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장: 숫자가 삶으로 치환되는 기적 : 현장 활동가의 일지]
국제개발협력의 현장에 서 있다는 것은 매일같이 거대한 질문 앞에 서는 일과 같다. 비슈케크에서 남쪽으로 760km를 달려야 닿는 땅, 키르기스스탄에서도 가장 척박하고 먼 곳으로 꼽히는 바트켄주 카담자이 지역. 그곳에는 마을 사람들조차 ‘미친 노인’이라 부르며 고개를 내젓던 일흔다섯의 무르자파샤 마마토프 할아버지가 있었다. 그의 투박한 손에는 10년 전부터 품어온, 모서리가 해질 대로 해진 낡은 설계도 한 장이 들려 있었다.
그의 꿈은 무모함을 넘어 불가능해 보였다. 마을을 가로막은 거대한 악-코룸 산의 암벽을 뚫고 7.5km의 물길을 내어, 수백 년간 먼지만 날리던 12만 평의 황무지를 옥토로 바꾸겠다는 것이었다. 현지 언론인 스푸트니크 키르기스스탄의 기록에 따르면, 이 제안은 이미 2007년에 처음 제기되었으나 예산 부족과 기술적 한계라는 벽에 부딪혀 10년 넘게 관료주의의 서류더미 속에서 잠자고 있었다. 정부 당국조차 “기계도 못 들어가는 저 깎아지른 절벽을 무슨 수로 뚫느냐”며 노인을 외면했다.
사실 이 지역은 우리 단체의 공식 사업장이 아니었다. 원칙을 중시하는 NGO의 관리자로서, 지원 대상이 아닌 곳에 예산을 추가로 투입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하지만 현장에서 마주한 노인의 집념과 주민 500 가구의 간절함은 나의 ‘차가운 머리’를 흔들어놓기에 충분했다. 나는 활동가로서의 직감과 그간 쌓아온 행정적 노련함을 발휘해 본부 담당자들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이곳은 단순히 물을 공급하는 곳이 아닙니다. 10년을 기다려온 주민들의 자생적 의지가 임계점에 도달한 곳입니다. 우리가 작은 불씨만 지피면, 현장은 스스로 기적을 증명할 것입니다.” 수차례의 전략적 보고와 치열한 설득 끝에 마침내 별도의 특별 기금을 확보했다. 10년간 멈춰있던 노인의 시계가 다시 째깍거리며 돌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기적은 살을 에듯 차가운 키르기스스탄의 겨울에 시작되었다. 현지 언론 아키프레스(AKIPress)는 당시의 상황을 “겨울의 혹독한 추위에도 불구하고 마을 사람들은 중장비의 도움 없이 오직 정과 망치만으로 암벽을 깎기 시작했다”라고 보도했다. 영하의 혹한 속에서도 500 가구 주민들은 물러서지 않았다. ‘참여와 기여’의 철학이 키르기스스탄의 위대한 전통인 ‘아샤르(자발적 상부상조)’ 정신과 만나 폭발한 것이다.
공사는 처절했다. 장비가 접근할 수 없는 160미터의 수직 암벽 구간 앞에서 주민들은 밧줄 하나에 몸을 의지한 채 바위를 깎아냈다. 무거운 철제 파이프 500미터를 어깨로 날라 연결했고, 3km에 달하는 구간은 직접 콘크리트를 비벼 타설 했다. 마을 이장은 인터뷰에서 “4개월 동안 온 마을 장정들이 누구 하나 시키지 않아도 현장에 나와 망치질을 했다”며 뜨거웠던 사투를 증언했다. 누군가는 무모하다 비웃었을 그 망치 소리가 120일 동안 온 산천에 울려 퍼졌다.
2018년 봄, 마침내 물길이 열렸다. 수백 년간 먼지만 날리던 메마른 땅에 처음으로 차가운 물줄기가 쏟아지던 날, 마을 사람들은 흙탕물을 뒤집어쓰면서도 아이처럼 울고 웃었다. “이제 우리 과수원에 물이 들어간다!”는 외침은 그 어떤 환호성보다 뜨겁게 나의 심장을 적셨다.
이듬해인 2019년 9월, 무르자파샤 할아버지는 대통령궁의 레드카펫 위에 섰다. 대통령은 그의 가슴에 국가 훈장인 ‘영예(당크)’ 훈장을 직접 달아주며 치하했다. “일흔다섯의 어른께서 10년의 불가능을 이겨내고 수백 년간 메말랐던 땅을 정원으로 바꾸어 놓았다”는 찬사는, 사실 그 현장에서 망치를 들었던 모든 주민과 그들의 의지를 믿었던 우리 모두를 향한 것이었다.
나는 이 프로젝트를 통해 개발협력 활동가로서 가장 귀한 교훈을 얻었다. 진정한 변화는 세련된 기술이나 막대한 예산이 만드는 것이 아니다. 주민들의 가슴속에 품고 있던 자생적인 불꽃을 발견하고, 때로는 조직의 시스템을 설득해서라도 그 불꽃이 꺼지지 않게 기름을 부어주는 ‘조력자’가 되는 것. 그것이 전문가의 진짜 역할임을 깨달았다.
16년 전, 1년만 버텨보자던 청년은 어느새 75세 노인의 낡은 설계도를 현실로 바꾸는 노련한 활동가가 되었다. 하지만 암벽을 뚫고 흐르는 그 차가운 물줄기는 다시 나에게 묻는다. 이 수많은 지표와 숫자들을 삶으로 치환해 낸 너는, 이제 어디로 향하고 있느냐고. 치열했던 현장의 기록들을 가만히 덮으며, 나는 활동가라는 익숙한 명함 너머의 나를 마주한다. 시스템을 세우면서도 시스템의 경계 위에 서 있고, 도움을 주면서도 그들에게서 삶을 배우는 이방인. 어느 한쪽에도 온전히 속하지 못한 채 양쪽의 세계를 모두 품으려 했던 ‘보더 라이더(Border Rider)’로서의 사유가, 이제 저 물길을 따라 흐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