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의 찬란함에서 무르갑까지 함께한 우정

[제5장: 보더 라이더(Border Rider)의 통찰]

중앙아시아의 지도를 펼쳐보면 인위적으로 그어진 국경선들이 빗금처럼 쳐져 있다. 구소련 시절, 민족의 결을 무시한 채 그어진 그 선들은 오늘날까지도 타지키스탄과 키르기즈스탄 사이에 씻기지 않는 분쟁의 흉터를 남겼다. 해발 3,700미터의 고립된 마을, 무르갑(Murghab)은 그 비극적인 경계 위에 위태롭게 서 있는 땅이다. 타지키스탄의 영토이나 키르기즈 사람들이 살고, 수도 두샨베보다 국경 너머 오쉬의 숨결이 더 가까운 곳. 이 황량하고도 척박한 '세상의 끝'에, 나의 가장 소중한 친구들이 나타났다.


불과 얼마 전, 나는 미국 뉴욕에서 아내와 함께 인생의 새로운 챕터를 열기로 약속했다. 화려한 불빛과 축복의 함성이 가득했던 세계의 중심, 뉴욕. 그 바쁜 도시의 소음 속에서도 기꺼이 태평양을 건너와 나의 시작을 지켜봐 주었던 친구들이었다. 그런데 운명은 기묘하게도 우리를 다시 불러 세웠다. 뉴욕의 예식장에서 작별 인사를 나눈 지 얼마 되지 않아, 우리는 지구상에서 가장 높고 외진 파미르 고원의 심장부, 무르갑의 흙먼지 속에서 다시 조우했다. 일주일이라는 짧은 휴가를 내어 이 험로를 자처한 그들을 보며 나는 묘한 전율을 느꼈다. 비행기 노선조차 마땅치 않고, 고산병의 두려움과 칼바람이 도사리는 이 길을 그들은 오로지 '나'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찾아와 주었다.


우리는 무르갑의 어느 키르기즈 가정집에 짐을 풀었다. 결혼을 축하하듯 양을 잡고 전통 과자를 굽는 분주한 현지인들 틈에서, 우리는 난생처음 마주하는 야크 고기의 비릿한 기름기를 함께 삼켰다. 뉴욕의 세련된 다이닝 대신 무르갑의 투박한 기름밥을 나누며, 우리는 비로소 화려한 수식어를 걷어낸 서로의 진심을 확인했다. 친구들은 척박한 무르갑의 돌산을 오르며 감탄했다. 하지만 나는 그들이 바라보는 풍경 너머에 서 있는 '나'를 보았다. 누구에게는 생존의 사선이고, 누군가에게는 그저 통과해야 할 화물차의 경로일 뿐인 이 황량한 마을. 16년째 경계인으로 살아가는 나의 내면도 이 무르갑처럼 늘 쓸쓸하고 고립되어 있었는지 모른다.


우리의 여정 중 가장 무모했던 순간은 해발 3,900미터에 위치한 카라콜(Karakul) 호수에서였다. '검은 호수'라는 이름답게 신비롭고 서늘한 그곳에서 우리는 용감하다 못해 무식한 결정을 내렸다. 텐트 하나에 의지해 노숙을 하기로 한 것이다. 밤이 깊어지자 파미르의 칼바람은 텐트 천을 찢을 듯 몰아쳤고, 영하로 뚝 떨어진 기온에 우리는 서로의 온기에 기대어 덜덜 떨어야 했다. 제대로 잠 한 숨 자지 못할 만큼 고통스러운 추위였지만, 잠시 텐트 밖으로 고개를 내민 순간 우리는 일제히 숨을 멈췄다.


그곳에는 우리가 평생 보았던 별들을 다 합친 것보다 더 많은 별이 쏟아질 듯 박혀 있었다. 뉴욕의 타임스퀘어 전광판보다 더 눈부시게 빛나는 은하수가 거대한 호수 위로 흐르고 있었다. 그 압도적인 우주의 풍경 앞에서 우리는 추위조차 잊은 채 한참을 서 있었다. 문명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곳, 가장 낮은 온도의 땅에서 마주한 그 빛나는 별들은 마치 우리에게 괜찮다고, 이 길 끝에는 반드시 빛이 있다고 말해주는 듯했다.

다음 날 아침, 퉁퉁 부은 얼굴로 우리는 그 높은 돌산 위에서 짧지만 묵직한 약속을 하나 나누었다. 언젠가 우리 세 사람이 머리를 맞대고, 이 세상을 위해 작지만 의미 있는 일을 함께 도모해 보자는 다짐이었다. 구체적인 계획은 없었지만, 카라콜의 별밤을 함께 버텨낸 우리 사이에는 말로 다 할 수 없는 단단한 신뢰가 흐르고 있었다. 파미르의 찬 바람을 맞으며 뱉어낸 그 말들은 묘하게도 나의 흐릿했던 사명감을 다시 일깨웠다.


세상의 중심인 뉴욕에서 세상의 끝인 무르갑까지. 그 극단적인 거리와 환경을 뛰어넘어 나를 찾아와 준 이들 덕분에 나는 깨달았다. 보더 라이더(Border Rider)의 삶이 비록 외롭고 위태로운 경계 위의 줄타기일지라도, 그 줄의 반대편을 든든하게 맞잡아주는 이들이 있다면 그것은 결코 고립이 아니라는 것을. 지도는 선을 그어 사람을 나누지만, 우정은 그 선을 지우며 길을 만든다. 뉴욕의 화려함보다 무르갑의 적막함과 카라콜의 혹독한 추위 속에서 나눈 우정이 더 깊게 각인된 이유다. 나는 이제 다시 이 경계의 땅을 뚜벅뚜벅 걸어갈 용기를 얻는다. 내 곁에는 세상의 끝까지 함께해 줄, 그리고 언젠가 가치 있는 일을 함께 일궈낼 '제정신이 아닌' 멋진 거울들이 있기 때문이다.



image.png종명, 준철, 일형 그리고 파미르 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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