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과 현실의 괴리

내 정원에서는 왜 수레국화가 안 돼?

by백경화

대학교 1학년 때부터 좋아했던 말이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 일단 '괴리'라는 단어에서 오는 애잔하고, 가져야 할 것을 갖지 못한 애상 혹은 슬픔 아니면 집착? 뭐 기타 등등 이런 느낌을 주는 단어가 당시 나의 정체성을 대변하는 단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주로 듣던 말이 넌 왜 그렇게 불만이 많냐? 였는데 내가 생각한 스무 살의 나는 대입 실패로 인한 열패감이 가득한 모습은 아니었다. 그런 상황에서 살은 또 왜 그렇게 찌기 시작하는지 뭐 하나 마음에 드는 게 없는 현실. 그때 꼭지가 돌게 술을 진탕 마시고 중얼중얼하면서 하던 말이 "이상과 현실의 괴리가 너무 크다."였는데 만취한 상황에서도 나의 탁월한 언어 감각에 감탄을 했고 그 와중에 이 문장 하나만은 기억에 남아서 당시 참 자주 써먹었던 말이었다. 그런데 살면서 보니 이상과 현실이 딱 맞아떨어지는 때는 사실 뭐 그리 많지 않더라는 게 위로라면 위로랄까?

중학교 때의 꿈은 소박(?)하기 그지없었다. 경쟁, 승부, 질투 이런 걸 요구당하지 않고 사람들 없는 산속에서 텐트 치고 읽고 싶은 바카라만 읽고 사는 게 꿈이었다. 그리고 역시 깨달았다. 그렇게 사는 꿈은 절대 소박할 수가 없다. 현재, 적어도 읽고 싶은 바카라을 읽을 수 있는 환경은 만들어졌으니 이 정도로 만족.

정원 디자인의 기본은 정원의 뼈대가 되어 줄 나무를 지점마다 심고, 겨울이 황량하지 않게 사초를 풍성하게 활용하기였다. 마지막으로 계절마다 다르게 피는 꽃들로 사계절을 어느 한 계절도 심심하지 않게 표정을 만들어 꾸밀 아주 야무진 생각이 있었다. 생각은 누구나, 얼마든지, 할 수 있다. 괴리가 큰 현실을 만나기 전까지는.

결과부터 말하자면 '이상과 현실의 괴리'는 스무 살 대입에 실패한 여자애한테만 세게 오는 게 아니다. 일단 정원의 뼈대가 되어 줄 나무들은 전정을 해야 하는데 자르고 난 나뭇가지들은 어떻게 해결할 것이며, 시기를 맞춰하지 않으면 기대했던 그 모양이 나오는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였다. 병충해 문제는 둘째 치고, 나무가 너무 잘 자라서 생각지도 못한 크기가 되어 버리면 그것은 어떻게 손을 쓸 수가 없다. 잘라버리자! 하고 잘랐더니 가지가 더 많이, 더 튼튼하게 자란다. 사초는 엄청나게 번진다. 교외 카페에서 볼 수 있는 바람에 흔들리는 낭만적인 사초의 물결은 전문 가드너들의 노하우와 숙련도의 결과였다. 크기도 엄청 커지고, 씨앗이 무지막지하게 날려서 부지런하게 발아된 어린싹들을 정리하지 않으면 순식간에 풀밭이 된다. 어른이 된 사초들도 부지런히 속아주고, 나눠주지 않으면 눈 뜨고는 못 볼 꼴이 된다. 파 버리면 그만이지만 대형 사초를 파 본 사람들은 안다. 삽과 호미만 가지고 파 낸다는 것은 말로 '그냥 파내!'라고 할 수 없을 정도의 노동이 든다. 꽃은 쉬울까? 씨앗을 땅에 뿌리는 직파는 성공률이 매우 낮다. 볍씨를 직파하다가 모내기 법으로 바꾼 데는 다 이유가 있다. 그리고 꽃이 어찌어찌 핀다고 해도 그 모습이 내가 상상한 그 모습일 확률은 직파한 씨앗이 성공할 확률보다 적다. 새싹들은 잡초와 구분할 수 없다. 씨앗 봉투에 쓰인 파종일은 그저 보편적인 날짜일 뿐 내가 사는 곳의 날씨 상황과 꽃의 생장 조건이 맞지 않으면 역시나 또 실패한다. 그리고 더 심각한 것은 외부에서 온 씨앗들은 이 땅에 살던 주인의 자식들을 이길 수 없다. '잡초의 근성', '잡초의 생명력'을 직접 체험한다면 내 정원을 모네의 그림 속에서 볼 수 있는 지베르니의 풍경처럼 만들고 싶다는 해맑은 이상 따위는 현실에서는 절대로 만날 수 없는 '괴리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정원 노동을 몇 해 경험하고 나서 많은 것을 포기하고 딱 한 가지만 되면 나는 정말 욕심 없다고 선언을 했다. 봄에 개양귀비와 수레국화가 어지럽게 어울려 피어 있는 모습을 딱 한 번만 이라도 내 정원에서 보고 싶어. 마치 유언과 같은 간절한 비장미. 그래서 개양귀비와 수레국화 씨앗을 정말 때려 부었다. 어느 해에는 주먹에 쥐고 넓게 넓게 뿌리기도 했고, 어느 해에는 모종판에 애지중지 키우기도 했다. 다 실패했다, 수레국화만. 한 놈만 성공하면 씨앗이 자연발아 되어서 2,3년이 지나면 풍성해지지 않을까 싶어 이웃의 수레국화를 한 뿌리 입양해서 멀칭에, 지지대에 온갖 정성을 다했는데 결국 한 해만 비실거리다가 무자녀로 세상을 떴다. 그거 한 번 화악 피어 주는 게 뭐 그렇게 힘든 일이라고 남들 집에서는 잘만 피더만. 심지어 도로의 경사면에서는 잡초처럼 우굴거리더만 왜 우리 집은 안 되는 거냐고 원망 섞인 푸념을 매 년 봄마다 재생했다. 개양귀비는 그렇게 잘 크는데 왜 수레국화 너는 뭐가 문제냐며 율 산바카라길에서 발견한 외톨이 수레국화를 째려보기도 여러 번이다.

