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 소멸의 시대, 다산을 경계하는 프로젝트

[제5장: 보더 라이더(Border Rider)의 통찰]

세계 지도는 극명하게 대비되는 두 개의 위기 앞에 놓여 있다. 한쪽에서는 인구 소멸을 국가 존립의 위기로 규정하며 아이를 낳으라고 천문학적인 예산을 쏟아붓고, 내가 서 있는 이 땅 타지키스탄의 어느 오지 마을에서는 반대로 '계획적인 출산'이라는 이름 아래 다산의 속도를 늦춰야 한다고 설득한다. 이 지독한 역설의 경계에 서 있는 활동가로서, 나는 종종 형용할 수 없는 묘한 딜레마에 빠지곤 한다.


몇 년 전 타지키스탄에서 우리 단체는 독일의 원조 기관인 GIZ와 손을 잡고 모자보건 및 가족계획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한국 단체가 까다로운 유럽의 공여 기금을 확보했다는 것은 분명 고무적인 성과였지만, 현장에서 마주한 풍경은 성과 지표보다 훨씬 복잡한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타지키스탄의 시골 마을에서 여성의 삶은 여전히 '다산(多産)'이라는 전통적 가치에 묶여 있다. 결혼과 동시에 끊임없는 출산을 강요받고, 몸이 채 회복되기도 전에 다시 임신을 반복하는 여성들. 그들에게 아이는 미래의 노동력이자 노후를 부양할 유일한 자산이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준비되지 않은 산모의 건강 악화와, 가난의 굴레를 고스란히 물려받아야 하는 아이들의 위태로운 미래가 도사리고 있다.


나는 전문가들과 함께 교육 모듈을 만들고 마을 여성들에게 피임의 중요성을 전한다. 하지만 "피임약을 먹으면 불구가 된다"는 근거 없는 소문과, 며느리의 자궁을 통제하려는 시어머니의 서슬 퍼런 시집살이 앞에서 활동가의 논리는 번번이 무력해진다. 무엇보다 나를 괴롭히는 것은 내면의 질문이다.

'인구 절벽을 걱정하는 대한민국에서 온 내가, 왜 이들에게는 생명의 탄생을 조절하라고 말해야 하는가? 가난하다는 이유로 다산을 경계해야 한다는 이 논리는 과연 정의로운가?'


낮은 구릉 너머로 펼쳐진 여름 보리의 황금빛 물결은 이방인인 나의 눈에는 더없이 평화롭고 아름다운 풍경이다. 하지만 그 풍경 속에 박혀 있는 현지인들의 삶은 처절하다. 전 세계의 중고차가 모여드는 이 땅에서 30년 넘은 낡은 차를 고치며 살아가는 이들에게, 다산은 어쩌면 가난을 이겨내기 위한 그들만의 처절한 생존 방식일지도 모른다. 그들에게 "교육비와 양육비를 고려해 아이를 적게 낳으라"라고 말하는 것은, 선진국의 잣대로 그들의 유일한 희망을 재단하는 일처럼 느껴져 마음 한구석이 늘 애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길을 걷는 이유는, 이것이 단순히 인구 숫자를 줄이는 '인구 억제' 사업이 아니라 한 여성의 '삶의 주권'을 되찾아주는 일이라 믿기 때문이다. 반복되는 출산으로 망가진 산모의 신체를 보호하고, 태어날 아이가 최소한의 교육과 건강을 보장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 그것이 거시적인 인구 통계보다 중요한 현장의 진실이다.


EU의 기금을 받아 진행하는 청년 디지털 역량 강화 사업 현장에서 새로 채용된 직원들과 진한 ‘슈르보(소고기 국)’를 나눠 먹으며 나는 다시금 다짐한다. 세계는 인구 소멸을 걱정하지만, 나는 오늘 이 마을에서 태어날 한 아이가 '가난의 대물림'이라는 운명 대신 '디지털 세상으로의 기회'를 잡을 수 있기를 꿈꾼다고...


황금빛 보리밭이 주는 시각적 풍요와 그 이면에 숨겨진 빈곤의 딜레마. 그 경계 위에서 나는 오늘도 정답이 없는 질문을 던지며 슈르보의 짠맛을 삼킨다. 활동가란 결국, 세상의 거대한 논리와 현장의 가냘픈 현실 사이에서 가장 인간적인 지점을 찾아 끊임없이 흔들리는 존재일지도 모른다.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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