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0년, 프로이센이 프랑스 나폴레옹에게 참패해 엘베강 서쪽 땅을 모두 빼앗겼다. 전쟁으로 기반 시설이 부서졌고, 나라의 절반이 프랑스 손에 넘어갔다. 그런 때에 빌헬름 폰 훔볼트는 군대나 공장도 아닌 베를린 대학을 세웠다. 그가 세운 원칙은 국가는 돈을 대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무엇을 연구할지는 연구자 스스로 정한다. 당장 쓸모가 있는지, 돈이 되는지는 묻지 않는다. 그는 사람이란 그 자체로 완성된 인간이어야, 비로소 훌륭한 기술자도 상인도 될 수 있다고 보았다. 쓸모 있는 인간이 아니라 자유로운 인간에게 쓸모는 저절로 따라온다는 것이다. 열매를 얻으려 애를 쓰는 것은 의미가 없다, 나무를 키우면 열매는 저절로 열린다.
당시 프랑스는 국가가 필요한 인재를 국가가 만드는 학교를 만들었다. 바로 국가 중심·엘리트·실무 교육의 ‘에콜(그랑제콜)’ 제도이다. 훔볼트는 침략자의 방식에 거부감이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나라를 점령한 제국의 방식과 반대로 간 것이다. 그 자유는 상상할 수 없는 열매를 맺었다.
19세기 독일은 근대 과학의 이론적 토대를 세웠고, 이 대학은 ‘모든 근대 대학의 어머니’가 되었다. 열역학도, 전자기학도, 현대 화학도 거기서 나왔다. 그리고 독일은 그 열매로 제국이 되었다. 국가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연구가 훗날 가장 국가주의적인 대학이 되어 제국의 지적 토대를 놓았다. 국가에 손을 떼라고 말한 훔볼트 자신은 프로이센의 장관이자 외교관, 국가 그 자체였다. 대학 총장 자리에는 1년 남짓 앉았다가 외교 무대로 떠났다. 오늘날 독일에서는 '훔볼트 신화'라는 말로 그 이념의 죽음을 이야기한다.
국가는 지원하되, 간섭하지 마라. 그 자유가 제국에 헌신할 테니.
독일의 원칙을 물려받은 것은 미국이었다.
19세기 후반, 독일에서 공부한 미국인들이 그 모델을 들여왔다. 존스 홉킨스가 미국 최초의 연구중심대학으로 세워졌고, 하버드와 버클리가 세계의 중심이 되었다. 그리고 미국은 한 걸음 더 나아갔다. 미국이 자유로운 연구에 개입하는 방식이다.
미국의 국방고등연구계획국(Defense Advanced Research Projects Agency), DARPA는 연구 과제로 무엇을 어떻게 만들라고 지정하지 않는다. 우리는 이 문제를 풀고 싶다, 방법은 당신들이 가져오라. 해법은 열어둔다. 그렇게 나온 기술의 소유권은 개발자에게 주고, 정부는 필요한 만큼 쓰기만 한다. 연구 결과를 국가가 독차지하지 않고 시장으로 흘려보낸다.
DARPA에는 이런 말이 있다고 한다. 연구한 기술이 너무 빨리 상용화되면, 그 과제는 실패한 것이다. 쉬운 것을 연구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실패를 전제로 도전적인 문제를 내고, 안 되는 것은 중간에 끊는다. 성공률이 높은 것을 부끄러워한다. 거기서 인터넷이 나왔고, GPS가 나왔다. 미국은 그 열매로 더 큰 제국이 되었다. 인터넷, GPS처럼 세상을 하나로 연결한 그 기술들은 국방부의 이름을 달고 태어났다. 과제를 자유롭게 풀게 했더니, 그 자유가 미국을 패권의 자리에 올려놓았다. 문제만 냈는데, 그 답은 국가를 패권국으로 키웠다.
우리나라도 그들처럼 연구개발을 시작했다. 심지어 가장 큰 제국과 함께.
