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늘, 내가 어디서 왔는지 떠올렸다

by선비천사

새 보직의 이름들이
등뼈 위에 하나씩 얹힐 때마다
무릎이 삐걱거렸다


목덜미에는
하루치 피로가 눌어붙어
좀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나는 종일
건물의 그늘 아래에서
조금씩 젖어가고 있었다



지하철 계단을 오르다
문득
어떤 둥근 것이 떠올랐다


희고
부드러운
살결


태어난 적 없는 눈처럼
가만히 있는



내 안 어딘가에서
익숙한 냄새 같은 것이
천천히 올라왔다


손으로 오래 만지고 싶은 것


한때
내가 전부라고 믿었던 것



그 앞에서는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다


말도
생각도
쓸모도


모두 멈췄다



늦은 하루의 끝,


나는
만져지지 않는 온기를 쥔 채


가장 부드러운 곳에
이마를 묻고


아무 무게도 없는 어둠 속을
천천히 걸어 나왔다



나는 그게
내가 처음 머물렀던 곳이라는 걸
늦게서야 알아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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