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이 헐벗고 굶주리던 1960~70년대.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산업을 키우고 싶었다. 1950년대에는 미국의 원조를 받았다. 무려 29억 7,500만 달러. 당시 우리 최고 수출액이 4,000만 달러였던 걸 생각하면 엄청난 규모다. 미국은 빈곤 퇴치라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냉전 시대 공산주의를 막고자 경제원조를 했다. 이 돈은 군사와 안보의 틀에 있었다. 그래서 이후 베트남 전쟁에서 우리 젊은이들의 피로 갚기도 했다. 그리고 원조가 줄어들자 차관으로 돈을 빌렸다. 일제 강점기의 앙금이 가시기도 전에 한일 국교 정상화를 하고 돈을 빌렸다.
목숨값으로 얻은 돈, 자존심을 판 빌린 돈, 그리고 국민이 저축한 돈을 정부가 동원했다. 유망 산업을 정하고, 기업을 골라 정바카라자금과 세제 혜택, 수출을 지원했다. 중화학공업과 오늘날의 대기업이 그 속에서 자랐다. 이것이 한강의 기적이다.
이 돈은 빚이었다. 목숨값과 동원한 돈은 몰라도, 차관은 갚기 위해서라도 성과가 필요했다. 수출로 갚아야 했고, 그러기 위해서 저임금 노동자들의 피땀으로 가격경쟁을 해서 이겼다. 이것이 우리의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의 이야기다. 그리고 정부는 여기서 하나의 학습을 했다. 바로 기업을 키우는 것이 곧 경제성장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성공의 공식과 습관처럼 우리 뇌리에 박혔다.
그리고 대기업 중심의 경제성장은 낙수효과가 있느냐 없느냐 하며 비판을 받았고, 모든 국민이 대기업에서 일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때쯤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벤처 열풍이 불었다. 대기업을 키우던 정부는 1990년대, 작은 기업들이 새로운 기술로 세상을 바꾸고, 그 기업들이 미국 경제를 다시 일으키는 모습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닷컴이라는 말이 유행했고, 차고에서 시작한 회사가 몇 년 만에 대기업이 되었다. 언젠가 우리나라 창업보육센터의 실내장식을 차고 모양으로 한 곳을 본 적도 있다. 차고에서 대기업이 나오자 우리는 창업 공간을 차고처럼 꾸몄다. 차고 넘치는 임대 공간을 멀리하고 차고같은 센터를 만들어 창업 기업을 욱여넣는다. 해외에서 폐업으로 문 닫은 공장 건물을 창업 공간으로 활용하자, 우리도 많은 폐공장을 찾아 창업센터로 만들기도 했다.
우리 정부는 실리콘밸리의 벤처 열풍이 미국 정부가 아니라, 시장이 만들었다는 것은 신경 쓰지 않는다. 대기업도 다 키웠는데 벤처기업쯤이야. 또 위험을 감수하는 투자자, 실패해도 다시 도전하는 문화, 대학의 기술이 자유롭게 창업으로 흐르는 체계도 상관하지 않는다. 우리나라는, 위험을 감수하는 투자자는 감수하면 되고, 실패하면 다시 도전하는 정부, 기술 없이도 자유롭게 창업하는 지원금 체계가 있으니 대충 비슷하면 됐다.
우리 나라는 1997년 8월 28일, 벤처기업육성에 관한 특별조치법을 만들었다. 정부가 벤처기업을 골라 키우겠다는 법이다. 벤처기업을 정부가 인증하고, 인증받은 기업에 정바카라자금과 세제 혜택을 주고, 코스닥이라는 무대에 올려준다. 원래 이 법은 한시법이었다. 그런데 이 법은 2007년에 한 번, 2016년에 또 한 번 연장됐고, 2024년에는 아예 상시법이 되었다. 누구의 돈인지 모르겠으나 돈을 주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나 쉽게 포기하지 않고 계속 주고받기로 했다.
미국의 꽃은 토양에서 피었지만, 한국의 꽃은 화분에서 피었다. 투자 문화를 바꾸고, 실패를 용인하고, 시장에서 기업이 스스로 자라는 일은 오래 걸린다. 그러면 정부의 지원 성과도 보이지 않는다. 더구나 우리는 대기업을 길러냈던 훨씬 쉬운 방법을 알고 있다. 바로 정부가 기업을 선정해서 직접 돈을 주는 것이다.