그러다가 올해 내 생에 마지막 수레국화에 도전을 하기로 결심을 하고 잔디를 다 까낸 경사지에 수레국화 프로젝트를 실시했다. 경사지의 맨 밑단은 홍띠가 자리를 잘 잡아주었으니 흙의 유실은 없을 것이고, 씨앗이 쓸리더라도 홍띠에 걸려 뭐 하나는 살아남겠지. 그래도 씨앗이 없어지면 안 되니까 기대서 클 수 있는 다른 애들은 모종으로 좀 심어 주고, 한동안은 확실히 잡초다 싶은 애들만 뽑고, 혹시나 잡초에 어린싹이 걸려 뽑힐 수 있으니 가위로 자르면서 잡초 관리를 섬세하게 했다. 그 노무 수레국화가 뭐라고. 여기서 슬픈 사실은 AI에게 물은 결과 내 정원에서는 개양귀비와 수레국화가 어울려 필 수 있는 환경은 안 될 거라는 청천벽력 같은 결과를 얻었다는 점이다. 이 지역의 기온과 그간 개양귀비가 피는 시기의 데이터로 봤을 때 수레국화가 성공하더라고 기대한 만큼 풍성하게 어우러지는 모습은 못 볼 거라고 했다. 그.래.도. 일단은 했다. 양으로 밀어붙이고 개중에는 철없는 애들도 있을 테니 남은 욕심까지 탈탈 털어 버리고 나는 오직 개양귀비와 수레국화가 한 프레임 안에만 들어오는 그 풍경만 살아생전 한 번만 보면 된다는 의지로 집요하게 하찮은 프로젝트를 실행했다.

결과는 이러하다.

나의 수레국화는 6월에 피기 시작했고, 7월 장마를 겪고 있다. 생각했던 위치보다는 씨앗들이 더 밀려 내려 갔고, 괭이밥풀과 쑥과 쇠뜨기에 기대서 잘 커 주었다. 당연히 개양귀비는 없다. 대신 한 여름 꽃들과 함께 피어 있는 중이다. 올해는 철을 완전히 빗나갔지만 내년에는 조금은 시기를 맞춰주지 않을까 싶어서 가을에 개양귀비 씨방을 몇 개 털어놓을 생각이다. 이 공간은 올봄부터 시작한 공간이니 함께 있는 다른 아이들도 내년에는 더 풍성해지기를 기대하고 혹여라도 가을에 턴 씨방에서 떨어진 개양귀비 씨앗과 올해 기특하게도 잘 피어 준 수레국화의 자식들이 만나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하는 아주 얕은 기대 정도는 해 본다. 그런데 불안한 것이 AI 왈, 수레국화는 자유롭게 옮겨 다니기 때문에 올해 핀 공간에서 또 필 거라는 기대를 하지 말라고 하던데 역시 나의 해맑은 이상과 혹독한 현실의 괴리는 좁힐 수 없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