1965년 5월 박정희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했을 때 존슨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한국에 종합 연구기관을 설립하기로 합의했다. 이것은 당시 한국의 베트남 파병으로 흘린, 피의 대가라는 성격이 있었다. 그 합의에 따라 미국 국제개발처(USAID)가 지원하고, 미국의 바텔기념연구소(Battelle Memorial Institute)가 설립을 자문·기획했다. 초기 운영자금의 상당 부분도 미국이 원조했다. 그 연구기관은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 Korea Institute of Science and Technology)였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의 전신이다.
하지만 우리는 제국보다 더 제국적이다. 삼국통일 이래 천 년을 이어온 중앙집권의 나라, 무슨 일만 터지면 “정부는 뭐 하고 있었나”라는 말부터 나오는 그 뿌리 깊은 나무에서, 연구개발도 정부가 나서면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을 리가 없다. 정부가 주인이 되었으니, 성과를 내놔야 한다. 정부가 하는 일은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 추진하는 R&D의 성공률은 최근 5년간 한 해도 빠짐없이 99%를 넘었다. 2013년에는 100%였다. 그해엔 국가가 돈을 댄 연구 가운데 실패한 것이 단 하나도 없었다. 천재적 지능을 갖고, 잠을 아끼며 몰두하는 연구자들만 있으니 당연히 실패할 리가 없다. 백 번을 시도해 백 번을 성공하는 나라, 이런 나라가 또 어디 있겠는가.
다만 한 가지 아쉬운 것은, 미국이나 독일 같은 나라는 연구개발의 성공률을 아예 측정하지 않기 때문에 비교할 수 없다는 것이다. 아마도 분명히, 실패가 워낙 많아서 차마 숫자로 내놓지 못하는 것이겠지. 그러면서 자신들은 연구에서 성공과 실패를 나누지 않는다며 잘난 체 하는 것이 확실하다. 우리처럼 99%를, 어떤 해는 100%를 떳떳이 공개할 자신감이 그들에게는 없는 것이다.
여기에 동의하지 못하는 인간들은 될 게 뻔한 연구 과제만 골랐거나, 안 된 것을 됐다고 발표했거나. 둘 다일 거라고 하겠지. 연구자에게 실패는 다음 과제의 탈락을 뜻하기 때문에 그럴 거라고. 그러니 안 되는 연구는 되는 것처럼 마무리하고, 될 것 같은 연구만 신청한다. 성공률 99%는 자랑할 게 아니라고. 열매만 보지 말고 나무를 키우자고 하겠지.
그러면서 연구는 99%가 성공하는데, 그 기술이 시장에서 팔리는 사업화 성공률은 절반을 넘지 못한다며 그럴듯한 통계를 들이민다. 하지만 내가 그들의 논리를 깨트릴 통계를 확인했다. 연구 성과가 기술로 인정받는 단계는 95%지만, 기업으로 이전되는 단계는 40%, 제품이 되는 단계는 30%, 시장에서 수익을 내는 단계는 30%로 떨어진다. 투자자의 눈으로 보면 마지막은 20%까지 내려간다. 우리도 미국처럼, 독일처럼 실패에 투자한다. 아니 우리는 그들보다 더 지원한다. 아예 쓸모없는 연구개발에도 돈을 쏟으니까, 우리가 독일, 미국을 이기고 있다.
그럼에도 그들은 또 반박할 것이다. 신약도 반도체도 열매를 맺기까지 5년, 10년이 걸린다. 그런데 성과는 과제가 끝나는 해에 집계된다. 10년 뒤에 열릴 나무를, 심은 지 3년째 되는 날 몇 개 열렸는지 세고 있는 꼴이다. 응용연구는 시장의 시간을 기다리지 못하고, 기초연구는 과학의 시간을 기다리지 못한다. 그렇게 말할 것이다.
나는 여기에도 반박할 수 있다. 당신들이 말하는 연구는 기업에서 싹이 트고 시장에서 맺는 열매라 그런 것이라고. 우리 연구과제는 정부가 전문가들과 만들었고, 공모를 통해 공정하게 선정되었다. 누가 연구계획서를 잘 쓰는지를 엄정하게 평가했고, 심지어 정부와 함께 과제를 만든 전문가들이 그 연구를 하고 있다. 연구 기간이 짧은 것도 나는 이렇게 반박한다. 그것은 아무 문제가 아니라고. 왜냐하면 우리는 연구개발 사업은 한번 가져간 사람이 실적을 쌓아 다음에도 가져가니까 10년, 20년의 장기간 투자인 셈이다. 기간은 아무런 문제가 아니다.
