제미나이는 하나의 계정에서만 이미지를 테스트 하지 않는다. 여러개의 계정에서 동시에 테스트 해서 제일 맘에 드는걸로 한다. 신기하게도 계정마다 그림체가 다르다. 똑같은 프롬프트를 주는데도 말이다.
질림이 무엇인지 묻기 전에,
질림이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지를 먼저 물어야 한다.
한 번 좋았던 것이 계속 좋기만 한 동물을 상상해 보자.
그 동물은 세 가지 방식으로 죽는다.
*링크의 사이트로 들어가 보시는게 가독성이 좋습니다.
https://iridescent-hotteok-259e31.netlify.app/
*질림에 관한 궁금증이 생긴글
https://fishingproductfr.com/@forestindawn/241
Satiation & Survival · A Biological Inquiry
수용체 하나에서 개체군의 이동 규칙까지 — 우리가 '질렸다'고 부르는 감각은 여섯 개 층위에서 동일하게 작동하는 하나의 생존 규칙이, 잠깐 의식 위로 올라온 사건이다.
―서론
케이크가 생겨서 먹었다. 첫 입은 분명히 좋았다. 그런데 몇 입 지나지 않아 그 좋음이 눈에 띄게 줄었다. 배가 부른 것도 아니고 케이크가 상한 것도 아닌데, 같은 것을 같은 입으로 먹는 동안 감각만 조용히 물러났다.
이상한 일이다. 나는 그것을 좋아하기로 결정했고, 아직 다 먹지도 않았다. 그런데 몸은 내 결정과 무관하게 신호를 줄이기 시작했다. 무언가가 나 대신 판단하고 있었다는 뜻이다.
더 이상한 것은 그 판단이 케이크에만 걸렸다는 사실이다. 그 순간 옆에 짭짤한 것이 있었다면 그것은 여전히 맛있었을 것이다. 포만이 아니다. 미각 전체가 꺼진 것도 아니다. 정확히 그 대상 하나에만 신호가 끊겼다.
이 글은 그 판단의 정체를 따라간다. 그리고 그것이 취향의 문제도, 의지의 문제도, 사치의 대가도 아니라는 것을 밝힌다. 수용체 하나에서부터 개체군의 이동 규칙까지, 여섯 개 층위에서 동일하게 작동하는 규칙이 하나 있다. 케이크에 질리는 감각은 나에게 일어난 일이 아니라, 나를 만든 규칙이 잠깐 의식 위로 올라온 사건이다.
01진화생물학 · 적응의 논리
질림이 무엇인지 묻기 전에, 질림이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지를 먼저 물어야 한다. 한 번 좋았던 것이 계속 좋기만 한 동물을 상상해 보자. 그 동물은 세 가지 방식으로 죽는다.
첫째, 독으로 죽는다. 1974년 프릴랜드와 잰전은 초식동물이 왜 한 가지 식물만 먹지 않는지를 설명하는 고전적 논문을 발표했다. 식물은 거의 예외 없이 이차대사산물 — 알칼로이드, 탄닌, 배당체 같은 방어 화학물질 — 을 품고 있고, 동물의 해독 능력은 각각의 물질마다 따로, 그리고 유한하게 존재한다. 한 종류를 조금씩 먹으면 처리되지만 같은 것을 대량으로 먹으면 그 경로만 포화된다. 따라서 먹이를 섞는 것 자체가 해독 전략이다. 잡식동물에게 식이 다양성은 취향이 아니라 강제였다.
둘째, 굶어서 죽는다. 자원은 한 자리에 무한히 있지 않다. 좋았던 자리에 계속 머무르는 개체는 이미 고갈된 곳에서 점점 줄어드는 수확을 붙들고 있게 된다. 떠나야 할 시점을 알려주는 신호가 없다면, 그 개체는 자기가 가장 좋아했던 자리에서 굶는다.
셋째, 잡아먹혀서 죽는다. 그리고 이것이 이 글에서 가장 중요한 이유다. 감각기관의 일은 세상을 있는 그대로 옮기는 것이 아니라, 배경에서 전경을 분리해 내는 것이다. 변하지 않는 것에 계속 반응하는 신경계는 변하는 것을 감지할 여력이 없다. 풀잎이 흔들리는 소리와 포식자가 다가오는 소리를 구별하려면, 풀잎 소리는 먼저 지워져 있어야 한다. 배경을 지워야 전경이 보인다.
질림은 감각의 손실이 아니라, 감각이 성립하기 위한 조건이다.
이 세 번째 이유가 왜 질림이 포만감보다 훨씬 먼저 오는지도 설명한다. 만약 이 브레이크가 배가 부를 때쯤 걸린다면, 독소는 이미 축적되었고 자리는 이미 비었으며 감각은 이미 마비된 뒤다. 소용이 없다. 그래서 이 회로는 위장이 차기 한참 전에, 몇 입 만에 작동하도록 설계되었다.
여기까지가 답이다. 남은 여섯 장은 이 답을 분자에서부터 다시 증명한다. 놀라운 것은 각 층위가 서로를 알지 못한 채 같은 계산을 수행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02세포생물학 · 수용체 탈감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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