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전쟁, 우유에 탄 물과 보이지 않는 올가미

[제4장: 숫자가 삶으로 치환되는 기적 : 현장 활동가의 일지]

중앙아시아의 뜨거운 태양 아래, 먼지 섞인 바람이 사정없이 불어오는 키르기스스탄의 한 시골 마을. 이곳의 아침은 코끝을 찌르는 비릿한 우유 냄새와 함께 시작된다. 거대한 톈산산맥의 만년설을 병풍 삼은 이 평화로운 마을에서, 젖소 서너 마리는 가난한 농민들에게 유일한 ‘현금 인출기’이자 생명줄이었다. 하지만 그 돈줄의 목덜미를 쥐고 있는 것은 농민이 아니라, 낡고 녹슨 탱크 트럭을 몰고 나타나는 중간상인들이었다. “우리가 직접 하면 안 될까? 왜 우리가 피땀 흘려 짠 우유 값을 저들이 결정하게 놔둬야 하지?”

나의 이 질문은 오만한 이상주의였을까, 아니면 필연적인 도전이었을까. 나는 야심 찼다. 농민들이 새벽부터 일궈낸 정직한 노동의 대가가 중간상인의 배부른 주머니가 아닌, 그들의 낡은 식탁 위 따뜻한 빵 한 조각으로 돌아가게 하리라 다짐했다. 이른바 ‘슬롯적 경제’의 실현. 우리는 마을 리더들을 수없이 찾아가 무릎을 맞대고 설득했다.


결국 협동조합이 결성되었고, 단체의 지원으로 햇살에 눈부시게 반짝이는 은색 탱크 트럭이 마을에 도착했다. 아이들은 신기한 듯 새 트럭을 뒤쫓았고, 농민들은 기대에 찬 눈으로 조합의 수매가를 확인했다. 중간상인보다 10% 더 높은 가격, 매주 정해진 날에 정확히 입금되는 시스템. 누가 봐도 조합이 압승할 싸움이었다. 하지만 현장은 내가 대학에서 배운 경제학 교과서보다 훨씬 더 어둡고 끈적한 늪이었다.


첫 번째 균열은 ‘신뢰’라는 이름의 우유 통에서부터 터져 나왔다. 조합의 우유 수거량이 늘어 기뻐하던 것도 잠시, 유제품 공장에서 다급한 연락이 왔다. 수거된 우유가 너무 묽어서 가공할 수 없다는 비보였다. 설마 하는 마음으로 지방 측정기를 들고 현장에 나갔다. 갓 짜낸 우유를 담아 온 양동이에 측정기를 들이댔을 때,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농민들은 우유에 물을 섞고 있었다. 더 황당한 것은, 어떤 이들은 우유에서 이미 유지방을 따로 걷어내 가계에 보탬을 하고 ‘맹물’에 가까운 우유를 조합에 팔아넘겼다는 사실이다.

“이러시면 안 됩니다! 이건 조합을 죽이는 일이고, 결국 당신들의 미래를 갉아먹는 거예요!”


나의 절규에 가까운 설득에도 그들은 무심한 눈으로 그저 발끝만 쳐다보거나 딴청을 피웠다. 그들에게 조합은 ‘우리가 주인인 공동체’가 아니라, 그저 또 다른 ‘돈 많은 외부 도너(Donor)’일뿐이었다. “외국 단체니까 조금 손해 봐도 되겠지”라는 안일함이 마을 전체를 지배하고 있었다. 고가의 정밀 검사 장비를 도입하고 수거 현장에서 일일이 체크를 시작하자, 농민들의 불만은 극에 달했다. “옛날 상인들은 이런 거 안 따졌는데, 당신들은 왜 이렇게 까다로워?”라는 핀잔이 화살처럼 돌아왔다. 규정을 강화할수록, 농민들과의 거리는 중앙아시아의 지평선처럼 멀어져만 갔다.


하지만 진짜 공포는 마을의 깊은 그림자 속에 숨어 있었다. 조합원이 분명 50명이 넘는데, 실제로 우유를 가져오는 건 늘 절반도 되지 않았다. 나머지는 여전히 헐값에 중간상인의 낡은 트럭에 우유를 쏟아붓고 있었다. 도무지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광경이었다. 현지 직원들과 함께 밤낮으로 농가에 스며들어 그들의 속사정을 캐기 시작했을 때, 나는 마침내 가난의 처절하고도 구질구질한 ‘민낯’과 마주했다.


