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토리와 칠판가루〉

by선비천사

스마트폰 화면 속 스님의 목소리는 막힘이 없었다. 화면 안에는 삶의 무게에 짓눌려 어깨가 처진 질문자가 있었고, 스님은 특유의 무심하고 담담한 어조로 처방을 내려놓고 있었다.


“다람쥐가 도토리를 찾을 때 '오늘도 열심히 살아야지' 하고 찾습니까? 그냥 찾습니다. 소가 풀을 뜯을 때 애를 쓰지 않습니다. 그냥 뜯습니다. 새가 하늘을 날 때 애를 써서 날지 않습니다. 그냥 날 뿐입니다. 그런데 왜 사람만 그렇게 '열심히' 살려고 애를 씁니까? 그냥 사는 겁니다.”


모니터를 끄고 나니 방 안에 조용한 정적이 밀려왔다. 바카라상 한구석에는 오래 곁에 두었던 만년필 한 자루와 은은한 스탠드 불빛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스님의 말씀은 그늘진 마음 한편을 가만히 비추는 듯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염려하지 말라”던 옛 성자의 나지막한 음성도 함께 아른거렸다. 애써 삶을 쥐어짜지 않아도 된다는 격려, 존재 그 자체로 이미 충분하다는 온화한 가르침에 가슴 한구석이 환하게 열리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모니터의 잔상이 사라지자, 어둠 속에서 오랫동안 잊고 있던 질문 하나가 고개를 들었다.


정말 그러한가. 숲 속의 다람쥐는 과연 아무런 긴장 없이 '그냥' 도토리를 줍는 것일까.


새벽마다 집 근처 소래산 자락을 걸을 때 마주치던 다람쥐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녀석들은 작은 도토리 하나를 집어 들 때조차 수십 번씩 고개를 번쩍 들고 주위를 살핀다. 작은 나뭇가지 소리 하나에도 온몸의 털을 세운 채 굳어버린다. 하늘을 가르는 매의 그림자나 풀숲을 기어 오는 기척은 곧 삶과 죽음의 갈림길이기 때문이다. 소 역시 무리 속에서 끊임없이 주변을 경계하고, 새들 역시 바람을 읽고 끊임없이 날개의 각도를 바꾸며 허공에서 제 몸을 지탱한다. 동물들은 '열심히'라는 인간의 언어를 쓰지 않을 뿐, 그들의 매 순간은 온 감각을 바짝 세운 채 치러내는 팽팽한 생존의 현장이었다.


생각이 여기에 다다르자, 손가락 마디에 오랜 나이테처럼 남아 있는 흰 칠판가루의 감촉이 머릿속을 스쳤다.


교단에 서서 32년의 세월을 보냈다. 마지막 수업을 마치고 칠판지우개를 털면 하얀 가루가 소매와 손등에 내려앉곤 했다. 집에 돌아와 세면대에서 몇 번이나 손을 씻어도 손톱 가장자리와 지문 골짜기에는 희끗한 자국이 오랫동안 남았다. 매일 아침 분주하게 가방을 챙겨 집을 나섰고, 분필을 쥐고 칠판 앞에 서서 내 몫의 자리를 지켜내기 위해 늘 바짝 긴장한 채 살았다. 경쟁이라는 단어는 바카라 속에 담긴 관념이 아니었다. 그것은 매달 우편함에 쌓이는 지로용지였고, 계절이 바뀔 때마다 조금씩 닳아가는 구두 뒷굽의 무게였으며, 세면대에 하얗게 씻겨 내려가던 분필가루였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염려하지 않고 가만히 손을 놓고 있다면, 당장 내일의 온기조차 지켜낼 수 없는 것이 우리가 발을 딛고 서 있는 현실의 바닥이다. 생존을 위해 부지런히 움직이는 자연의 생태나, 시장이라는 촘촘한 망 속에서 하루를 일궈내는 인간의 삶이나, 적자생존의 서늘한 법도에서 완전히 벗어나기는 어려워 보였다. 그렇다면 스님의 말씀과 성서의 들꽃 이야기는 현실을 모르는 고고한 관념에 불과한 것일까.


손때 묻은 만년필을 조용히 집어 들었다. 오랫동안 마음 안에서 서성이던 두 세계—생존의 치열함과 마음의 내려놓음—가 손가락 끝의 희끗한 굳은살 위에서 묵직하게 교차했다.


문득 산길에서 만난 다람쥐의 눈빛이 다시 떠올랐다.


다람쥐도 내일을 대비해 부지런히 도토리를 모은다. 녀석에게 두려움이나 근심이 전혀 없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인간처럼 아직 오지 않은 실패를 수없이 상상하고, 남의 도토리 더미와 자신의 것을 헤아리며 스스로를 괴롭히는지 알 수는 없는 일이다. 녀석은 그저 지금 눈앞에 떨어진 도토리 하나에 온 존재를 기울일 뿐이다.


인간을 고단하게 만드는 것은 어쩌면 '일하는 행위'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일 위에 덧칠해진 과도한 집착일지 모른다. 일을 하면서도 현재에 머물지 못하고, 남과 나를 끊임없이 견주며 스스로를 조바심의 골짜기로 밀어 넣는 마음 말이다. 스님이 말한 "열심히 하지 말라"는 까닭은 삶의 터전을 팽개치라는 뜻이 아니라, 나를 갉아먹는 그 과도한 집착의 채찍질을 내려놓으라는 나지막한 경고였을 것이다.


예수가 바라보라 했던 들의 백합화 역시 허공에 떠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흙 속에 뿌리를 내리고 제 몫의 햇빛과 물을 받아들이며 피어난다. 다만 옆의 꽃과 자신의 크기를 견주지는 않는다.


창밖으로 소래산 자락에 저녁노을이 어둡게 깔리기 시작한다. 분필을 들고 아이들을 바라보던 수많은 날 동안, 나는 참으로 부지런히 칠판을 채우고 또 지웠다. 소매깃에 하얗게 묻어나던 칠판가루는 내 삶을 지탱해 온 정직한 땀방울이자 바카라임의 자국이었다. 다만 내 마음을 어둡게 만들었던 것은 그 하얀 가루가 아니라, '잘 해내지 못하면 뒤처진다'는 번뇌의 무게였음을 이제야 가만히 깨닫는다.


내일 아침에도 나는 여느 때처럼 운동화 끈을 매고 소래산 자락을 걸을 것이다. 다람쥐는 여전히 부지런히 도토리를 주울 것이고, 나 역시 내 몫의 하루를 살아갈 것이다. 다만 남의 도토리 더미까지 헤아리며 조바심 내지는 않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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