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시간의 고독과 1시간의 환대

[제5장: 보더 라이더(Border Rider)의 통찰]

국제개발협력 활동가로 산다는 것은 끊임없이 '시간의 환전'을 하는 일이다. 서울 본부의 차가운 모니터 앞에서 제안서를 다듬는 밤들, 후원자들의 진심이 담긴 숫자를 예산서에 채워 넣는 고심의 시간들. 그렇게 쌓인 2,000시간의 물리적 노동은 중앙아시아의 어느 척박한 마을에 닿아 단 한 시간의 '축제'로 치환된다. 그리고 그 찰나의 순간, 나는 가장 화려한 환대와 함께 이름 모를 이방인에서 '우리 마을의 은인'으로 변모한다. 하지만 그 찰나의 환대를 누리는 내 마음은 늘 한쪽이 기우뚱하다. 마을 사람들이 내 어깨에 걸쳐주는 전통의상 '차판'의 무게는 생각보다 무겁다. 그들은 내 눈앞에 펼쳐진 보건소와 학교가 오직 내 손끝에서 탄생한 줄로만 안다. 하지만 나는 안다. 이 기적 같은 변화의 9할은 얼굴도 모르는 한국의 후원자들과 본부에서 묵묵히 서류와 싸우던 동료들의 몫이라는 것을. 그 미안함과 고마움 사이의 틈새, 그곳이 바로 내가 16년째 머물고 있는 '경계'의 자리다.


현장의 풍경은 때로 가혹할 만큼 아름답다. 눈보라가 치는 산길을 뚫고 도착한 마을에서 손을 호호 불며 '코무즈'를 연주하던 아이들의 모습, 아코디언 선율에 맞춰 춤을 추던 할머니들의 주름진 미소는 2,000시간의 행정적 피로를 한순간에 증발시킨다. 양 기름이 둥둥 뜬 뜨거운 수프와 갓 구운 빵 '논'을 건네는 주민들의 투박한 손길은, 내가 한국에서도, 그렇다고 이곳 사람도 아닌 '경계인'으로서 겪어온 소외감을 단숨에 씻어내 준다. 나는 이 환대의 현장에서 늘 '배달부'의 정체성을 자각한다. 나는 한국의 따뜻한 마음을 실어 중앙아시아의 고립된 마을로 배달하고, 다시 이곳 사람들의 눈물 섞인 감사를 채취해 한국으로 보내는 사람이다. 어느 쪽에도 완벽히 속하지 못해 외롭지만, 그렇기에 양쪽의 진심을 가장 투명하게 볼 수 있는 특권을 가진 존재. 보더라이너로 산다는 것은 바로 이 '감사의 선순환'을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지켜보는 목격자가 되는 일이다.


행사가 끝나고 주민들에게 준비한 감사장을 전달하며 나는 생각한다. 이들은 나에게 감사를 표하지만, 정작 내가 버틸 수 있게 해준 것은 이들의 환대였다는 것을. 2,000시간의 고독한 사투를 단 1시간의 기적으로 보상해 주는 이 땅의 사람들 덕분에, 나는 오늘도 경계 위에서 떨어지지 않고 다시 한 걸음을 내딛는다. 바트켄의 말린 살구처럼 달콤하고도 쌉싸름한 이 경계의 삶. 나는 이제 어느 한쪽에 뿌리 내리기를 포기했다. 대신, 두 세계를 잇는 이 길 위에서 가장 자유로운 '배달부'로 남기로 했다. 내가 머무는 이 경계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많은 감사가 오가는 통로임을 믿기 때문이다.



image.png


이전 10화암벽을 깎아낸 망치 소리, 10년의 불가능을 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