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먼 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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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우리 정부 연구개발 예산이 35조 3천억 원, 창업을 지원하는 돈은 3조 4,645억 원이다. 역대 최대다. 여기에 국가가 지자체와 민간에 뿌리는 국고보조금이 또 수조다. 정부가 공모와 심사로 나눠주는 돈을 다 합치면 한 해 수십조 원에 이른다.

연구개발 자금을 받기 위해 연구과제의 이름을 바꿔가며 비슷한 개발 과제를 만들고, 신규 사업자등록을 해가며, 창업자금을 받는다. 정부 투자자금을 확보하면, 여러 펀드를 통해 추가 투자금이 확보된다. 그래서 정부 지원 사업을 받았던 사람들, 전문 꾼들과 일부 사람들은 정부 지원금을 이렇게 부른다.

눈먼 돈.


우리는 이 말을 신문 기사 제목이나 정부 문서에도 많이 보고 들었다. 공모를 통해 따오는 돈은 따로 임자가 없다. 먼저 따내는 사람이 주인이다. 그래서 제안서를 쓰고 발표를 해서, 선정된다. 이 과정을 거치니 지원이라기보단 따내기 위해 노력한 대가처럼 생각한다. 눈먼 돈은 일단 따오면 자기 돈처럼 느낀다. 지원 사업 지침에 ‘이렇게, 저렇게만 쓰라’고 하면 이해할 수 없다. 내가 따온 내 돈을 왜 이래라저래라 하는지. 심지어 증빙서류까지 달라고 한다. 눈먼 돈에 왜 자꾸 감시를 붙이는지.


올해 반년 남짓 지나서 적발된 보조금 부정수급은 1,854억 원이다. 이미 개발한 제품을 새로 개발하는 것처럼 계획서를 꾸미고, 허위 인력을 등록하고, 가짜 정산 서류를 꾸며 타낸 돈이다. 한 업체는 세 기관에서 일곱 개 과제를 받아 34억을 그렇게 빼돌리다 들통났다.


그런데 이렇게 잡힌 이들은 사실 서툴러서 눈에 띈 것인지도 모른다. 눈먼 돈이라고 부르지 눈이 없는 돈이라고 하지 않는다. 눈이 멀어서 그렇지 눈은 있다. 그 사각을 아는 사람들이나 돼야 눈먼 돈이라 부를 수 있다. 부정수급은 눈먼 돈을 잘 모르는 하수들이나 쓰다가 들통나는 가장 어설픈 사용법이다. 능숙한 이들은 법을 어기지 않는다.


아참, 내가 이런 얘기를 하는 이유는 지원금의 낭비를 막아야 한다거나, 개혁이 필요하다고 말하고 싶어서는 아니다. 내가 아나키스트나 정의로운 비판자라서 하는 말이 아니다. 단지 부러워서다. 이 수십조 원을 전 국민에게 나눠줘도 백만 원씩은 줄 수 있을 것 같은데, 더구나 전 국민이 지원 사업을 하는 것도 아닌데, 난 한 푼도 받지 못하니 부러워서 하는 말이다. 왜 난 그 눈먼 돈을 챙길 능력이 없는 것일까. 내 무능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니, 관계자 여러분들이 이런 말을 하는 나를 욕하지는 않았으면 한다.


그런데 그 눈먼 돈은 어디 있을까? 정부 지원금은 사업으로 나눠준다. 그 사업은 통합공고 기준으로 508개, 운영하는 기관이 111개다. 10년 전만 해도 이 통합공고에는 6개 기관에 65개 사업이 있었다. 등록이 늘어난 것이기도 하겠지만 10년 만에 기관은 열여덟 배, 사업은 여덟 배로 불었다.


그런데 111개도 사실은 적게 센 숫자이다. 이 숫자는 돈을 편성한 주체, 그러니까 15개 중앙부처와 96개 지방자치단체를 센 것이기 때문이다. 각종 기관과 단체의 수가 얼마나 될지 파악해 보려다 수백 개인지 수천 개인지 알 수조차 없어 포기했다. 다만, 중요한 것은 정작 그 지원금을 기업이나 연구자에게 나눠주는 기관이 따로 있다는 사실이다. 부처는 정바카라만 정하고 집행은 전담 기관에 맡긴다. 무슨 무슨 진흥원, 무슨 센터, 뭔 파크 등 전국에 수백 개의 기관이 있다. 또 전담 기관은 다른 기관에 일을 위탁한다. 자금이 부처에서 나와 전담 기관을 거치고 재위탁 기관을 지나서야 받는 기업과 기관에 닿는다.


어디서 많이 본 하청에 재하청에 하청 구조다. 국회예산정바카라처가 이 구조를 확인한 적이 있다. 한해 141개 공공기관에 맡긴 정부 위탁사업비가 12조 원이었다. 그 기관은 수수료로 평균 3.7퍼센트, 많게는 16퍼센트를 뗀다. 거기서 다른 기관에 다시 넘기면 수수료가 발생하니 딱 재하청 구조다. 수수료 외에도 인건비, 사무관리비도 든다. 이 지원금을 받는 기업은 좋아하겠지만, 산업 발전에 이바지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게다가 하청 구조를 타고 내려가는 동안 지원금은 계속 줄어들기까지 한다.


