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스름이 골목 입구부터 차오를 때면, 나는 일부러 발걸음을 늦추었다. 헐렁한 짙푸른 교복 차림에 묵직한 가방을 손에 들고 걷던 중고등학교 시절, 나는 등하굣길의 그 붉은 벽돌담 모퉁이에서 언제나 잠시 머뭇거렸다.
그 시절의 길은 온통 답답함으로 막혀 있었다. 빽빽한 시간표와 좁은 교실, 칠판 가득 적히던 공식들과 미래에 대한 까닭 모를 불안이 어린 어깨를 내리누르던 때였다.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시멘트 골목길은 끝없이 곧게만 뻗어 있는 듯해서 때로 숨이 턱까지 차오르곤 했다.
하지만 커다란 오동나무 가지가 담장 너머로 고개를 내민 그 꺾어진 모퉁이에 다다르면, 이상하게도 가슴 한구석에서 조용한 파문이 일었다.
모퉁이는 시선을 막아서는 벽이었지만, 동시에 그 너머의 세상을 상상하게 만드는 비밀스러운 문이었다. 꺾어진 담장 모퉁이에 다가설 때면 늘 바람의 결이 먼저 달라졌다. 모퉁이에 가까워질수록 나는 괜히 가방끈을 고쳐 잡으며 걸음을 늦추곤 했다. 혹시라도 너무 빨리 돌아서 버리면, 그 너머에서 단발머리를 찰랑이며 걸어오고 있을지도 모를 그 아이를 기다리는 시간이 그만큼 짧아질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그 모퉁이만 돌아서면 나를 괴롭히던 성적표나 친구와 다투고 난 뒤의 서먹함, 집으로 돌아가는 길의 묵직한 발걸음이 거짓말처럼 다른 풍경 속으로 흩어질 것만 같았다. 보이지 않기에 무엇이든 기대하며 채워 넣을 수 있었던 그 꺾임의 자리는, 답답한 일상을 견디게 해주는 소년의 작은 숨구멍이었다.
세월은 골목길의 모퉁이보다 더 가파르게 꺾이며 흘렀다. 교복을 벗어던지고 칠판 앞에 서서, 성적표를 가슴 품에 접어 넣은 채 복도 끝 모퉁이에서 머뭇거리던 무수한 아이들의 어깨를 다독이던 시간들도 지나갔다. 이제는 교단을 내려와 집 근처 산자락을 따라 느긋하게 걷는 나이가 되었다. 돌아보면 내 삶 전체가 학창 시절 그 골목에서 시작된 수많은 모퉁이의 연속이었다.
때로는 느닷없이 찾아온 시련의 모퉁이도 있었고, 때로는 예기치 못한 인연이 기다리는 모퉁이도 있었다. 직진의 길을 숨차게 달릴 때는 주변을 둘러볼 여유가 없었지만, 꺾어진 모퉁이를 만날 때마다 나는 비로소 발걸음을 멈추고 지나온 길을 가만히 돌아볼 수 있었다. 모퉁이는 힘든 일이 소멸하는 마술의 장소가 아니라, 그 저편을 마주하기 위해 스스로 숨을 가다듬는 멈춤의 자리였다.
그 시절 그 모퉁이를 돌았을 때 소년이 꿈꾸던 기적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모퉁이를 돌아서며 가슴에 품었던 그 수줍은 기대만큼은 사라지지 않고 내 삶의 결마다 차곡차곡 스며들어 이 어른의 마음을 따뜻하게 지탱해 주었다.
오늘도 산자락 길을 걷다 느티나무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진 모퉁이를 만난다. 예전처럼 가슴이 미친 듯이 뛰지는 않지만, 꺾어지는 길 앞에서 느껴지는 고요한 설렘은 여전하다. 소년의 기대는 이제 저녁노을처럼 잔잔히 마음에 번져, 모퉁이 너머에서 불어오는 바람으로 나를 맞아준다.
저 모퉁이를 돌아서면 또 어떤 풍경이 기다리고 있을까. 나는 학창 시절 등하굣길의 그 소년처럼, 다정한 기대를 품은 채 다시 한번 발걸음을 늦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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