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 기업에 있어 사업계획서란 무엇일까. 사업계획서를 잘 쓰는 목적과 방법이 무엇일까? 사업계획서를 쓰는 목적은 이 사업이 되는 사업인지 스스로 확인하기 위해서다. 이 사업으로 고객의 어떤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인지. 그것이 어떤 가치를 창출하는지가 제일 중요하다. 그리고 그것이 고객에게 닿는 방법, 거기서 비용을 줄이고 이익을 늘리는 것. 바로 린 캔버스의 활용이 필요하다. 언제 적 린이냐고? 수많은 사업 모델 개발과 사업계획 수립, 분석 등에 대한 방법론이 있겠지만 나는 아직 린 캔버스보다 좋은 방법론을 찾지 못했다.
잘 모르는 사람을 위해 소개하자면, 이것은 한 장짜리 표의 아홉 칸을 채우는 것인데, 그 첫 칸은 바로 ‘문제’를 쓴다. 고객의 해결해야 할 문제를 찾는 데서 출발한다. 린 캔버스에서는 순서가 중요하다. 대부분은 문제를 떠올리고 해결바카라을 찾지만, 린 캔버스는 그 해결바카라이 푸는 문제가 진짜인지를 묻는다. 문제뿐만 아니라, 제안 가치, 해결바카라, 고객, 채널, 수익원, 비용 구조, 핵심 지표, 경쟁 우위를 서로 연결해 본다. 그리고 이 모두를 가설로 여긴다. 이 모델은 가설이므로 검증해야 사업이 된다. 검증은 시장과 고객을 통해 가능하다. 그 검증 과정이 곧 창업이고 사업이다. 그런데 검증도 쉽지 않은데, 시장은 상황에 따라 계속 변한다. 따라서 린 캔버스는 완성이 없다. 고객을 만나 틀렸다는 걸 알 때마다 고쳐 쓴다. 하나가 틀렸으면 나머지도 함께 고쳐야 한다. 결국 린 캔버스는 사업을 결정하고 기획을 자랑하는 문서가 아니라 의심하는 문서다. 이것을 적는 사람, 고치는 사람, 사용하는 사람이 바로 창업자, 기업가다.
나는 수많은 창업 기업의 제안서를 봤지만, 이 린 캔버스를 이용하는 창업자를 거의 본 적이 없다. 대부분의 제안서는 자랑하듯 사업계획을 써놓지만, 증명 없는 가정에 확신만 가득하다. 어떤 문제도, 해결바카라도 아닌, 쓸데도 없는 제품을 기획해서 지원금을 달라고 할 뿐이다. 그래서 나는 공모사업 제안서 양식에 린 캔버스를 넣어봤다. 이 아홉 가지를 고민하게 하고 싶었다. 하지만 제출된 대부분의 제안서엔 각 항목이 형식적으로 채워져 있었다. 문제도 해결바카라도 고객도 다 연관성이 없는데 떡하니 적혀 있다. 물론 개중엔 논리가 보이는 것도 있었다. 하지만 그 후로 그것을 검증하며 고쳐가는 기업은 나타나지 않았다. 내 가설도 틀린 것이다.
하지만 이게 창업 기업이 시장과 고객의 문제에 대한 해결바카라을 제시하며 사업을 구상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한 것은 정부 지원 사업의 공모였으며, 우리가 시장에서 성공할 제품을 지원하고자 해도, 그들에게는 심사위원이 고객이고, 기관이 구매자라고 여겨 거기에 맞춰서 제안서를 쓴 합리적 선택을 한 것이리라. 이렇게 또 가설을 세워본다. 내 생각은 늘 틀렸으니까. 아, 그런데 갑자기 이번 챕터에서 너무 진지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죄송) 가벼워지자.
아무튼 뭐 그래서 인지는 모르겠지만, 정부는 제안서 쓰는 법도 가르쳤다. 창업 관련 기관이 ‘창업에듀’라는 온라인 플랫폼에서 사업계획서 쓰는 법, 발표하는 법을 알려주었다. 심지어 수강료는 무료에, 수료증을 받으면 지원 사업의 선정에서 가점을 주기도 했다. 마치 EBS 수능 강의 같다. 교육은 국민의 권리이자 의무이므로 공평하게 제공하는 데, 자기 사업을 하는 창업도 권리이자 의무인가 보다. 왜 수능 강의 수료자에겐 수능 가점이 없는지 모르겠다. 아쉽게도 이 강의 영상 제공은 2026년 5월 31일로 종료되었다. 다시 오픈할지도 모르겠지만, 지금은 들을 수 없다. 뭐 그렇다고 포기하지는 마시라. 우리나라의 모든 교육에는 사교육이 있으니.
