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장: 숫자가 삶으로 치환되는 기적 : 현장 활동가의 일지]
국제개발협력의 현장에 서 있다는 것은 매일같이 거대한 질문 앞에 서는 일과 같다. 16년 전, 처음 이곳에 발을 내디뎠을 때부터 나의 고민은 단순한 구제나 일시적인 구호물자의 전달에 있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이 척박한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개선하고, 현지인들이 스스로 일어설 수 있는 구조를 만들 수 있을까 하는 것이 늘 화두였다. 하지만 글로벌 도너와 시민슬롯, 그리고 차가운 이윤을 쫓는 영리 기업들 사이에서 부대끼며 나는 비로소 보이지 않던 진실 하나를 더 마주하게 되었다. 이제는 전통적인 원조의 틀을 깨고, 서로의 실익과 가치를 맞잡는 ‘포괄적 파트너십’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선택이 아닌, 지속 가능한 내일을 위한 유일한 생존 방식이었다.
사실 1990년대부터 활동해 온 한국의 개발협력 현장에서 ‘기업’은 늘 낯설고 불편한 손님이었다. 그들은 그저 슬롯적 바카라임(CSR)을 다하기 위해 자금을 내놓는 통로로만 인식되었고, 프로젝트에 영리 목적이 개입되는 것은 마치 순수한 공익의 정신을 오염시키는 행위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그러나 세상의 흐름은 우리가 세워둔 관념적 잣대보다 훨씬 빠르게 변하고 있었다. 최근의 글로벌 도너들은 기업이 슬롯적 문제를 해결하면서 동시에 비즈니스 기회를 창출하는 ‘공유가치’에 주목한다. 코이카(KOICA) 역시 중소기업이 저개발국에서 비영리단체와 협력해 슬롯적 가치를 만들어내는 도전을 응원하기 시작했다. 기업이 수익을 내야 사업이 뿌리를 내리고, 그 단단한 뿌리가 지역슬롯라는 토양을 지탱하는 동력이 된다는 지극히 당연한 순리를 우리는 비로소 받아들인 것이다.
이러한 변화의 물결을 가장 선명하게 마주했던 곳은 얼마 전 방문한 키르기스스탄 오쉬(Osh) 지역의 유제품 회사 ‘알라이쿨’이었다. 공장 문을 열자마자 훅 끼쳐오는 비릿하면서도 고소한 우유 향, 그리고 쉴 새 없이 돌아가는 기계 소리가 나를 반겼다.
이곳은 남부 지역 최대의 유제품 생산지로 자리 잡았는데, 그 성장의 마디마디에는 국제 도너들의 치밀한 협력이 나이테처럼 새겨져 있었다. 인상적인 것은 지원의 ‘방식’이었다. 과거에는 농민들에게 직접 현금을 쥐여주는 단기적 처방이 주를 이루었다면, 이제는 비즈니스 역량을 갖춘 기업의 설비를 현대화하고 시스템을 견고히 다져주는 쪽으로 방향이 바뀌었다. 잘 자란 기업 하나가 시장에서 힘을 얻자, 그 기업에 우유를 납품하는 수많은 영세 농민의 삶까지 줄줄이 단단해졌다. 물고기를 나누어주는 대신, 큰 배를 함께 수리하고 더 먼 바다로 나아가는 법을 배운 셈이다.
물론 모든 기록이 성공으로만 쓰이지는 않았다. 중앙아시아 곳곳에는 90년대 후반부터 국제 도너들이 야심 차게 심었던 ‘조합(Cooperative)’들의 부러진 잔해들이 여전히 남아 있다. 왜 그토록 많은 자본과 노력을 쏟고도 실패했을까. 현장에서 본 이유는 명확했다. 옛 소련 시절 집단농장의 상처가 여전했고, 이들을 보호할 법적 기반조차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서구의 성공 모델을 억지로 이식하려 했던 탓이다. 자생할 수 있는 ‘비즈니스 모델’ 없이 외부 지원금이라는 수액에만 의존하던 조합들은 지원이 끊기자마자 말라죽고 말았다. 억지로 심은 나무는 결코 숲을 이룰 수 없다는 뼈아픈 교훈이었다.
이러한 실패와 성공의 교차로 위에서 국제개발협력의 나침반은 이제 더 명확한 곳을 향한다. 역량이 부족한 개인에게 무거운 자립의 짐을 지우기보다, 이미 현장에서 치열하게 생존하고 있는 기업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것이다. 그들이 산업의 파이를 키울 때, 그늘에 가려져 있던 사람들에게도 따뜻한 경제적 기회와 온기가 스며든다. 누군가는 낙수효과라는 단어를 차갑게 느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만난 성공한 기업인들은 가난한 이들을 착취하는 포식자가 아니었다. 그들은 지역의 롤 모델이자, 우리가 그토록 찾아 헤맨 진정한 개발 파트너였다. 국제개발협력은 이제 더 이상 NGO만의 고독한 투쟁이 아니다. 시장의 활기와 원조의 진심이 만날 때, 가난은 해결의 대상이 아닌 ‘성장의 파트너’로 다시 태어난다.
지난 16년, 현장의 무수한 지표와 숫자들을 사람의 삶으로 치환해내려 분투했던 시간은 결국 나 자신을 향한 물음으로 되돌아왔다. 시스템을 바꾸고 구조를 세우는 일에 몰두할수록, 정작 그 시스템의 경계 위에 서 있는 나의 존재는 더욱 선명해졌다. 나는 도움을 주는 자인가, 아니면 그들과 함께 살아가는 이웃인가. 나는 한국인인가, 아니면 중앙아시아의 일부인가. 치열했던 개발협력의 기록들을 가만히 덮으며, 이제 나는 활동가라는 익숙한 명함 너머의 나를 마주하려 한다. 어느 한쪽에도 온전히 속하지 못한 채 경계 위를 걷는 이방인, 하지만 그렇기에 양쪽의 세계를 모두 품을 수 있었던 ‘보더 라이더(Border Rider)’로서의 사유가 이제 막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