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역죄인 목수국.
목수국을 별로 안 좋아했다. 꽃꽂이 레슨을 받을 때 여름이면 풍성한 수국이 단골 소재로 등장을 했고, 목수국도 여름철 당연한 소재라는 듯 나왔다. 풍성한 수국은 항상 묵직하게 자리를 차지하는 중심 소재로 전체적인 모양을 잡고 연출하기에 편리하긴 했지만 플로랄 폼에 자리를 잡은 지 얼마 안 된 시간부터 힘없이 시들어 가기 십상이었고 결국에는 따로 뽑아서 물꽂이를 해놔야 했다. 그리고 수국이 빠진 휑한 자리를 메꾸느라 다시 꽃을 꽂아야 하는 수고가 뒤따랐다. 그리고 그 뒤처리도 만만치 않았다. 수국은 그냥 한 송이만 따로 물꽂이용으로 쓰는 게 제일 나았다. 다른 꽃들과 같이 하기엔 뒤처리가 귀찮은 소재였달까? 단박에 쉽게 꾸미고 선생님께 평가를 받기에는 좋았지만 그 순간이 지난 이후에는 항상 후처리가 따라야 하는 귀찮은 소재였다. 그런데 목수국은 소재로 등장하는 그 순간부터 골머리를 썩게 하는 소재였다. 일단 모양부터. 목질화된 부분을 통으로 쓰지 않으면 줄기 부분은 너무 가늘고 약해서 따로 쓸 수가 없다. 플로랄 폼에 나무 가지를 꽂으면 다시 뺐다 꽂는 수정은 불가능하다고 보면 된다. 한 번 뚫린 그 큰 구멍을 뭘로 메꿀 것이며, 운 좋게 한 번 정한 자리에서 수정 없이 간다고 할지라도 무게가 있는지라 이동하는 동안 움직이기라도 하면 꽃을 고정시켜주는 폼은 그냥 부서져 나간다. 그러면 그냥 파국이다. 뭐 이 정도도 괜찮다. 가장 큰 문제는 얘들이 워낙 가지각색의 모양으로 줄기를 뻗어 자라는 애들이고 줄기도 야들야들 힘이 없어서 다른 꽃들과 연출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거다. 기본적으로 줄기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는 형태라 다른 꽃에 간섭이 된다. 게다가 기본적으로 얼굴이 큰 애들이라 존재감도 큰데 모양도 단정하지 못하다는데 큰 문제가 있다. 그래서 목수국은 정신이 없다.
정원을 꾸미면서 수국은 당연히 심었다. 문제는 내가 생각한 그 모양이 아니었다는 데에 있다. 내 수국은 꽃이 없는 깻잎의 형태로 몇 년을 내 정원에서 지냈다. '살아는 있어 준 나의 깻잎' 남의 집은 담장 밖에서도 꽃을 팡팡 내주더만 도대체 뭐가 문제라고 몇 년 간 깻잎을 고집하고 있는 건지 감도 못 잡을 무렵 우연히 산바카라길에 보게 된 교회 뒷마당 목수국이 갑자기 예쁘게 보였다. 그래서 우리 집에는 세 종류의 목수국이 들어왔다. 바닐라 프레이즈, 라임 라이트, 다이아 만트러지. 솔직히 바닐라 프레이즈 빼고 두 종류는 구분이 안 된다. 바닐라 프레이즈는 단정한 애. 나머지 두 애들은 정신없는 애들.
목수국은 봄 전지도 가능하다고 해서 수형을 생각하면서 단정한 모양으로 꽃이 필 수 있게 전지를 4월 초에 전지를 했다. 그러면서 삽목이 잘 된다는 얘기를 또 들은 게 있어서 안 되면 어쩔 수 없고. 하는 마음으로 어린 가지 몇 개를 땅에 그냥 꽂았다. 결과적으로는 성공했고 심지어 꽃도 피었고 꽃이 핀 초기 모습이 푸른 기운 없이 깨끗한 하얀 꽃이 핀 것으로 봐서 다이아 만트러지가 아닌가 짐작한다. 덧붙이자면 몇 년간 깻잎으로 살아온 마크로필라 계열 수국들은 내가 가을 전지를, 그것도 아주 강전지를 한 결과였음이 밝혀졌다, 슬프게도 말이다. 아니, 어쩌면 다행인가? 순간적으로 마음을 빼앗겼던 교회 뒷마당 목수국의 아리따운 자태를 기대하며 애지중지 물을 주며 잘 자라라, 목수국들아. 니들이 절화의 형태로 꽃꽂이의 소재로 쓰일 때나 정신없는 모습이었지 자연 상태에서 자라 나무꽃 그대로의 모습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우리 집에서도 보여줘! 내가 얼마나 기대를 했는지 모른다. 풍성하게 꽃을 피워라, 목수국들아!
