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카라상 옆에 놓인 가죽 소파는 이 방에서 나와 가장 오랜 시간을 함께한 사물이다. 팔걸이 부근은 세월에 쓸려 매끈하게 길들었고, 모서리 쪽은 잔주름이 잡히더니 가만히 흰 속살을 드러내고 있다. 거실 불을 끄고 가만히 앉아 소파의 팔걸이를 쓸어본다. 미동도 없다. 숨을 쉬지도 않고, 내가 어루만지는 손길에 반응하지도 않는다.
이 가죽도 한때는 들판을 누비던 소의 숨결이었을 것이다. 거친 바람을 맞고, 따가운 햇살 아래서 피가 돌던 몸이었을 테다. 그러나 지금 내 곁에 있는 것은 그 온기가 다 빠져나가고 남은 차가운 가죽뿐이다. 방 안을 가만히 둘러보면 나를 뺀 모든 것들이 그렇다. 단단하게 바닥을 디딘 바카라상, 먼지를 뒤집어쓴 바카라들, 유리창에 부딪혀 멈춰 있는 밤의 차가운 기운까지.
이상한 일이다. 이 소파 역시 매일 조금씩 터지고 갈라지며 바위가 모래로 부스러지듯 변해가지만, 자신이 낡아간다는 사실을 괴로워하지 않는다. 사물들은 그저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아무것도 욕망하지 않고, 자신의 변화를 회피하지도 않는다. 오직 나만 숨을 쉬고 피가 돈다는 이유로, 이 정적 속에서 홀로 허허로운 두려움을 느낀다. 어쩌면 두려운 것은 죽음 그 자체보다도, 아직 오지 않은 죽음을 미리 바라볼 수 있는 이 의식인지도 모른다.
사방이 온통 죽어 있는 것들 투성이 인데도, 나는 오랫동안 이 냉엄한 흐름에서 혼자만 예외인 것처럼 굴곤 했다. 언젠가 한밤중 병원 응급실 침대에 누워 천장의 둥근 등기구를 멍하니 바라보던 날이 있었다. 손등에 붙은 반창고의 뻣뻣한 감촉, 쇠로 된 차가운 침대 난간, 옆 침대 커튼 너머로 들려오던 짧은 단속음과 분주한 발소리. 그때 내 몸을 감쌌던 것은 어떤 생각이나 진리가 아니라, 내 몸 역시 저 사물들처럼 단번에 정지할 수 있다는 지독한 낯섦과 공포였다. 나는 그 두려움을 견디지 못해 영원히 기억될 이름을 찾고, 손에 쥐지도 못할 무거운 의미들을 등짐처럼 짊어지며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응급실에서 집으로 돌아와 이 소파에 깊숙이 몸을 묻었을 때, 나를 가만히 받쳐준 것은 내가 평생 쌓아 올리려 애썼던 이름이나 의미가 아니었다. 그저 아무런 불평 없이, 아무런 뜻도 없이 자기 몸을 내어주는 차갑고 묵직한 가죽의 감촉이었다.
소파에 오래 앉아 있다 보니, 내 몸에서 빠져나간 온기가 차가웠던 가죽 표면에 스며들어 미지근해진 것이 느껴진다. 한때 들판의 소가 품었다가 사라졌던 그 온기가, 수년을 돌아 이제 나라는 생명을 거쳐 다시 가죽으로 잠시 건네어진 셈이다. 내 몸을 이루는 것들도 결국 저 가죽처럼 잠시 하나의 몸을 이루었다가 흙과 바람 속으로 흩어질 것이다. 숨을 거두는 날에도 그것은 거창한 파멸이라기보다, 한때 나였던 것들이 햇빛 속의 먼지가 되고 발밑의 흙이 되어 저마다 다른 곳으로 흩어지는 일에 가까울 것이다.
가죽에 스며든 미지근한 체온을 가만히 느껴본다. 세상의 모든 것은 아무런 약속 없이 그저 생겨나고 변하며 흘러갈 뿐이다. 하지만 그렇기에 손바닥에 느껴지는 이 작은 온기가 고맙다. 삶이 온통 차가운 정적으로 둘러싸여 있을지라도, 오늘 이 작은 방에서 더운 차 한 잔을 마시며 누군가와 온기를 나누는 일. 어쩌면 내가 삶에 남길 수 있는 의미란 그런 작은 체온인지도 모른다.
소파에서 일어난다. 내가 앉았던 자리에 조용히 남아 있는 온기를 손바닥으로 가만히 눌러본다. 잠시 머물다 사라질 온기이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분명히 가죽을 데우고 있다. 살아 있다는 것은 차가운 사물들에 잠시 체온을 나누어주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우리는 그저 잠깐 다녀가며 온기를 남기는 어여쁜 손님일 뿐이다.
*같이 보면 좋은 글
이 글의 행간에 다 담지 못한 더 많은 그림과 소박한 기록들은 저의 개인 블로그에서 계속 이어집니다. 언제든 편히 들러주세요.
[전자바카라] 바람이 지나간 자리엔 마음이 남았다 | 방철호 | 알라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