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환불은 안 할게요

전공은 환불이 안 되나요: N회차 이직과 비전공자의 발버둥

byNoA

글을 쓰며 지나온 20여 년의 이력서를 찬찬히 훑어보았다.

스무 살에 입학했던 운동처방학과부터, 병원 원무과와 총괄본부장, 열정 하나로 시작해 쫄딱 망했던 마케팅 회사, 명절마다 공장에서 땀을 쏟던 식품기업과, 위선과 회의로 가득했던 슬롯적기업까지.

정해진 궤도에서 벗어날 때마다 나는 늘 불안했고, 때로는 서러웠다. 남들은 전공을 살려 탄탄대로를 걷고 있는 것만 같은데, 왜 나는 낯선 업무를 하느라 좌절감을 느끼며 궂은일을 몸으로 때워야 하는지 억울했던 날도 많았다. 기회만 있다면 대학으로 달려가 졸업장을 내밀며 등록금을 환불해달라고 떼를 쓰고 싶다는 생각도 많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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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슬롯는 날마다 새로운 기술을 쏟아내고, 어제의 유망 직종은 오늘의 사양 산업으로 밀려난다. 그렇게 빠르게 요동치는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길러야 하는 능력은, 전공이 아니었다. 언제든 내 앞에 주어진 상황을 헤쳐나갈 수 있는 지혜, 유연한 사고 능력 같은 것들이었다. 전공이라는 틀 안에 나를 가두어서는 절대로 얻을 수 없는 능력이다.


원치 않는 부서로 발령이 났거나, 전공과 무관한 잡무를 처리하며 "내가 이러려고 대학을 나왔나" 자바카라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들에게 내 경험을 건네고 싶었다.

당신이 오늘 회사의 구멍을 메우기 위해 억지로 갈아 넣은 그 사소한 시간들은 결코 허공으로 사라지지 않는다.


그 땜빵과 잡무의 흔적들은 훗날 당신이 또 다른 낯선 자리에 서게 되었을 때, 누구도 쉽게 흉내 낼 수 없는 당신만의 단단한 생존 스킬이 되어줄 것이다.


정해진 길을 벗어났다고 해서 너무 불안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세상은 빠르게 변화한다. 그러니 새로운 길이 생기기도 하고, 있던 길도 사라지기도 한다.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말자.

당신과 나의 오늘은, 생각보다 꽤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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