곳간에서 인심 난다

나눠먹기의 재미

by백경화

올해는 수확이 좋았다. 차고도 넘칠 만큼이라는 말의 쓰임을 체험한 해라고 할 수 있다. 아무리 나눠줘도 항상 많은 부자의 마음. 곳간에서 인심이 난다더니 내가 이렇게 자애롭고, 너그러운 사람이었나 싶을 정도. 뭘 그렇게 주변에 퍼주느냐 그거 다 냉동보관해서 겨우내 먹고, 내년에 햇열매 나올 때까지 먹으면 되는데 이제 그만 나누고 네 것 좀 챙기라는 말까지 들었으니 얼마나 풍족한 해를 보냈는지 말이다. 내 마음도 얼마나 풍족했냐면 이런 말을 들으면서도 뭘 그렇게 쪼잔하게 챙기고 말고 하느냐, 말대로 내년에 또 나올 거고, 올해 나도 실컷 다 누렸고 누리고 남는 거 나누는 것이라는 말을 할 때는 내가 굉장히 괜찮은 사람이 된 것 같은 생각도 들었다. 이것이 나누는 기쁨인가? 게다가 내 것을 함께 나누어 먹는 사람들은 나를 얼마나 넉넉하고 좋은 사람으로 생각할 것일까 하는 생각까지 해 본다면 내가 얻는 점은 곱에 곱이 확실하다.

나무에서 충분히 익어서 그때그때 따먹는 과일의 맛을 알게 된 이후로 집에서 수확한 과일을 굳이 냉장보관 하지 않게 됐다. 사실 굳이 미리 딸 이유도 없다. 색깔이 예쁘게 들었거나 근처에만 가도 단내가 난다거나 손으로 만져봤을 때 단단하지 않고 보들하다면 딱 먹기 좋을 때고 그때 따서 냉을 입히지 않는 과일의 그 맛. 나무에 두면 나무가 알아서 잘 키워주고, 보관도 해주고, 이제는 다 키웠다고 생각되면 떨궈주니 내가 할 일은 나무 밑을 푹신하게 멀칭을 잘해 놓고, 매일 한 두 번씩 둘러보는 일 정도만 해 주면 된다. 그러니 뭐 나누면서 아까울 것도 없다. 내가 한 일은 둘러보고, 수거하는 일 뿐이니까.

비단 과일뿐 아니라 꽃도 참 풍성하게 잘 폈다. 장미며 기타 야생화들이며 하나같이 건강하고 예쁜 모습을 최대한 뽐내는 올해였다. 우리 집 정원의 꽃들을 무료로 1열 감상하는 이웃은 비 때문에 작약의 계절을 아쉽게 보냈다고 한숨을 짓더니 몇 주 후에 저기 빨갛게 와다다다 한 게 뭐냐 했다. 작년에는 못 봤던 것 같은데 저기 높은 데가 뭐가 막 와다다다 한다길래 봤더니 삽목한 지 2년 된 덩굴장미 스칼렛 메이딜란드가 올해 기세가 너무 좋아서 길게 뻗어나간 줄기들을 안개나무, 블루 버드에 얹었는데 이 놈이 알아서 덜굴덩굴 잡고 올라서 햇빛 잘 받는 위치에서 작고 빨간 얼굴을 와다다다 냈다. 그것이 이웃에서도 선명하게 보였나 보다.

작년에는 안 보였던 것 같던데 올해 너무 예쁘게 폈다고 칭찬에 칭찬을 거듭하길래 보답으로 꽃이 예쁘게 달린 줄기를 몇 줄 자르고, 정원에 있는 다른 애들이랑 이래저래 잡아 야외 식탁 장식용으로 선물했더니 멜론 두 통과 양파를 한 바구니 내줬다. 21세기의 물물 교환. 아스틸베도 정말 잘 펴서 만개하는 시점에 딱 잘라 우리 집, 이웃집 할 것 없이 나눴다. 안개나무의 꽃, 캐모마일 등도 작년과는 다르게 올해는 정말 풍성했다. 딱 그 계절에 피는 꽃들을 귀엽게 어레인지 하는 재미도 있었다. 내가 갖고 있는 게 풍족하다고 느끼면 주변에도 굉장히 여유로워진다. 손해를 생각하지 않게 되고, 아등바등하지 않게 된다. 되게 근사하지 않나?

올해 미쳤는가 싶었던 납작복숭아의 나눠먹기는 놀라움의 연속이었다. 유럽에서나 있는 거 아니었어? 국내에서도 이게 된다고? 마치 우유 같은 이 크리미한 느낌은 뭐지? 이거 푸딩이야? 등등 많은 감상을 들으면서 내가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른다. 나는 그냥 많아서 나누었을 뿐인데 단지 복숭아의 맛을 표현한 그 말들이 왜 나는 나에 대한 호감과 칭찬으로만 들리는 건지 '인생을 꽤 잘 산 것 같아.' 싶고 자존감이 으쓱으쓱했다. 그리고 자꾸자꾸 더 주고 싶은 마음.

그리고 올해 나눠먹기의 하이라이트를 발견했다. 냉동실에 소분해서 보관 중인 블루베리와 산딸기 정말 질리게 먹고, 억지로 맡기듯 나누고 해도 남아 냉동실에 소분되어 있는 베리류들. 냉동 과일을 좋아하지 않아서 뭐든 다 먹어치워 버리고 싶었는데 실패한 애들. 잼이라도 만들라고 했지만 사실 난 과일잼을 좋아하지 않아. 냉동과일 특유의 해동되면서 생기는 수분이 너무 싫어서 과일을 냉동하는 건 정말 하고 싶지 않았지만 달리 방법이 없어 일단 얼려 둔, 이렇게 말하기도 미안한 처치 곤란이들. 다행히 오버나이트 오트밀로 먹으면 오트밀과 치아씨드가 수분을 흡수하고 맛도 좋길래 한동안 먹다가 질릴 무렵. 이것들을 겨울 베이킹의 재료로 삼을 수 있는 기가 막힌 레시피를 발견했다. 바로바로 베리류 크럼블. 구우면서 냉동 베리의 수분 때문에 반죽이 질척해지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그런 부분까지 계산한 레시피라는 얘기와 조금 더 안전한 베이킹을 원한다면 냉동 과일을 얹을 때 전분을 사용하면 전분이 수분을 흡수해서 잼 같은 질감을 만들 수 있다는 팁까지 얻었으니 안 해 볼 이유가 없다. 작년 겨울에는 바스크 치즈 케이크에 꽂혀서 쉴 새 없이 오븐을 돌리고, 포장 용기에 담아서 지인들에게 돌렸는데 올 겨울 베이킹은 very berry crumble로 정했다.

여러분들, 혈당 올릴 준비 하시 G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