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첨단 기업들은 가장 오래된 학문을 다시 찾는가
오랫동안 철학은 ‘취업이 잘되지 않는 전공’의 대명사였다.
결국 돈이 되지 않는 졸업장의 대표격으로 ‘철학과 졸업’을 꼽을 만큼 인기가 없었다. 한국에서는 “문송합니다”라는 자조 섞인 유행어까지 등장했고, 이는 인문학, 그중에서도 철학이 처한 현실을 압축적으로 보여주었다.
그뿐만이 아닌 것 같다. 최근 플랫폼에 AI와 관련한 철학적인 글을 자주 올리다 보니, 몇 분은 팔로우를 취소하기도 했다. 철학이란 어쩌면 가장 필요한 것이면서도, 동시에 가장 따분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철송합니다.(철학이라 죄송합니다.)"
그런데 지금, 실리콘밸리의 가장 앞선 AI 연구소들이 철학 박사들에게 억대 연봉을 제시하며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뉴욕타임스가 이 현상을 ‘철학 전공자들의 역습(The Revenge of the Philosophy Majors)’이라고 표현했을 만큼, 변화는 극적이다.
역설처럼 보이지만, 들여다보면 논리는 그리 복잡하지 않다.
초기의 AI는 말 그대로 계산 기계에 가까웠다. 얼마나 빠르게, 얼마나 정확하게 답을 내놓느냐가 중요했다. 그런 세계에서 철학은 쓸모없는 사변처럼 보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AI가 인간처럼 대화하고, 조언하고, 판단하는 단계에 접어들면서 게임의 규칙이 달라졌다.
이제 중요한 질문은 단순히 “더 빠른가?”가 아니다.
“그 판단은 옳은가?”라는 질문이 등장한 것이다.
그리고 무엇이 옳은지를 묻는 질문에 가장 오랫동안 답해온 학문이 바로 철학이다.
구글 딥마인드가 케임브리지대 철학자 헨리 셰블린을 ‘정식 철학자’라는 직함으로 영입해 기계 의식과 AGI의 윤리적 과제를 연구하게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앤스로픽이 언어철학을 연구해 온 텍사스대 교수 하비 레더먼을 AI 안전 연구진에 합류시킨 것 역시 마찬가지다.
오픈 AI의 샘 올트먼이 챗GPT의 행동 규범을 정하는 과정에서 도덕 철학자들의 자문을 구했다는 사례도 같은 흐름에 놓인다.
코드는 “어떻게 작동하는가”를 설계한다. 하지만 AI가 인간의 가치와 충돌하지 않도록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설계하는 문제는 결국 윤리학의 영역과 맞닿아 있다.
여기에 보다 현실적인 이유도 있다.
바로 신뢰의 위기다.
아무리 뛰어난 성능을 가진 기술이라도 사람들이 “이 기술을 믿어도 되는가?”라는 질문에 답을 얻지 못한다면 시장에서 살아남기 어렵다.
기업들이 철학자와 인류학자를 곁에 두는 이유 역시 여기에 있다.
기술적 설명만으로는 닿기 어려운 인간의 가치와 신뢰의 영역을 다루기 위해서다.
실제로 뉴욕 연방준비은행 통계를 보면 2024년 기준 미국 철학 전공자의 실업률은 5.1%로, 컴퓨터공학 전공자 7%보다 낮았다. 숫자만 놓고 보면 철학 전공자를 둘러싼 기존의 인식과는 다소 다른 모습이다.
물론 이 현상을 과장해서는 안 된다.
AI 기업들이 여전히 압도적으로 많이 채용하는 인재는 엔지니어다. 철학자 채용 역시 아직은 소수의 상징적인 자리에 가깝다. 반도체 대기업들의 인재 확보 경쟁에서도 중심축은 여전히 인문학이 아니라 공학이다.
그러니 이 흐름을 “이제는 철학이 대세다”라는 낙관론으로 읽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 오히려 이렇게 읽는 편이 맞을 것이다. 기술이 인간의 영역인 언어, 판단, 가치에 깊숙이 들어갈수록, 그 기술이 어디로 향해야 하는지를 묻는 질문 역시 함께 필요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한때 상아탑의 사변으로 치부되던 질문들이 있다.
의식이란 무엇인가?
어떻게 판단해야 옳은가?
그런데 지금 이 질문들이 세계에서 가장 앞선 연구소들의 실무 의제가 되고 있다.
철학의 귀환은 어쩌면 기술이 스스로 만들어낸 질문에 대한 자연스러운 응답인지도 모른다.
결국 핵심은 이 한 문장으로 압축할 수 있다.
“기술이 인간을 닮아갈수록, 그 기술이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물을 사람이 필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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