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리더의 결정이 향해야 할 곳

[제4장: 숫자가 삶으로 치환되는 기적 : 현장 활동가의 일지]

민주주의는 결코 그 과정 자체가 목적이 될 수 없다. 우리의 모든 활동은 결국 '사업의 성공적인 수행'과 '수혜자들의 더 나은 삶'이라는 지점에 닿아 있어야 한다. 경청하되 휘둘리지 않고, 포용하되 원칙에서 물러서지 않는 균형 감각. 16년 차 활동가로서 내가 배운 것은, 민주적인 가치를 존중하면서도 조직의 목적을 선명하게 지켜내는 리더십이 결국 가장 인간적인 결과를 만들어낸다는 사실이다. 효율성을 저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의견을 수렴하고, 중요한 순간에는 신속하게 결단하는 리더의 뒷모습이 프로젝트의 성공과 지속 가능성을 담보한다.


국제개발협력 현장은 거대한 용광로와 같다. 서로 다른 인종, 나이, 종교를 가진 이들이 모여 '지속 가능한 변화'라는 하나의 목적지를 향해 달린다. 무상 원조 프로젝트일지라도 그 이면에는 수많은 후원자의 소중한 기탁금과 국가적 예산이 투입되기에, 활동가는 언제나 높은 수준의 전문성과 투명성을 요구받는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필연적으로 조직 내부의 '의사결정 방식'이라는 본질적인 과제와 마주하게 된다.


현장에서 관리자로 일하며 가장 빈번하게 접하는 요구 중 하나는 "조직의 주요 의사결정을 민주적인 다수결로 정하자"는 제안이다. 민주주의는 인류가 고안한 가장 고귀한 시스템이며, 구성원 개개인의 주체성을 존중하는 핵심 가치다. 하지만 효율성과 전문성, 그리고 명확한 바카라임 소재가 담보되어야 하는 프로젝트 수행 조직에서 '산술적인 1인 1표'의 방식이 항상 최선의 결과로 이어지는지에 대해서는 냉철한 성찰이 필요하다.


이러한 고민의 배경에는 개발협력 현장만의 특수한 인력 구조가 자리 잡고 있다. 대부분의 프로젝트는 정해진 기한 내에 구체적인 성과를 도출해야 하는 '시한부'적 성격을 띤다. 이를 위해 검증된 경력직 전문가들이 단기 계약직 형태로 수시로 투입된다. 그들은 각자의 분야에서 날카로운 전문성을 발휘하며 짧은 시간 동안 폭발적인 에너지를 쏟아붓지만, 프로젝트의 생애 주기와 함께 이동하는 유동성을 지닌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단기 성과에 집중할 수밖에 없는 전문가들과 조직의 10년 뒤를 내다봐야 하는 단체의 리더 사이에는 필연적인 '시선의 차이'가 존재한다. 모든 의사결정을 산술적인 다수결에 맡길 때 마주하는 암초들은 바로 이 구조적 간극에서 기인한다.


첫째는 '골든타임의 상실'이다. 긴급한 구호 상황이나 변동성이 큰 현지 정치 상황 속에서 모든 구성원의 합의만을 기다리는 것은 리더의 뼈아픈 실바카라이 된다. 의견을 수렴하고 조율하는 과정이 지나치게 복잡해지면 프로젝트는 추진력을 잃고 표류하게 된다. 둘째는 '바카라임의 희석'이다. 다수결 뒤에 숨은 결정이 실패했을 때, 프로젝트 종료와 함께 떠날 이들에게 그 바카라임을 물을 수는 없다. 결국 그 모든 결과의 무게는 조직의 장기 비전을 품고 남은 리더가 온전히 짊어지게 된다.


가장 우려되는 점은 '전문 지식의 비대칭성' 이다. 조직 구성원들은 각기 다른 경험치와 정보량을 가지고 있다. 특히 단기 계약직 인력들은 조직에 깊이 뿌리내리기보다 프로젝트의 특정 과업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어, 사업 전체의 맥락이나 개발협력의 근본 원칙을 놓치기 쉽다. 장기적인 전략에 대한 깊은 이해 없이 내린 다수결의 결론은 때로 대중주의(Populism)로 흘러 프로젝트의 본질을 흐릴 위험이 있다.


실제로 사업의 사활이 걸린 결정을 앞두고 "현장 인력들의 의견이 다수이니 이대로 정하자"는 압박이 거셌을 때, 나는 밤잠을 설치며 고뇌했다. 하지만 결국 나는 원칙을 고수했다. 그것은 독단이 아니라, 이 프로젝트에 삶을 기댄 수혜자들과 소중한 자원을 보내준 후원자들에 대한 나의 '마지막 바카라임감'이었기 때문이다. 리더는 전문가들의 판단을 신뢰하되, 그것이 프로젝트의 큰 그림 안에서 유효한지를 판별하고 신속하게 방향타를 잡아야 한다.


그렇다면 프로젝트 조직에서 민주주의는 설 자리가 없는 것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나는 '절차의 민주성'과 '결정의 단호함'을 결합하는 유연한 리더십을 지향한다.

중요한 결정을 내리기 전에는 반드시 타운홀 미팅이나 정기 워크숍을 통해 모든 직원의 목소리를 듣는 과정을 거친다. 부서와 직급을 막론한 위원회를 구성해 치열하게 브레인스토밍하고, 내가 보지 못한 현장의 틈새를 그들의 시선으로 채운다. 하지만 모든 의견을 경청한 후, 최종적인 방향을 잡고 험난한 파도를 정면으로 돌파해 나가는 것은 최고 결정 바카라임자의 몫이어야 한다. 의사결정의 배경을 투명하게 공유하고 동의를 구하되, 그 결과에 대한 모든 바카라임은 내가 지겠다는 배수진을 치는 것.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현장 경영의 본질이다.



image.png키르기그공화국 직원들과 함께 201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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