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기불이라서 멈췄어요

다정하고 단정한 아이의 말들

by차윤




두 돌을 지날 즈음이었을까. 단어만 툭툭 던지던 아이의 입에서 갑자기 완성된 문장들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아이의 언어가 폭발하듯 길어지고 깊어지는 과정을 곁에서 지켜보는 일은 신기함을 넘어 감동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그렇게 27개월에 접어든 아이는 이제 자신의 세계를 제법 정갈한 문장으로 조합해 우리에게 건넨다. 하루 종일 아이의 말을 듣고 있다 보면, 내가 무심코 지나치는 세상의 규칙과 다정한 감정들이 선명하게 다시 살아난다.



차에서 창밖을 바라보던 아이가 묻는다. “엄마, 아빠 차가 왜 멈췄어요? 딸기불이라 멈췄어요?” 빨간 신호등을 ‘딸기불’이라고 부르는 무해한 상상력 앞에서, 늘 바쁘게 멈춰서던 도로위는 순간 말랑한 시간으로 변한다.

카시트에 앉으면서도 “카시트 안 하면 꽈당 넘어져요. 카시트 꼭 해야 해요” 하고 카시트 타기 싫다고 울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스스로 안전을 챙기는 모습을 보면 그 조그만 입에서 나오는 바른말들에 마음이 사르르 녹아내린다.




구수한 보리차를 건네면 “엄마, 이거 싫어요! 그냥 물(생수) 주세요” 하고 투명한 물을 찾는 또렷한 취향은 물론, 밥 뭐 먹고 싶어? 하면 “닭다리! 치즈빠빠 주세요!” 하고 이제는 그날의 메뉴도 본인이 정한다.


“엄마, 떡볶이는 왜 어른들만 먹을 수 있어요?” , ”커피는 어른들만 먹는 거예요?” 하고 물을 때도 마찬가지다. 매워서 써서 아가는 못 먹는다는 내 말을, 아이는 어른들만 누릴 수 있는 특권으로 이해한 모양이다. 아이의 시선 속에서 떡볶이와 커피는 어른이 되어야만 도달할 수 있는 음식일지도 모르겠다.




아이는 자기 내면도 꽤 정직하게 문장으로 풀어낸다. 큰 소리가 나면 “연우가 큰 소리 나서 깜짝 놀랐어요. 조금 무서웠어” 하고, 놀이터에서는 “엄마, 연우 집에 가기 싫어요. 더 놀고 싶어요” 하고 아쉬움을 숨김없이 고백한다. 맛있는 음식을 보고 “엄마, 연우가 한 번 먹어봐도 돼요?” 하고 허락을 구하는 조심스러움이나, 잠들기 전 “엄마, 엄지공주 얘기해 줘요” 하고 낮게 읊조리는 요구까지. 이제 나는 아이의 마음을 마구 추측하던 사람에서, 아이가 건네는 진짜 이야기를 가만히 듣는 사람으로 바뀌어가고 있다.



그중에서도 내 마음을 가장 깊게 흔들었던 건, 아이가 무심결에 던진 한마디였다.


“엄마, 연우가 너무 행복해서 울었어요”


스물일곱 달을 산 아이의 입에서 ‘행복’이라는 단어와 ‘눈물’이라는 감정이 나란히 놓일 수 있었던 데는 사실 이유가 있었다. 종종 아이를 가만히 바라보다 가슴 가득 차오르는 감사함에 눈시울이 붉어질 때가 있는데 그때마다 왜 우느냐고 걱정스레 묻던 아이에게 “엄마가 너무 행복해서 눈물이 나는 거야”하고 답해주었었다. 아이는 내가 흘린 눈물의 의미와 그 안의 온기를 마음에 가만히 품어두었다가, 이렇게 자기 삶의 문장으로 되돌려준 것이었다.




아이는 그저 단어를 배우고 있는 게 아니었다. 부모가 자신을 향해 보여준 마음과 언어를 그대로 흡수하며 세상을 사랑하는 법을 익혀가는 중이었다. 아이의 언어는 단순히 뜻을 전달하는 도구를 넘어, 자라느라 애쓰는 스스로의 마음을 다독이고 부모인 우리에게 우리가 건넨 사랑이 결코 사라지지 않았음을 증명해 주는 가장 정성스러운 답장 같았다.


매일 밤, 아이가 건넨 다정하고 단정한 말들을 하나씩 곱씹으며 잠에 든다. 아이가 자랄수록 문장은 더 길어지고 세련되어지겠지만, 세상에 대한 호기심과 사랑으로 가득 찬 지금의 이 문장들을 오래도록 잊지 않고 마음에 새겨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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