크몽이라는 사이트에 들어가면 사업계획서를 봐주는 사람들이 줄을 서 있다. “50만 원으로 5,000만 원 투자받으신 분들 100명 돌파.” 하지만 크몽이 “정부 지원 사업 대필은 등록 불가”라고 공지해 두었다는 점은 유의하시라. 대필은 불법이고 컨설팅은 합법이니. 이것은 컨설팅이자 교육이다. 잊으면 안 된다. 이것을 잊으니 절대 있을 리가 없는 제안서 대필을 감히 의심하는 자들이 생겨났다.
2018년에 언론에서 이 사업계획서 대필을 “스타트업의 눈먼 돈”이라 불렀다거나, 온라인에 검색하면 나오는 사업계획서를 대신 써준다는 광고 같은 것 말이다. 2026년에는 한 업체가 이런 제안을 했다. 600만 원만 내면 아이템 발굴부터 특허출원, 지원 사업 선발까지 평생 풀케어 해주겠다고. 광고 문구는 “100퍼센트 합격 보장”, “수강생 전원 2억 원 이상 수령”이었다. 이것은 마치 입시학원의 광고 같다. 심지어 창업자를 수강생이라 부른다. 하지만 난 그래서 오히려 이게 관심 끌려고 쓴 기사라고 밖에 생각하지 않는다. 이것이 절대 실제로 벌어지는 일이라고 믿지 않는다. 또 다른 보도에서는 한 청년창업 지원 사업 평가위원의 말을 인용했다. “심사해 보니 중간 브로커가 작성한 기획안을 가져온 경우가 많았다. 관리 체계가 없다 보니 이미 상당한 금액이 지원됐다.”라고 했다는 것이다. 아니, 브로커가 썼는지 창업 기업 대표가 썼는지, 심사위원이 평가 때 잠깐 제안서를 보고 뭘 안다고. 이런 말을 한다는 게 말이 되나? 난 여전히 믿지 않는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한 예비창업자의 말도 사실이 돼버린다. “지원금을 받을 수만 있다면 손해는 아니니까.” 하지만 브로커에게 잘못 걸린 창업자는 수수료만 날리는 게 아니라, 허위 서류로 공문서 위조범이 되어 형사처벌을 받고 3년간 정부 사업에 참여할 수 없게 된다. 그걸 감수한다는 게 말이 되는가? 더구나 지난해 절박한 소상공인을 노린 불법 브로커 23곳이 적발됐다. 이렇게 적발까지 했으니, 공모사업의 대리시험을 치는 사람은 더더욱 없을 것이 자명하다. 투명하고 공정한 우리 세상에서 혼탁한 소문은 믿을 게 못 된다.
하지만 상황이 이러니, 다들 헛소문에 흔들리지 않을 이야기를 내가 들려줘야겠다, 이런 공모사업의 발표평가에 대한 내 이야기를 들으면 평가에 대한 신뢰가 깊어질 것이다.
다들 엘리베이터 피치라는 말을 알 것이다. 투자자를 엘리베이터에서 우연히 만났을 때, 내리기 전 짧은 순간에 내 사업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말솜씨가 아니라, 자기 사업의 핵심을 한마디로 꿸 만큼 스스로 꿰뚫고 있느냐, 그것이 핵심이다. 그래서 우리는 심사장에 이것을 도입했다. 짧은 시간에 승부를 봐야 한다는 조건을 맞추어 3분 피치, 5분 피치, 길면 10분 만에 발표평가를 한다. 전문가는 딱 보면 알기 때문에 1분만 있어도 되지만, 우리 지원 사업 발표평가의 파워포인트는 예술적 가치가 높아서 감상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하다.
대한민국 정부 지원 사업 발표장의 파워포인트. 세상에서 이보다 아름다운 파워포인트를 본 적이 없다. 다양한 색감, 작품의 기물 같은 아이콘은 오차도 없이 정렬되어 있다. 은은한 그러데이션의 배경, 예술적 캘리그래피 같은 폰트. 마치 프랑스 지폐 같아 보이기도 한다. 우리를 홀리는 발표 자료는 마치, 한 장이면 될 것을 30페이지로 만든 발표 3분짜리 예술 작품이다. 이걸 잠깐 보고 넘기는 것은 작품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발표평가에서 나는 어릴 때 봤던, 미스코리아 대회를 연상했다. 발표자가 무대에 오른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파워포인트 드레스를 입고. 미용실 원장님에게 배운 워킹이 여기서는 어디선가 받은 발표 코칭이다. 여기서 미모는 학벌과 수상 경력 같은 것이다. 공모의 대회에 따라서는 미스코리아처럼 데모데이나 시민평가단 같은 관객이 있는 경우도 있다. 뭐 미인대회와 완벽히 같지는 않다. 미인대회에서는 옆에 있는 언니가 뽑혔으면 한다고 인터뷰하지만, 지원 사업 결승에서는 다른 회사가 되면 불공정하다고 이의신청을 할 것이라는 차이가 있다.
그런데 이제, 정부 교육이든 사교육이든 다 필요 없게 생겼다. AI 덕분이다.