뭐 미국의 벤처 열풍을 따라 하려고만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벤처기업 육성법이 만들어지고 석 달쯤 뒤, 외환위기가 닥쳤다. 대기업이 줄줄이 무너지자, 대기업에 의존하던 경제 구조가 위험하다는 것이 드러났고, 새로운 성장동력과 새로운 일자리가 필요해지기도 한 것이다. 그래서 더더욱 정부가 기업을 골라 키우는 방식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화분에서 꽃이 자라면 토양에 옮겨심으려던 계획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옮겨심기보다 화분을 늘리는 것을 선택했다. 토양을 일구자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화분 개수를 더 늘리고, 그 중에 말라죽은 식물은 버리고, 살아남은 식물만 키우면 된다. 그것이 집안에 화초가 가득하게 하는 쉬운 방법이다. 기업 육성의 방식이 아니라 육성의 대상이 문제다. 그래서 대기업 대신 벤처를 골랐다. 대형 화분을 작은 화분 여러 개로.
정바카라자금이 풀리고, 벤처인증 제도가 돌아갔다. 코스닥이 달아올랐다. 1998년 말, 7조 9,000억 원이던 코스닥 시가총액이 1년 만에 100조 원을 돌파했다. 코스닥지수는 1999년 연초 대비 240% 이상 올라 2000년 3월 2,834까지 치솟았다. 강남 테헤란로에는 벤처기업이 빼곡히 들어차 '테헤란밸리'라고 불렸다. 그리고 스타 기업인도 등장했다. 아주 거대하고 비싼 황금의 게이트가 열리자, 스타 기업인들은 게이트를 열다 못해 터뜨렸다.
2000년 10월, 정현준 게이트가 터졌다. 한국디지털라인이라는 벤처기업을 이끌던 정현준은 상호신용금고를 손에 넣고, 그 금고에서 2,300억 원대를 불법으로 대출받아 횡령했다. 사설 펀드로 투자자를 속이기도 했다. 벤처기업은 기술력이 생명인데, 금융기관을 속이는 사기 기술도 벤처 기술이었다. 김대중 대통령조차 그를 기업을 사들여 재벌 흉내를 내는 타락상이라고 말했다. 그는 겨우 징역 9년을 선고받았다. 2,300억 원이면 월급 400만 원의 온라인 게임인이 4,790년간 벌어야 하는 돈이다. 내가 판사였다면 징역 4,790년을 판결했을 것이다.
한 달 뒤, 진승현 게이트가 터졌다. 피해액도 공교롭게 정현준과 같은 2,300억이다. 게이트에도 국룰이 있었던 모양이다. 월스트리트 투자은행 전문가라고 알려졌던 MCI 코리아 부회장 진승현은, 실은 그곳에서 인턴 수준이었다고 한다. 그는 자신이 대주주로 있던 금고와 종합금융사 세 곳에서 약 2,300억 원을 불법으로 대출받았다. 그 돈으로 주가를 조작해 비자금을 만들고 정관계에 뿌렸다는 의혹을 받았다. 인턴이었어도 사기 수준은 월스트리트 레벨이다. 2002년 대법원은 그에게 징역 5년을 확정했다. 2,300억 원에 5년이면 징역 연봉 460억 원이니, 월스트리트에서도 이렇게 번 사람은 손에 꼽히지 않을까? 어마어마한 연봉의 인턴이다.
이듬해 9월, 이용호 게이트가 터졌다. 성공한 벤처 사업가로 주목받던 G&G그룹 회장 이용호는 계열사 전환사채 680억 원을 횡령했다. 그리고 바닷속 보물선을 찾겠다는 사업으로 주가를 띄워 250억여 원의 시세차익을 챙긴 혐의로 구속됐다. 보물선은 나오지 않았지만, 보물은 챙겼으니, 보물선을 찾은 것보다 엄청난 능력이다. 그는 감형되어 2년 3개월을 받았는데, 징역 연봉으로는 정현준, 진승현보다 적다. 그래서인지 그는 사기에서 은퇴하지 않았다. 2011년 변호인에게서 사기로 20억을 가로채 징역 3년, 출소 뒤 2014년에는 회삿돈을 횡령해 2021년 또 징역 2년을 받았다. 은퇴 없는 프로였다.
마지막 게이트로 윤태식까지만 하자. 윤태식은 1987년 홍콩에서 아내를 살해했다. 그런데 자신을 납북될 뻔한 반공 인사라고 꾸몄고, 당시 안기부는 그 거짓을 받아줬다. 그해 정권은 국민의 시선을 돌릴 반공 소재가 필요했다. 살인범이 마침 그 소재를 들이밀자, 정부는 그를 반공 피해자로 포장해 써먹었다. 진짜 월북하려던 자는 영웅이 되고, 살해당한 피해자는 간첩이 되었다. 그렇게 살아남아 1998년 지문인식 보안 벤처 패스21을 세웠다. 신원을 확인해 주는 기술로 사업하겠다는 사람이, 정작 제 신원은 정부의 손을 빌려 세탁한 뒤였다.