하루하루 그들이 아름다운 모습들을 보여줄 것을 기대하며 지내던 어느 날 남편이 새로운 소식을 하나 전해 온다. 우리 집에 있는 목수국들은 가을에 꽃잎에 단풍이 드는 애들이라고. 화려하게 폈다가 시드는 게 아니라 단풍이 들듯 색이 변한다는 희한한 사실을 들고 온 것이다. 꽃이 줄기에 매달린 채 그대로 말라서 드라이플라워의 형태로 오래가는 건 본 적이 있는데 나뭇잎이 아니라 꽃잎이 단풍이 든다고? 여름에 장마를 견뎌내는 애들인데 비를 맞으면 꽃잎이 상할 텐데 단풍이 든다고? 그러면서 알려 준 방법이 꽃봉오리가 맺히는 시점에 약한 전지를 더 해서 꽃이 피는 시기를 늦춰 장마를 피하고 이후 가을로 넘어가는 시점까지 꽃을 두면 색이 변한다는 것이다. 세상에! 이런 얘기는 살다 살다 처음 듣는 신기한 얘기였다. 우와! 하지만 나처럼 보수적인 사람은 처음 듣는 얘기가 신기하긴 해도 실행을 하기에는 시간이 든다. 일단 봉오리가 잡힌 애들 잘라내기 아깝고, 저 아이의 본래의 모습이 어떤 지를 알고 난 후에 끼를 부려봐도 늦지 않다고 생각을 했다. 고기를 먹어도 첫 점은 고기 본연의 맛을 봐야 이후 어울릴 곁들임 양념들을 고르듯이 일단은 내 정원에서 저 아이의 본연의 성장세와 자태를 보고 싶었다. 목수국의 끼를 부리를 것은 내년으로 하고 올해는 순리대로 가자.
그리고 봤다. 목수국의 본연의 모습을 봤다. 결론은 목수국은 메타인지 능력이 아주 바닥이다. 자기 주제를 모른다. 도대체 저런 멍청한 애가 어떻게 자연계에서 살아남았는지 이해가 안 갈 정도로 멍청하기 그지없다.
바닐라 프레이즈가 똑똑하고 나머지 두 아이들은 세상에 이렇게 멍청할 수 있는 거야 싶은 정도다. 어떻게 자기가 감당하지도 못한 정도의 꽃을 달 수가 있는가 말이다. 장맛비를 잔뜩 맞은 다이아 만트러지는 꽃잎에 물을 잔뜩 먹여서 그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주 가지가 부러졌다. 부러졌다기보다 그 모양이 나무가 그냥 찢어져 버렸다. '찢어졌다'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부드럽고, 가늘고 낭창한 가지에 감당 못할 꽃을 달면 도대체 어쩌란 말이야? 라임 라이트는 주 가지의 옆구리에서 가지가 나와서 거기서 꽃을 피우는데 그 모양새가 인도 신화에 나오는 팔 많은 신 같은 그런 모양이고 옆구리에서 삐져 나온 약한 가지에 달린 애들 역시 얼굴이 커도 너무 크다. 옆구리에서 삐져 나온 애들이라 얘들은 모양을 잡아 고정을 시켜 주려고 해도 방법이...... 없다. 위로 자라 오른 게 아니라 옆으로, 지면과 평행한 모양으로 옆으로 가지가 뻗고 거기에 그 감당 못할 꽃이, 엄청나게 크게 달렸단 말이다. 그리고 물 먹고 숙이고 있어. 와...... 밤낮으로 이어지는 폭우를 2,3일 겪은 후 돌아본 정원의 목수국은 당시 나의 느낌으로는 재난이었다.
단정한 수형에 탐스러운 꽃덩이들이 둥실둥실 있는 모습은 아직은 바라기 이른 모습이었단 말인가? 분명 교회 뒷마당의 목수국은 그런 모습으로 나의 마음을 빼앗았는데 왜 우리 애들은 지구에 존재하는 식물의 모습이 아닌 에어리언 같은 거지? 이번에는 내가 또 뭘 잘못한 걸까? 자연계에 존재하는 것들은 긴 시간을 살아오면서 저마다의 삶의 방법으로 진화해 살아가기 마련인데 이 괴랄스러운 모습이 목수국이 진화한 방법이라면 무슨 이득이 있는 거지? 삽목이 잘 되니까 자손을 많이 번식하기 위해 스스로 몸을 찢어가며 땅으로 가 새로운 독립된 개체가 되길 바라는 건가?그러려면 딸기가 되지 그랬어? 아니면 현재 인기 있는 원예 품종이라는 건 다 인간의 손을 탄 애들이니까 인간의 손을 타지 않으면 스스로의 힘으로는 살아가기 힘든, 한 마디로 새로운 형태의 삶에는 아직 진화가 되지 않은 원시적인 모습인 걸까? 나는 정말로 이 처참하기 그지없는 모습을 보고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과연 나는 이 시점에서 뭘 해야 하는가? 나는 앞으로 이 아이들을 어떻게 키워내야 하는가? 얘들의 타고난 이 정신머리 없는 물성의 특징을 존중해야 하는가 아니면 양육자가 통제력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성장에 개입해서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디자인을 해야 하는가?
내 고민의 끝은 강한 통제력. 자기 주제를 모르고 욕심만 가득한 애들은 양육자가 강한 통제력을 보여 줄 필요가 있다. 일단 올해는 니들 멋대로 한 번 해 봐. 하고 싶은 대로 다 해 봐. 그리고 내년에는 아주 숨도 맘대로 쉬지 못할 테니까. 정신 똑바로 차리고 아, 내가 이러면 안 되겠구나 하는 마음가짐이 들 때까지는 길을 좀 닦아 주는 게 나의 의무인 것 같다. 대신 스스로도 단정하게, 주제에 맞게 잘 크는 착한 바닐라 프레이즈는 자율성을 확실히 보장해 주겠어.
자, 내년 목수국의 양육 계획.
1, 3월 1차 전지를 한다.
2, 5월 수형을 잡기 위한 전지를 한다.
3, 7월 장마를 피하고, 꽃잎의 색깔 변화를 감상하기 위해 개화를 늦추는 전지를 한다.
알아서 잘 크는 바닐라 프레이는 성장의 자율성을 보장해 주되, 메타인지 능력이 떨어져서 주제 파악이 안 되는 두 녀석들은 강한 통제력을 가지고 성장에 적극 개입하기로 한다. 정신 못 차리면 사랑의 매를 들어야지 별 수 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