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확인받고 싶은 밤

세상의 높낮이에서 벗어나 또 다른 '나'를 만나는 시간

byItz토퍼
e528eff5-cb14-4be1-b89f-5e42c78a301a.pngby ChatGPT

지인 중에 법학을 전공하고 지금은 유명 대기업 기획실에서 일하는 친구가 있다.


그는 평소 빈틈을 좀처럼 허용하지 않는 완벽주의자로 유명하다. 그래서 겉으로 보기엔 마치 일하는 로봇처럼 차갑게만 보인다. 하지만 그에게는 한 가지 역설적인 생활 습관이 있다.


그는 매일 저녁 잠자리에 들기 전, 하루 동안 있었던 일을 마치 누군가에게 보고라도 하듯 사진과 소소한 글을 SNS에 올린다. 딱딱해 보이던 그의 하루가 가장 적나라하게 공개되는 순간이다.


아마도 그는 불 꺼진 방, 스마트폰의 차가운 화면 위로 하루 동안 모아둔 사소한 장면들을 하나씩 꺼내어 따뜻한 이야기로 꾸미는 모양이다.


오늘 마신 커피의 맛과 향, 퇴근길 노을빛을 바라보며 가졌던 작은 상상, 혹은 문득 스친 싱거운 생각 한 줄까지. 타인에게는 별다른 의미가 없을 이 지극히 개인적인 조각들을 그는 매일같이 SNS라는 광장에 펼쳐놓는다.


항상 그 글에 ‘하트’를 눌러주는 또 다른 지인은 “이 친구는 SNS에서야말로 자기가 누구인지를 제대로 소개하는 것 같다”라고 말할 정도다.


그렇다. 어쩌면 그건 거창한 자랑이나 인정 욕구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러면 사람들은 왜 이런 은밀한 자유를 발산할까?


여기에는 우리가 살아가며 타인을 바라보는 세 가지 시선의 높낮이가 작용한다고 본다.


우리 모두는 세상이라는 거대한 무대 위에서 끊임없이 타인과 자신을 비교하며, 서로의 시선의 높낮이를 재느라 지쳐가고 있다.


현대 슬롯는 겉으로는 화려하고 풍요로운 냉장고와 같다고나 할까. 온갖 것들이 가득 차 있지만, 막상 그 안에 들어가 보면 그 풍요로움 속에서 우리의 마음이 서서히 차가워지는 순간을 마주할 때가 많다.


그래서 나보다 뛰어난 누군가를 향해 고개를 길게 빼고 바라보는 ‘동경(Admiration)’은 때로 근사한 자극이 되지만, 그 거리가 멀어질수록 나를 아득하고 초라하게 만든다.


반대로 누군가를 바닥으로 내려다보는 ‘경멸(Disdain)’의 시선은 차갑고 날이 서 있어, 결국 내 마음마저 피폐하게 만든다. 슬롯생활 속 갑질이나 온라인 게임 내 상하관계에서 마주하는 것처럼, 누군가의 높은 위치에서 아래로 향하는 시선은 때로 말 한마디보다 깊은 상처를 남기곤 하니까.


이처럼 위를 향해 고개를 고쳐 젖히거나, 아래를 향해 눈길을 세워야 하는 ‘세로의 세상’은 늘 우리를 지치게 한다.


하지만 세상은 마냥 삭막하지만은 않다. 지친 마음을 말없이 녹여주는 따뜻한 시선이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사람들이 저마다의 소소한 일상을 디지털 바다에 띄워 보내는 것도, 그런 따뜻한 시선과 마주하고 싶어서가 아닐까.


거기에는 ‘공감(Empathy)’이라는 '수평의 안식처'가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 내 글 밑에 남겨둔 짧은 댓글 하나, 혹은 마음을 눌러 표시한 하트 모양의 작은 신호.

그 소박한 반응이 전하는 본질적인 메시지는 늘 하나다.


“당신도 그랬군요. 나 역시 그래요.”


‘나 역시’라는 단 세 글자가 건네는 정서적 체감온도는 정말 따뜻하다.


이 한마디는 나와 타인 사이에 존재하던 아득한 거리를 지우고, 높낮이 없는 수평의 선 위에 서로를 어깨를 나란히 하도록 세워준다. 내가 느낀 외로움이 나만 그런 것이 아니었음을, 내가 지나온 고단한 하루가 나 혼자만의 바둥거린 수고가 아니었음을 확인받는 순간이다.


나를 높이 우러러봐 주지 않아도 좋다.

그저 나와 같은 지평을 바라봐 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족하다.

그로 인해 온갖 세로의 평가 속에서 위축되었던 마음이 안정감을 얻으면 충분하다.


결국 현대인이 사소한 이야기까지 SNS에 털어놓는 이유는, 세상이 요구하는 “자네, 정말 특별해!”라는 차가운 감탄 대신, 나와 같은 존재가 곁에 있다는 온기, ‘나 역시’를 확인하려는 가장 절박하고도 인간적인 시도가 아닐까.


타인의 ‘나 역시’라는 온기 한 조각을 내 몸에 걸치게 되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오늘 하루도 혼자가 아니었음을 안도하며 편안한 잠자리에 들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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