그들은 중간상인에게 그들의 마음까지 저당 잡힌 상태였다. 아이의 학교 등록금이 없을 때, 가족이 갑자기 아파 수술비가 필요할 때, 마을 농민들이 달려갈 곳은 은행이 아니라 중간상인의 집이었다. 상인들은 서류 한 장 없이 선뜻 목돈을 빌려주었다. 그것은 자비가 아니라 소리 없는 올가미였다. 외상값에 발이 묶인 농민들은 중간상인이 수매가를 후려쳐도, 거친 욕설을 내뱉으며 모욕을 줘도 감히 그 트럭 앞을 떠날 수 없었다. 상인은 단순한 장사꾼이 아니라, 국가 시스템이 닿지 않는 오지에서 군림하는 ‘나쁜 은행’이자 ‘무소불위의 권력’이었다. “조합에 우유 한 방울이라도 팔아봐. 다신 이 마을에 안 온다. 그때 가서 돈 빌려달라고 빌어도 소용없을 줄 알아!”


중간상인들의 협박은 뱀처럼 조용히 마을을 잠식했다. 그들은 조합을 ‘주민의 고혈을 짜내는 외세’로 몰아세우며 유언비어를 퍼뜨렸다. 그리고 그 화살은 곧 우리 현지 직원들을 향했다. 밤마다 걸려오는 정체불명의 전화기 너머로 “가족들 안부를 생각해서라도 당장 프로젝트를 그만두라”는 낮고 서늘한 경고가 들려왔다. 현지 직원들의 얼굴은 사색이 되었고, 마을의 공기는 더 이상 예전처럼 평화롭지 않았다.

사건은 결국 터지고야 말았다. 어느 날 아침, 우유 수거 트럭의 시동이 걸리지 않았다. 쿨럭거리는 거친 엔진 소리만 몇 번 들리더니 이내 차갑게 식어버렸다. 주유구를 열어본 수리 기사의 표정이 굳어졌다. 누군가 밤사이에 주유구에 물을 한 바가지 부어버린 것이다. 명백한 테러이자 사보타주였다.

트럭이 멈춰 선 사흘 동안, 마을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우유는 매일 아침 젖소의 몸에서 쏟아져 나오는데, 저장할 곳이 없었다. 뜨거운 날씨에 우유가 상해버릴까 봐 전전긍긍하던 농민들 앞에, 기다렸다는 듯 중간상인의 트럭이 기세등등하게 나타났다. 농민들은 비참한 표정으로, 그러나 살기 위해 다시 상인들의 트럭 앞에 길게 줄을 섰다. 무너지는 건 한순간이었다. 트럭을 수리하고 다시 길 위에 섰을 때, 이미 농민들의 눈동자에는 ‘연대’가 아닌 ‘생존의 공포’만이 서려 있었다.


결국 우리는 프로젝트 종료를 결정했다. ‘밑 빠진 독에 우유 붓기’는 여기서 멈춰야 했다. 우즈베키스탄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나는 텅 빈 구름 위를 보며 자문했다. ‘무엇이 잘못된 걸까?’

돌아보니 나는 그들의 가난만 봤지, 그 가난을 지탱해 온 지독한 ‘생태계’를 이해하지 못했다. 중간상인은 악당이었지만, 동시에 마을의 경조사를 바카라임지고 급전을 해결해 주는 그들만의 ‘복지망’이기도 했다. 그 질서를 단순히 경쟁자로 인식하고 정면으로 들이받았던 나의 열정은, 현지인들에게는 준비되지 않은 위험한 도박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들과 연대하거나, 그들이 차지하던 ‘은행’의 역할을 조합이 어떻게 흡수할지 더 치밀하게 고민했어야 했다.


무엇보다 중앙아시아에는 구소련 시절 강제 협동농장(콜호스)의 기억이 문신처럼 새겨져 있다. ‘함께해서 잘 살자’는 구호가 어떻게 ‘함께 감시하고 결국 다 같이 가망 없이 가난해지는’ 결과로 이어졌는지 그들은 DNA 수준에서 기억하고 있었다.


비록 우유 탱크는 멈췄고 프로젝트는 종결되었지만, 이 실패는 내게 가장 값비싼 수업료를 남겼다. 현지인들이 겪는 고통의 구조를 입체적으로 이해하지 못하는 활동가는 오만한 구원자에 불과하다는 사실. 나는 이제 다시 운동화 끈을 묶는다. 다음번엔 그들의 적이 아니라, 그들의 삶 속으로 더 낮고 깊숙이 스며들어, 보이지 않는 올가미까지 함께 풀어낼 수 있는 진짜 ‘보더 라이더’가 되기를 기도하며.



image.png키르기즈공화국의 도심


이전 08화시장이 품은 온기, 자선이 아닌 자립의 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