어쩌면 이 수많은 기관을 이용하는 것은 눈먼 돈에 눈을 달아주려는 노력인지도 모른다. 공정한 평가, 자격요건과 서류 검토, 증빙자료와 확인, 민원과 이의신청 등 백 개의 눈을 부릅떴다. 그래서 부정수급이라도 적발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또한 그런 문제가 생기면 정부는 대바카라을 내놓는다. 점검 대상을 늘리고, 새로운 관리위원회나 통합 감시 시스템도 만든다. 그렇게 지원 사업에는 눈이 백 개 달린 아르고스가 되었지만, 결국 헤르메스의 제안서에 잠이 들지도 모른다.


관리기관 얘기가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공공기관이나 협단체만 있는 것도 아니다. 대학마다 산학협력단이 있어 정부 과제를 받아 관리하고, 창업보육센터가 있어 창업 기업을 입주와 지원금으로 보육하고, 기술지주회사가 있어 대학 기술로 자회사를 세워 또 지원을 받는다. 그 많은 대학 하나, 하나도 지원금을 받는 창구를 셋 이상을 갖추고 있다.


부처와 지자체와 전담 기관과 재위탁 기관과 산학협력단과 보육센터와 기술지주. 주체는 이토록 다양하다. 이것은 시장의 하청 구조뿐만 아니라, 심지어 정부가 육성하고 싶어 하는 산업 생태계를 너무나 닮았다. 생태계의 힘은 다양성에서 온다. 이 얼마나 엄청난 생태계인가. 다만, 어리석은 내가 보기엔 이렇게 활성화된 생태계에 한 가지 걱정이 있다. 바로 생산자는 없고, 분배자와 감시자만 한가득인 것 같다는 사실이다. 다양성이 아니고 중복 아닌가 하는 걱정은 나처럼 뭘 모르고, 그 안에 들지 못하는 사람의 비난일 뿐이겠지만.


생태계 육성을 부르짖더니 만들긴 한 것 같다. 정부 지원 생태계. 그런데 지원은 마중물이고 키우고 싶은 것은 산업이 아니었던가?


애초에 이 지원은 마중물로 시작했다. 1986년, 정부는 창업을 지원하는 법을 처음 만들었다. 지원은 이미 실적이 있는 기업에 유리하니, 이제 막 시작하는 창업자에게도 길을 열어주자는 것이었다. 새로 시작하는 창업에 마중물을 부어주는 것, 그것은 좋은 일이다. 문제는 그 정도에 그치지 않았다는 데 있다. 게다가 막 시작하는 창업자 외에, 창업을 준비하는 예비창업자, 폐업하고 재창업하는 사람, 엑시트 하고 또 창업하는 연쇄 창업자도 있다. 청년 창업자, 어르신 창업자, 여성창업자, 1인 창업자. 지원해야 할 대상과 이유는 끝없이 늘어났다.


그런데 마중물은 펌프에서 물이 나오게 하려고 붓는 물이다. 물이 나오기 시작하면 스스로 물을 쏟아내게 된다. 계속 붓는다면 그것은 마중물이 아니라 그냥 물을 대주는 것이다. 40년이 지나는 동안, 우리는 스스로 물을 뿜는 펌프를 확인하는 대신 붓는 물의 양과 펌프를 늘렸다. 508개의 꼭지가 그 결과다.


이렇게 정부 지원 생태계에는 다양성이 확보되었다. 그러나 이에 비해 진짜 산업 생태계인 시장은 오히려 단순해 보인다. 기업과 고객, 투자자. 이 셋뿐이다. 그런데 실제로 정부 지원은 생태계가 되어서도 안 되고, 될 수도 없다. 시장의 다양함은 서로 다른 기업들이 서로 다른 고객을 놓고 경쟁하고 공존하는 다양함이다. 각자 다른 자리에서 다른 먹이를 먹는, 진짜 생태계의 다양함이다. 환경과 생산자, 소비자, 분해자가 다양하게 생겨나고 얽히며 살아가는 다양성. 정부 지원은 그 다양성이 아닌 중복성을 키우며, 북적거리는 사람들 사이에서 성공이라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 모습을 보며 떠오르는 상상되는 풍경은 메마른 저수지다. 말라버린 저수지에 물을 채우려고 수도꼭지를 만들었다. 연구개발이라는 꼭지, 창업지원이라는 꼭지, 기업 육성이라는 꼭지. 이 마중물로 저수지를 채우려 했지만 되지 않자, 508개의 수도꼭지를 만들었고, 저수지에 물이 없어 목마른 사람들이 몰려들어 수도꼭지의 물을 마시기 시작했다. 서로 그 물을 마시겠다고 난장판이 벌어지자, 사람 중에 여러 명을 뽑아 사람들을 줄 세우기 시작했다. 새치기하는 사람들이 생겨 관리자를 늘렸다. 공평하게 물을 마시기 위해 마실 양도 정하고 어린이와 병든 사람들을 위한 줄은 따로 세웠다. 너무나 공평했다. 저수지는 말라갈지라도. 그 물을 맛보지 못한 나에게는 이것이 연구개발과 창업지원과 기업 육성이라는 저수지 옆 수돗가 풍경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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