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은 환불이 안 되나요: N회차 이직과 비전공자의 발버둥
서른 살 무렵, 병원 원무과 바카라상에 앉아 있을 때의 일이다.
월말 결산 숫자가 1원 차이로 맞지 않았다. 퇴근은 커녕, 자정이 넘도록 모니터를 노려보고 있었다. 뻑뻑해진 눈을 비비며 믹스커피를 타러 탕비실로 가다가 유리창에 비친 내 모습을 보았다.
목에는 사원증을 걸고 있었고, 손에는 엑셀 장부가 들려 있었다. 영락 없는 회사원의 모습이었다. 회사원이라… 낯설다.
수능이 끝난 고3 시절. "앞으로 유망한 분야"라는 말에 속아 운동처방학과 원서를 넣었고, 해부학 용어를 외우며 꿈을 꿨다. 번듯한 연구원이 되거나 대학 교수가 될 거라 믿었다. 그랬던 내가 원무과장이라니? 대학생이었던 내가 이 모습을 본다면, 과탑이던 애가 왜 전공을 못살렸냐며 크게 실망했을 것 같다.
전공을 버리고 시작한 첫 직바카라이었던 원무과장. 그런 것도 모르면서 일하냐는 심평원 직원에게 고개를 숙여가며 일을 배울때, 마케팅 회사를 운영하며 월급날이 오면 어디서 돈을 끌어와야하나 밤새 고민할때도 전공이 생각났다. 식품회사에서는 명절 공장에서 박스 포장을 하며 허리를 펼 새도 없었고, 슬롯적기업에서 공문서를 온갖 거짓말로 포장할 때도 전공이 생각났다.
“내 전공을 살렸으면 좋았을텐데. 나는 나의 전공이 좋았고, 적성에도 맞았고, 꽤나 잘했으니까!”
그 억울함과 미련은 생각보다 질겼다. 낯선 일에 부딪혀 깨질 때마다, 사장의 변덕이나 동료의 배신에 속이 상할 때마다 나는 내 전공을 방패 삼아 숨고 싶었다. '내가 원래 이런 일이나 할 사람이 아닌데'라는 못난 자존심이 늘 목구멍 언저리를 맴돌았다. 하지만 마흔을 훌쩍 넘긴 지금, 다시 나에게 묻는다. 그때로 돌아가 전공을 살렸다면, 혹은 다른 인기 학과를 나와 그 길로만 쭉 걸어갔다면 나는 과연 행복했을까?
아닐 것 같다. 세상은 대학 강의실의 커리큘럼대로 굴러가지 않는다. 내가 아무리 전공을 좋아했어도 제도권의 벽은 높았고, 시장의 유행은 빠르게 바뀌었으며, 회사는 늘 전공 서적 밖의 일들을 요구했다. 결국 온라인 게임인을 지켜주는 진짜 힘은 졸업장에 적힌 학과 이름이 아니다.
모르는 프로그램을 마주했을 때 툴툴거리면서도 밤새워 답을 찾아내는 끈기, 전혀 다른 분야로 튕겨 나갔을 때도 바닥부터 묻고 메모하며 일의 뼈대를 파악해 내는 눈치, 그리고 부조리한 환경과 배신 속에서도 내 자리와 자존감을 지켜낼 수 있는 안전거리 확보 능력이었다. 그 기술들은 어느 대학 강의에서도 배운 적이 없다. 원무과에서 혼자 남아 울던 밤에 배웠고, 공장 바닥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배웠으며, 사기를 치는 조직과 사내 정치의 칼바람 속에서 온몸으로 배웠다.
내 명함에는 전공과 관련된 단어가 하나도 없다. 운동처방학과를 나왔지만 지금은 컴퓨터를 만지고, 마케팅도 하고, 행정 처리도 한다. 비록 전공자처럼 정규 코스로 배운 적은 없지만, 나는 남들 못지않게 일을 꽤 잘해낸다.
누군가는 '전공 하나 써먹지 못할 거면 대학 4년은 헛된 세월 아니냐'고 반문할지도 모른다.
결과론적으로만 보면 그렇게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전공을 결정하던 열아홉 살의 내가 지금의 세상을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당장 내일의 일자리도 인공지능이 집어삼키네 마네 하며 요동치는 시대다. 하물며 스무 살도 채 되지 않은 미성년일 때의 선택이 남은 삶 전체를 결정할 수 있겠는가.
전공은 내게 있어 비밀무기다. 지금 당장은 전혀 쓰임이 없지만, 언젠가는 필요할지도 모른다. 게다가, 전공을 살리지 못했기 때문에 얻을 수 있는 것들이 더 많았다. 그리고, 전공을 살리지 못했어도 먹고 사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다.
그러니 오늘도 나는 당당하게 하루를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