챗지피티에 어느 공모사업에 맞춰 사업계획서를 써달라고 하면 몇 초 만에 나온다. 아예 이런 일만 하는 서비스도 있다. “정부 지원 사업 합격을 위한 사업계획서 작성 1등 AI 솔루션”도 있고, “AI 임직원 일곱 명”이 예비창업패키지 사업계획서를 대신 써준다는 것도 있다한다. 이런 것을 보며 누군가는 말한다. AI가 사업계획서를 써줬다가 안 되면 AI가 바카라임을 져주냐. 그 말에는 여지없이 대신 써준 사람은 바카라임을 져주냐는 반론을 한다. 하지만 AI가 써주는 것도 명령한 사람의 생각이 반영되고, AI의 결과물을 판별하고 보강하는 것도 사람의 능력에 좌우되기도 한다.
그러니 이 얼마나 공평한 세상인가. 글재주가 없어도, 컨설팅 받을 돈이 없어도, 누구나 사업계획서를 낼 수 있다. 다만 사소한 문제가 하나 있다. 모두가 같은 도구로 쓰니 답안이 다 비슷비슷하다. 어느 계획서를 펼쳐도 혁신적인 기술로 시장의 문제를 해결하고, 고객 중심의 차별화된 가치를 제공하며, 지속 가능한 성장과 글로벌 확장을 추진한다. 하나같이 매끄럽고 하나같이 알맹이가 없다. 그 아름다운 발표 자료도 사정이 비슷하다. AI가 그려주는 인포그래픽은 훌륭하다. 지금은 기술이 더 발전해야 하는지, 약간의 불쾌한 골짜기는 있다. 이 불쾌한 미인대회는 마치 참가자가 전부 같은 얼굴로 성형하고 나온 느낌이다.
그래서인지 정부도 사업계획서의 유사도를 검증한다. 이것을 판별하는 것도 AI라는 점이 뭔가 이상하기는 하다. 또 이 유사도 검증 때문에 AI에게 유사성이 드러나지 않게 써달라고도 한다. 더 웃긴 것은 사람들은 AI를 썼다고하면 사실도 가짜 취급을 한다는 것이다. ‘AI 같다’라거나 ‘AI 그림 같다’라는 말은 가짜나 이상하다는 뜻으로 통하고 있다. 그래서 평가할 때 계획서에서 AI 냄새가 난다 싶으면, 사업 자체를 미심쩍게 여긴다. 문서를 손으로 썼는지 기계로 썼는지가 창업자가 무엇을 팔려고 하는지보다 중요한 기준이 된다. 그런데 평가하는 쪽도 AI를 쓰기도 한다. 사업계획서를 넣으면 심사 기준에 맞춰 점수를 매겨주는 도구가 이미 나와 있다. 그런데 AI로 쓴 제안서가 가짜라면, AI로 한 평가도 가짜인가. 아무것도 뚫을 수 없는 창과 아무것도 못 막는 방패의 대결을 보는 것 같다.
요즘은 이런 평가에 창업자가 자기 사업을 정말 이해하는지를 보겠다고 한다. 제안서, 발표 자료, 그리고 스피치 능력으로 말이다. AI가 나오기 전, 그때는 없었던 것인가? 이 익숙함은 내 기분 탓인가.
우리는 창업기업에 제일 중요한 것을 ‘기업가 정신(entrepreneurship)’이라고 한다. 슘페터(Joseph Schumpeter)는 기업가를 ‘창조적 파괴’를 일으키는 사람이라 했고, 드러커(Peter Drucker)는 거기에 그것이 타고나는 재능이 아니라 배우고 익히는 규율이며 변화를 기회로 삼아 실행하는 것이라는 실천을 더했다. 그런데 우리가 평가하는 제안서와 발표 자료, 피칭. 그 어디에 기업가 정신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 있을까? 또 나만 모르는 것이 있나 보다. 어쩔 수 없지. 내가 모르는 것이 한두 개인가.
어쩌면 AI와 관계도 없던 대리시험과 미인대회에 AI가 쓰이면서 이 바닥을 흐리는 주범처럼 오해받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사업은 시험도 대회도 아니다. 시장에는 심사위원이 없다. 제품이나 서비스가 아닌 제안서만 고객에게 보여주고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경우도 거의 없다. 고객 7명이 모여서 점수를 매기고 최저점, 최고점을 빼고 평균하여 순위대로 구매하는 것도 아니다. 대부분의 기업가가 AI로 고객을 분석하고, 경쟁을 살피고, 자기 사업이 어디서 틀렸는지 검증하는 데 쓸 것이다. 엉뚱하게 심사위원들에게 쓰는 사람들은 없겠지만, 그냥 이런 생각도 해봤다.
사실, 이번 장에서는 우리 창업 기업의 비즈니스를 살펴보려고 했었다. 그래서 시장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될 것으로 생각했는데, 갑자기 내가 삼천포로 빠지더니, 지원 사업을 위한 제안서 작성 교육과 발표 자료 같은 이야기만 했다. 흠, 이게 창업 기업의 비즈니스라서 그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