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상은 과학이라더니

가뭄과 장마를 겪고 있는 오이 이야기

by백경화

우스갯소리로 하는 말이 결국에는 아주 헛소리는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되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냥 머리로 그러려니 하는 거 말고, 진짜로 뒷꼭지가 쭈뼛하게, 가슴을 꽝! 때리게 깨닫는 그런 거 말이다. 뭐 여러 가지가 있긴 하다. 나이가 들면 입은 닫고, 지갑을 열라는 말이라든지, 마흔이 넘으면 얼굴에 바카라임을 지라는 말이라든지 이렇게 하지 않았을 때 뒤로 들려오는 생각 하지도 못한 나에 대한 평가를 듣는다거나 혹은 그렇지 못한 내 윗세대에 대한 평가를 자연스럽게 하고 있는 나를 볼 때마다 '와, 장난이 아니네.' 하는 깊은 깨달음이 온다, 직접 촉각적으로.

어릴 적에는 내가 무심코 하는 언행에 대해 상대가 오해를 하고 내가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나에 대한 오해 섞인 평가들이 들려올 때면 그게 그렇게 억울하고, 화가 나고 그런 말을 옮겨 내는 놈들을 찾아내서 시시비비를 가리려는 노력을 얼마나 했는지. 그렇게 해서 오해를 풀고, 사실은 그런 게 아니라는 것을 명백하게 밝혀내는 것이 정의라고 믿었던 적이 꽤 오랫동안 있었다. 그런데 사실 생각해 보면 별 것도 아닌 일들이고 그렇게 듣는 오해라 봤자 '싸가지가 없네.' 정도인데 그런 평가가 나오기까지의 그 수많은 오해와 억측의 과정들 속에 나라는 사람이 가볍게 사람들의 입에서 오르내리다가 결국에는 유쾌하지 못한 이미지로 각인되는 것이 그렇게도 억울했더랬다. '그렇게 생각하라 그래. 정 아니면 안 보면 되는 거고, 그렇게 생각하더라도 지가 아쉬운 일이 생기면 요래조래 다 비위 맞추면서 숙이게 되어 있'다는 것은 슬롯생활이 닳고 닳은 다음에야 깨닫게 된다. 중요한 건 점점 주변의 상황에 그다지 예민하게 반응하지 않더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변치 않는 한 가지는 내가 의식하지 않더라도 남들이 보는 나의 체형, 표정, 말투, 행동, 취향은 타인이 나를 판단하는 아주 쉬운 소재가 된다는 점이다. 사실 그런 것들은 내가 일상을 살아오면서 켜켜이 쌓이는 나의 업적들이기도 하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나를 평가하는데 대한 나름 과학적인 접근 방법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생긴 대로 논다.'는 말은 단순한 조롱이 아니라 맞는 말일 수도 있다는 말이다.

정원을 가꾸면서 여름 채소들을 조금씩 키우고 있다. 작년에도 키우던 것들인데 작년에는 사실 거의 신경을 못 썼고 올해는 매일 들여다보면서 관찰을 하는데 화초를 키우는 것만큼 이것도 꽤 재밌다. 변화가 하루하루 다른 여름 채소들은 하루 동안에도 조석으로 모습이 다르니 더 예민하게 보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장마 전 한 동안 가물었을 때 비가 올락 말락 한 날씨에 예보에는 오후에 비가 내린다고는 하고, 하늘을 봐도 구름이 잔뜩 끼고, 비실거리는 햇빛 한 줄이 겨우 '지금 해가 존재는 합니다.' 정도인 날, 오전에 항상 주는 시간에 물을 주는 게 맞긴 한데 그날따라 해야 할 일들이 우후죽순으로 툭툭 튀어나와서 한창 정신이 없을 때라 오후에 비가 온다는 예보를 믿고, 마음속으로 기우제를 지내며 채소밭 물주기를 생략했더랬다. 허나 대개의 삶이 그렇듯이 혹시나가 역시나가 되는 경우가 훨씬 많다. 한 줄로 비실거리던 태양 빛은 비실거리는 그 모양새로 꾸준하게 오후까지 지속이 됐고 비는 오지 않았다. 그리고 그날 새끼손가락만 한 아기 오이 다섯 개가 노랗게 말라버렸다. 얼마나 아깝고 속이 상하던지. 마른 오이를 뜯어내면서 이웃집에 하소연을 했더니 오이는 오전, 오후로 두 번씩 물을 줘야 한다고, 물을 먹고 자라기 때문에 다른 작물보다 충분하게 물을 줘야 한다는 조언도 들었다. 바쁜 일과를 핑계로 딱 한 번 물 주기를 게을리한 결과는 생각보다 쓰렸다.

그리고 장마. 재미있는 일이 생겼다. 오이 옆에 가지를 심었는데 두 녀석의 생장이 서로 다르다. 연 이틀 비 보약을 충분히 먹은 오이는 짧뚱한 모습이 됐고, 가지는 체격은 키우지 못한 채 길이만 볼품없이 길어졌다. 가지는 햇빛을 받아야 체격이 커지는데 부족한 햇빛에 키만 싱겁게 커 버렸다. 그리고 오이는 물주기 게으름뱅이에게 보란 듯이 피부가 터질 정도로 빵빵해졌다. 바로 옆에서 같이 큰 이 녀석들이 동일한 환경에서 타고난 성질에 따라 어떤 결과를 보여주는지 굉장히 재밌는 관찰이었다.

며칠 뒤 더 재밌는 오이의 성장을 목격했다. 오이야, 네가 어떻게 컸는지 안 봐도 너의 체형만으로도 다 설명이 되는구나 싶을 정도 짠한 모습. 이 오이는 대한민국의 7월을 오롯이 자기 몸으로 견뎌냈다.


노란 오이꽃이 시들면서 튼튼한 아이를 낳았을 것이다. 이후 오이는 하루에 두 번 물을 줘야 한다는 조언을 들은 내가 신생아를 잘 돌봤을 것이고. 그러던 중 쨍쨍한 오후의 해가 강한 날이 하루 정도 있었나 보다. 오전, 오후로 물을 주는 유모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이는 유년 시절을 너무나 혹독하게 지냈다. 그러다가 연속적인 장맛비가 연달아 내렸고 굶주린 유년기 이후 급작스러운 일상의 변화를 온몸으로 맞이했다. 갑작스럽게 비대해져 버린 오이의 장년은 서서히 길이를 키워 갈 것으로 예상했지만 이어 온 강한 해의 영향으로 우리 오이 선생님은 급격한 노화를 맞이하게 된 것이다. 모습만 봐도 격정의 시간을 겪어낸 숭고한 오이의 일생이 보이는 것 같다. 이 오이는 한 조각도 헛되게 버리지 않고 꼭지도, 배꼽도 바짝 잘라 정리해서 가장 공들인 수제 드레싱을 써서 세상에서 최고로 맛있는 오이 샐러드가 될 것이다. 한낱 오이의 모습만 봐도 그 절절한 시간이 보이는데 인간, 진짜 잘 살자. 내 얼굴에 바카라임을 지는, 자기에 대한 바카라임감으로 정말 잘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