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사람인 줄 모르고 결혼했다

육아로 발견한 서로의 밑천

by차윤




‘진짜 진심 이런 사람인 줄 모르고 결혼함‘


남편과 무슨 일로 싸웠는지 기억도 안나는 어느 날. 아이를 재우고 거실의 불을 모두 끈 뒤 육아로 정신없는 절친에게 짧은 카톡을 보냈다. 화면 너머로 ‘ㅋㅋㅋㅋ 맞아 나도 진심 공감임‘이라고 칼답이 온다.




연애와 결혼을 합쳐 9년이라는 시간 동안, 우리는 줄곧 주변에서 이상적인 부부라 불려 왔다. 유머코드나 취향이 잘 맞아 늘 웃음이 끊이지 않는 친구 같았고, 눈빛만 봐도 서로의 다음 대화를 알아채는 최고의 티키타카 파트너였다. 그러면서도 서로의 선과 영역은 배려할 줄 아는 편안한 관계였다. 이 사람과 함께라면 삶이 어떤 형상으로 흘러가든 늘 즐겁고 편안할 거라 믿었다. 9년이라는 시간 동안 믿었던 서로의 모습은 그 단단한 합을 증명하기에 충분한 근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이가 태어나고, 우리의 삶에 '수면 부족' ‘극도의 피로' ‘체력 이슈’라는 복합적인 변수가 끼어들면서 오랫동안 공들여 쌓아 올린 평화의 성벽에는 낯선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마흔의 육아는 정말이지 젊은 날의 피로와는 완전히 결이 다른 종류의 것이었다.


물론 내내 다투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서로에게 마음의 여유가 있고 일상이 안정궤도에 있을 때는 언제 그랬냐는 듯 예전처럼 킥킥거리며 잘 통하는 다정한 부부로 돌아온다. 문제는 일상의 균형이 무너질 때다. 남편의 업무가 극도로 바빠지거나 몸이 아파 내가 육아와 살림을 오롯이 전담해야 하는 상황이 오면, 내 안의 예민함이 뾰족하게 고개를 든다. 온종일 혼자 아이를 돌보며 체력과 마음의 바닥을 드러낼 때, 머리로는 백번이고 상황을 이해하면서도 가슴에서는 서운함이 먼저 번져나갔다.


대부분의 시비는 내가 먼저 걸었다. 남편 역시 자신이 서 있는 자리에서 최선의 최선을 다하고 있음을 알면서도, 내 고단함을 먼저 인정받고 싶은 조바심에 날 선 말들을 건네곤 했다.




다행히 우리는 아이 앞에서는 거의 다투지 않는다. 어릴 적 부모님이 싸우는 모습을 단 한 번도 본 적 없다는 남편은, 아이 앞에서는 무섭도록 다정하고 이성적인 태도를 유지한다. 내 안에서 뾰족한 가시가 돋아날 때도 남편은 아이의 세계를 지키기 위해 끝까지 침착하게 날을 눌러 담았다. 하지만 아이가 무사히 잠들고, 어둠이 깔린 거실에 단둘만 남게 되는 순간 오고 가던 날 선 말들과 서운함의 냉랭함은 어쩔 수 없었다.


세상 가장 무해한 얼굴로 잠든 아이를 내려다볼 때면 밀려오는 현타의 무게는 더없이 무거웠다. 내 인생에서 가장 큰 행복이자 빛인 아이를 위해 전력을 다하고 있으면서도, 아이가 잠든 뒤에는 서로의 밑천을 드러내며 차가운 침묵을 주고받고 있다는 사실이 스스로를 한없이 자괴감에 빠뜨리곤 했다. 타인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 꽤나 숙련되었다고 믿었던 나조차, 내 밑천과 남편의 밑천이 날것으로 부딪히는 순간 앞에서는 한없이 옹졸해지곤 했다. 다정하던 그 사람은 어디로 갔을까, 현타와 서운함이 겹겹이 쌓여갔다.




하지만 밤이 깊어 차가워진 거실에 가만히 앉아 마음의 번뇌를 가라앉히다 보면, 끝내 내 곁을 지키고 있는 건 언제나 남편이었다. 부부는 어쩌면 서로의 가장 근사한 겉모습과 유쾌한 합을 나누는 단계를 지나, 가장 지치고 바닥이 드러난 모습까지 가만히 품어주는 사이로 나아가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9년 동안 내가 보았던 것은 서로의 다정한 표면이었고, 육아라는 전쟁터를 지나며 비로소 서로의 깊은 바닥을 목격하고 있는 셈이다.


아이가 잠들고 적막만 남은 거실, 남편은 굳이 내 기분을 풀려 애쓰거나 거창한 화해의 말을 건네지 않는다. 그저 과자 한 봉지를 꺼내 식탁 중간에 쓱 밀어두거나, 아이의 장난감을 조용히 치우며 무던히 앉아있을 뿐이다.


식탁에 앉아 어두운 거실 속 남편의 얼굴을 가만히 볼 때면 가끔은 안쓰럽다. 연애할 때의 반짝이던 생기는 어디 가고, 왜 이렇게 푹 삭아버린 건지. 속상하고 서글프다.남편도 나와 같은 생각이겠지.


묵묵한 기척과 무심하게 챙겨주는 손길 속에서, 낮 동안 쌓였던 차가운 공기가 조금은 녹아내린다. 내가 먼저 건넨 칼날 같은 말에도 끝내 침묵의 다정함으로 답해주는 사람. 연애 시절의 설렘이나 '이상적인 부부'라는 매끄러운 타이틀은 조금 마모되었을지 몰라도, 우리는 서로의 바닥을 확인하며 한 아이의 세계를 함께 받쳐 들고 버티는 단단한 삶의 동지가 되어가고 있다.




친구에게는 ‘이런 사람인 줄 모르고 결혼했다‘ 고 투덜거렸지만, 다정하고 단단하게 우리 가족을 지켜주는 남편이 있었기에 나 역시 이 육아의 터널을 이만큼이나 지나올 수 있지 않았을까.


내가 가장 서툴고 뾰족해지는 순간에도 중심을 잡아주고, 우리 아이의 세계를 단단하게 지켜주는 사람이 그래도 이 사람이라서, 마음 깊이 고맙고 또 다행이다.


실종신고 해야할 듯. 어디갔니 싱싱했던 저 두 사람. 무려 11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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