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러나 어머니
위대한 문장들이 세상을 구원할 때
나는 당신의 깊은 골짜기를 먼저 읽는다.
지혜로운 이들이 지은 유려한 집 안에서
말을 갖지 못한 당신의 눈빛이 서성인다.
당신의 생에는 정작 당신의 자리가 없어서
늘 자식의 뒤편으로만 길게 늘어지던 그림자.
가슴속에 서러운 불길이 치솟을 때에도
당신은 늘 부엌 쪽에 오래 앉아 있었다.
마디 굵은 갈고리 손으로
말없이 생의 가장 낮은 바닥을 짚어내면서.
산다는 것은 편안히 숨을 누리는 일이 아니라고,
배불리 채우고 뽐내는 자리가 아니라고.
스스로를 지워
타인의 눈물 밑바닥을 괴어주던 사람.
소쩍새 울음이 밤을 깊게 갉아먹는 적막 속에서
당신은 낮게 웅크린 채
지나온 모진 세월을 홀로 받아내고 있었다.
세상의 매서운 바람이 문지방을 넘을 때마다
울음을 삼킨 목소리로 나직이 부르시던
유행가 가락, 앵두나무 처녀의 노래.
그 낡은 노래가 휑한 방 안을 채울 때
지상의 어떤 모진 사람도 내 안에서 이내 순해졌다.
하얗게 바랜 머리칼,
빨래판처럼 말라붙어 삶의 찌꺼기를 걸러내던 얼굴.
뼈가 살을 뚫고 나올 듯 왜소해진 손발이
이불깃에 스칠 때마다 사석이는 그 마른 소리.
모래와 자갈이 서글프게 부딪히는 그 소리가
밤마다 자식의 심장을 오래 긁어대지만,
그러나 어머니,
이 세상 모든 길의 끝에서 결국 내가 받아 적어야 할 이름.
당신은 끝내 내 삶의 첫 문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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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바카라] 바람이 지나간 자리엔 마음이 남았다 | 방철호 | 알라딘