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

by선비천사

서막은 늘 축축하게 번진다.
하늘이 쏟아낸 폭우의 혓바닥이 마당을 핥다가
이내 숨을 고를 때,
나는 방향을 잃고 오래된 가구처럼 눅눅하게 절어간다.


이 끈질긴 계절의 틈새를 찢고
네가 젖은 우산을 털며 들어섰으면 좋겠다.
아득한 빗줄기를 등 뒤로 밀어내며,
낯익은 물비린내 속
너라는 선명한 재난이 밀려왔으면 좋겠다.


그 흔한 그리움의 말조차 이미 빗물에 닳아버려
너는 그저 말없이 다가와
내 마른 손목을 꼭 쥐어 주면 좋겠다.
젖은 소매 끝이 내 손등을 스치는 순간,
그제야 장마는
우리를 지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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