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보다 빠르고 나보다 힘이 세다

딸아, 제발 걸어가 주겠니

by차윤




요즘은 아침에 눈을 뜨면 일단 기본값이 피곤이다. 여섯일곱 시간쯤 잤어도 그렇다. 잠이 모자란 것 같지는 않은데, 몸이 쉬었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처음에는 아이를 키우고 있으니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빠르고 힘센 아이를 하루 종일 쫓아다니니 피곤하지 않은 쪽이 오히려 이상할 일이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는 이 피곤이 꼭 육아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이가 든다는 건 이런 걸까.


20, 30대 때도 피곤하기는 했다. 하지만 그때의 피곤은 하루 이틀 푹 자고 나면 사라지는 것이었고, 몸이 다시 돌아온다는 사실을 의심해 본 적이 없었다. 마흔이 되니 몸이 언제나 원래 상태로 돌아오는 것은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이제 피곤은 계속 쌓이고, 쌓인 채로 그냥 같이 살아가고 있다.


나는 몸을 소홀히 하며 살아온 편은 아니다. 오히려 건강을 걱정하고 챙기려고 애써온 쪽에 가깝다. 아플까 미리 걱정했고, 챙겨 먹고 챙겨 움직이려고 노력했다. 나름대로 챙긴다고 챙겨 왔는데도 몸은 예전 같지 않다. 서운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노력만으로는 어쩔 수 없는 영역이 있다는 걸 인정하게 된다.


건강을 걱정하는 사람이라 건강검진은 늘 중요한 일이었는데, 요즘은 받을 때마다 점점 무서워진다. 결과가 나오기 며칠 전부터 마음이 괜히 무겁다. 수치 하나, 소견 한 줄이 나 하나의 문제로 끝나지 않을 것 같아서다. 내 몸이 걱정되는 건지, 엄마의 역할에 대한 걱정인 건지 나도 잘 구분이 되지 않는다.


더 이상 내 몸은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다. 아이를 낳고 가장 크게 달라진 것 중 하나가 이것이다. 예전에는 몸을 혹사해도 그 값을 치르는 사람이 나 하나였다. 지금은 내 컨디션에 따라 하루의 질이 다르다. 아이에게는 엄마가 매일 거기에 있다는 사실이 세상이 안전하다는 근거일 텐데, 나는 그 근거를 건강하게 지켜야 하는 사람이 되었다.




언젠가 아이가 내 얼굴을 들여다보더니 이렇게 물었다.


“엄마 얼굴에 왜 뭐가 났어요?“


아이는 어른처럼 돌려 말하지 않는다. 보이는 대로 묻고, 걱정되는 대로 말한다. 내가 흐린 눈을 하고 지나치던 얼굴의 뾰루지를 이제 막 문장을 배우기 시작한 아이가 먼저 알아봐 준 것이다.


뾰루지만이 아니다. 요즘 거울 속 얼굴은 푸석하고 퀭하다. 피곤이 얼굴에 그대로 내려앉았다. 예전에는 보정 앱 없이도 괜찮았는데, 이제는 뽀샤시를 몇 번 돌려도 그때의 피부 톤은 나오지 않는다.


불과 몇 달 전 사진을 올려다봤다. 그때도 늙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보니 나쁘지 않다. 몇 달 만에 지금이 더 늙었다. 더 예전 사진은 실종신고를 해야 할 수준이다. 성시경은 자신의 옛날 사진을 보며 그 사람은 죽은 사람이라고 했는데, 이제야 알겠다. 사진 속에서 웃던 예전의

나는 이제 없다. 그 자리에는 아이를 키우느라 푸석하고 퀭해진 내가 있다.




아이는 점점 힘이 세지고, 아빠를 닮아서 그런지 달리기도 나보다 훨씬 빠르다. 백 미터를 같이 뛰면 나보다 먼저 들어올 것 같다. 아이를 쫓아가다 보면 나는 늘 몇 걸음 뒤에서 숨을 몰아쉬고 있다.


아이는 내 바람과 늘 반대로 움직인다. 내려서 걸어줬으면 하는 안전한 길에서는 한 걸음 떼고는 안아달라고 팔을 벌린다. 차가 쌩쌩 달리는 도로 옆에서는 망아지처럼 뛰어나간다. 그러니 어디서든 결국 내가 번쩍 안아 올리게 된다. 요즘은 그냥 허리가 나간 것 같다. 아이를 안고 일어설 때마다 몸이 먼저 소리를 낸다.


이 속도를 따라가려면, 이 무게를 지탱하려면, 더더욱 체력이 필요하다.


사소한 다짐을 자주 한다. 오늘은 밀가루를 덜 먹어야지, 물을 좀 더 마셔야지, 조금만 더 걸어야지- 하는 정도의 것들이다. 지켜지지 못한 날이 있더라도, 다음 날 다시 한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난 뒤 한 시간이라도, 그것도 안되면 아이가 자기 전 삼십 분이라도 뛰려고 노력하는 것도 그런 다짐 가운데 하나다.


건강해야겠다는 말은 이제 나를 위한 다짐이면서, 아이에게 하는 약속 같은 것이 되었다. 아이가 어른이 되는 날까지 건강히 곁에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이 몸을 조금 더 오래 믿어줘야 할 텐데, 쉽지는 않다.



여기선 걸어주겠니 딸아, 번쩍 올리면 허리가 저만큼 휜다


뛰지말고 살금살금 걸어가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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