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장: 보더 라이더(Border Rider)의 통찰]
어느덧 첫째 아이가 열 살이 되었다. 2015년 타지키스탄에서 아이를 처음 품에 안았던 그 경이로운 순간으로부터 꼬박 십 년, 나의 중앙아시아 생활 중 가장 밀도 높은 시간은 '아빠'라는 이름으로 채워졌다. 라마단이 끝나고 이어진 연휴, 이제는 제법 커버린 아이들과 온종일 시간을 보내다 보면 여전히 체력의 한계를 느끼곤 하지만, 열 살 소년이 된 아들과 나누는 대화의 깊이는 예전의 고단함과는 또 다른 차원의 성찰을 안겨준다.
돌아보면 한국에서 육아를 해본 적 없는 내가 이 척박한 스탄 땅에서 아이들을 키우며 얻은 것은, 세련된 도시의 편리함과 맞바꾼 삶의 '비대칭적 풍요'였다.
그 풍요의 첫 번째 문은 아이들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다채로운 언어의 파편들이었다. 미국 교포 2세인 아내와 한국인인 나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영어와 한국어를 모국어로 받아들였고, 타지키스탄과 키르기스스탄을 거쳐 지금 우즈베키스탄의 학교에 다니며 러시아어라는 거대한 세계를 흡수했다. 이제 열 살이 된 아이는 세 가지 언어를 자유롭게 오가며 각기 다른 문화의 맥락을 짚어낸다. 아이에게 언어는 단순한 소통 수단이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세 개의 서로 다른 창(窓)이 되었다.
또한, 이곳의 낮은 인건비 덕분에 연을 맺었던 육아 도우미들은 우리 가족에게 단순한 노동력 이상의 의미였다. 타지키스탄과 키르기스스탄에서 우리와 가족처럼 지냈던 그분들은 타국 생활의 외로움을 견뎌야 했던 아내에게 든든한 친정어머니이자 자매가 되어주었다. 인건비가 싼 해외였기에 가능했던 이 '나눔의 육아'는 역설적으로 우리 부부가 아이들에게 더 온전한 정서적 에너지를 쏟을 수 있는 토양이 되었고, 아이들에게는 피부색과 국적이 다른 이들을 가족으로 받아들이는 유연함을 선물했다.
무엇보다 소중한 유산은 '시간의 밀도'다. 한국에서의 삶이 촘촘한 경조사와 복잡한 인간관계, 왕복 수 시간의 출퇴근길에 저당 잡혀 있다면, 이곳에서의 삶은 오롯이 가족이라는 중심축을 돌고 있다. 야근이 드물고 일터가 가까운 이곳의 시계는 가족과 함께 저녁을 먹고 주말을 온전히 공유하는 일상을 당연한 권리로 허락했다. 슬롯적 관계의 폭은 좁아졌을지언정, 가족이라는 뿌리는 그 어느 때보다 깊고 단단해졌다. 물론 십 년의 세월 동안 고민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한국의 치열한 교육 열풍에서 비껴나 경쟁 없는 환경에서 아이를 키우는 것이 과연 축복이기만 할까? 사립학교의 비싼 수업료와 공립학교의 낮은 교육 수준 사이에서 갈등할 때면, 부모의 경제적 선택이 아이의 가능성을 제한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활동가 부모로서의 씁쓸한 현실을 마주하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믿는다. 외국인으로 살며 겪은 사소한 차별과 억울함, 정체성의 혼란조차 열 살 아이의 내면에는 단단한 옹이가 되어줄 것임을. 한국에서 30년을 살며 굳어진 나의 편협한 사고의 틀을 내 아이들은 겪지 않기를 바란다. 다양한 국적의 친구들과 흙먼지를 뒤집어쓰며 노는 경험, 나와 다른 존재를 '틀림'이 아닌 '다름'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안목은 그 어떤 일타 강사의 수업으로도 가르칠 수 없는 '보더 라이더'만의 유산이기 때문이다. 결국 경계 위에서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아이에게 안락한 요람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거친 파도를 스스로 타는 법을 곁에서 묵묵히 지켜봐 주는 일이다. 십 년의 세월을 이 땅에서 자라난 아이들이 훗날 어느 땅에 뿌리를 내리든, 중앙아시아의 뜨거운 태양 아래서 배웠던 이 문화적 다양성과 회복탄력성이 그들의 인생을 지탱하는 가장 질긴 밑거름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해 본다.세계 지도는 극명하게 대비되는 두 개의 위기 앞에 놓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