내 논리적인 반박에 수긍하면 좋겠지만, 그럴 사람들이 아니다. 그래서 정부도 2019년부터 성공과 실패로 평가하지 않겠다고 했고, 2026년에도 등급제를 폐지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실제 시행은 2027년으로 미뤄두었다. 성공률이 높은 것이 문제라고 지적하면, 성공률이라는 눈금 자체를 없애려는 유연성도 우리는 있다. 뭐 없애거나 말거나 무슨 의미가 있겠나.
또 혹자는 이렇게 비판한다. 한국은 돈만 쏟아붓지 질적 성과가 낮다고. 세계가 주목하는 논문, 그러니까 피인용 상위 10퍼센트에 드는 논문은 세계 8위에 그친다고, 돈값을 못 한다는 것이다. 나는 이 옹졸한 비판에 동의할 수 없다. 우리나라의 연구개발비는 GDP 대비 5.13퍼센트로, 이스라엘에 이어 세계 2위다. 인구 천 명당 연구원 수는 세계 1위이고, 2000년 이후 연구개발비 증가 속도는 미국의 두 배, 독일의 세 배가 넘는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은 비중을 투자하는 나라에 대고 성과가 부족하다니, 이런 배은망덕이 어디 있는가. 그것이야말로 성적 지상주의다. 결과보다는 우리가 얼마나 열심히 투자하고 노력하는지가 중요하다. 우리 아이들이 학원에, 과외에, 하루 서너 시간만 자고, 휴일도 없이 공부하는데 성적 안 좋다고 나무라면 쓰겠는가. 대학만 가면 신나게 놀 거라고 말해줘도 시원찮을 판에.
또 이런 비판도 있다. 이렇게 투자하고도 과학 연구 관련 노벨상이 한 명도 없다고. 노벨상에는 여섯 부문이 있는데, 그중 연구와 직결된 것은 물리학상, 화학상, 생리의학상 셋이다. 우리는 평화상도 받았고 문학상도 받았지만, 이 과학 세 부문에서는 지금껏 단 한 명도 나오지 못했다. 일본은 스물다섯, 중국은 셋, 인도도 둘, 파키스탄도 하나 받았는데 우리는 없다. 세계에서 연구비를 두 번째로 많이 쓰고, 연구원이 가장 빽빽하고, 과제 성공률이 백 번에 아흔아홉 번인 나라가, 어째서 과학상은 0이냐고.
이것도 모르는 소리다. 우리도 세계가 인정한 이그노벨상을 무려 다섯 명이나 받았다. 향기 나는 양복, 커피를 쏟지 않고 걷는 법, 항문 모양으로 사람을 알아보는 스마트 변기.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통일교 교주 문선명 씨는 수천 쌍의 대규모 합동 결혼을 성사한 공로로 경제학상을 받았고, 다미선교회 이장림 목사는 1992년 휴거를 예언했다가 빗나간 것을 비롯해 인류 종말의 날을 매번 틀리게 예측한 공로로 수학상까지 받았다. 우리가 얼마나 창의적이고 다재다능한 민족인가. 합동 결혼과 종말 예측까지 연구의 영역으로 삼는 나라가 또 어디 있겠는가.
다만 한 가지 아쉬운 것이 있다. 그 다섯 중 진짜 연구로 받은 이들은, 하나같이 국가가 낸 과제 바깥에 있었다는 점이다. 유학 간 학생이 남의 나라에서, 아무도 관심 주지 않는 것을 혼자 연구를 했다. 커피잔 연구를 한 이는 학교 선생님들조차 시큰둥했지만 오기로 끝까지 했다고 한다. 성공률 99퍼센트짜리 우리 과제 목록 어디에도, 커피잔이나 변기 같은 것은 없었다.
어쨌든 독일도 미국도 연구의 열매로 제국이 되었다. 이제는 우리나라 차례다. 우리도 그 열매를 원한다. 다만 그들은 열매를 얻으려 나무를 길렀지만, 우리는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나무보다는 열매에 집중하고 있다. 그 나무가 어디에 살아 있는지가 조금 걱정되기는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