패스21은 빠르게 성장했다. 윤태식은 정관계에 주식을 뿌려 장관 출신을 대표이사로 앉히고, 대통령 앞에서 기술을 설명했다. 벤처 열풍까지 더해 장외 주가가 뛰자, 그는 장부상 수백억 대 부자가 되었다.
반공이 필요하던 시절에 반공 피해자로, 벤처가 필요한 시절에는 벤처 사업가가 되었다. 정부 지원으로 성장한다는 것은 화초가 아니라 기괴하게 뒤틀린 분재일 수도 있다. 시장이었다면 고객이 기술을 검증했을 것이지만, 그는 고객을 설득할 필요가 없었다. 장관과 대통령만 설득하면 됐다.
2001년, 아내의 죽음을 밝히려는 유족의 집념으로 모든 것이 드러났다. 유족의 14년 눈물이 묻은 추악한 살인과, 그 살인범이 벤처 사업가로 둔갑해 벌인 로비가 한꺼번에 터졌다. 그는 겨우 15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네 사람은 모두 벤처 사업가였고, 벤처를 도구로, 금융과 권력을 끌어다 쓰는 것이 그 기술이었다. 지금, 모든 벤처가 사기꾼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누가 그들을 골라 키우고, 인증을 주고, 정바카라자금을 주었나?
원조와 차관을 받아 기업을 키웠던 시대에는 그 돈은 대부분 빚이었다. 그래서 악착같이 갚았다. 하지만 이 정바카라자금은 예금과 투자금, 그리고 세금으로 국민의 돈이다. 더구나 부실해진 금고를 정리하는 데 다시 공적자금이 들어간다. 이 돈은 아무도 갚지 않는다. 게다가 진짜 기술을 가진 벤처는 사기꾼 낙인을 함께 뒤집어썼다. 국민의 세금은 정부의 심사를 거쳐 기업으로 갔다. 시장이라면 고객이 외면했을 자들을 걸러내지 못하고 오히려 인증서를 주었다.
정현준 게이트에서, 한 금융감독 당국자는 금고의 불법 대출을 적발한 내부 조사를 무마했다. 감시 장치가 없던 것이 아니라, 감시하는 사람을 감시하는 장치가 없었나? 정부가 개선한 것을 보면, 이 말이 농담같지 않다. 정부는 감독과 벤처인증을 강화하고, 코스닥 심사를 엄격히 했다. 문제가 생긴 곳마다 관리를 더 붙였다. 그래서 안심이 된 정부는 기업 육성을 위해 지원 사업의 종류와 예산을 늘리고, 지원기관도 만들었다.
2000년 3월 2,834까지 치솟았던 코스닥 지수는 그해 말 525로 81.5% 폭락했다. 그리고 26년이 지난 2026년 9월에도 836이다. 광풍의 정점을 아직도 회복하지 못했다. 당시 '무료 인터넷 전화'를 내세운 새롬기술은 1999년 8월 상장 6개월 만에 150배 폭등해(1,890원→28만 2,000원), 시가총액이 한때 3조 원 이상으로 현대자동차를 넘어섰다. 그 후 새롬기술은 벤처라는 정체성, 회사를 띄운 사업, 개발하던 기술, 구속된 창업주, 그리고 기업 이름까지 버렸다. 코스닥 상장 자격 하나 남았고, 그 덕에 솔본이라는 이름이 되어, 의료 소프트웨어와 투자업으로 살아(?)남았다. 벤처가 아닌 벤처에 투자하는 회사가 되었다.
골드뱅크라는 기업도 있었다. 사업 모델은 '인터넷 광고를 보면 현금을 준다'라는 것이었다. 1998년 10월 상장 때 500원이던 주가가 1999년 2월 15일 연속 상한가를 치며 주가조작 의혹으로 사장이 국정감사 증인으로 불려 나왔고, 그해 5월에는 3만 7,000원까지 올랐다. 그러나 골드뱅크는 코리아텐더, 그랜드포트, 룩소네이트, 블루멈으로 이름을 열 번 넘게 바꾸고 최대 주주도 10번 이상 교체되다가 2009년 종가 25원으로 상장 폐지됐다.
이 광기 속에서 사기꾼들과 망한 벤처만 있는 것은 아니다. 네이버, 한게임, 엔씨소프트, 다음이 있었다. 네이버는 삼성SDS 사내벤처로 출범해 1999년 독립했다. 한게임과 엔씨는 게임 수익으로, 다음은 카지노와 합병했다.
그들은 정부 지원이 아닌 시장 안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